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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금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한국농어민신문]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재대로 제도 정비·체계화되지 않으면
가격 하락의 ‘불충분한 보전’에
농가 거출금 사용하는 최소효과 우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무와 배추, 양파, 마늘 등의 품목에서도 자조금 제도를 도입하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의무화된 한우와 돼지 등의 축산 자조금은 물론이고 경종분야 자조금 품목을 모두 합치면 30개에 육박한다. 여기에 노지채소의 주요 품목의 자조금 제도가 도입되면 어지간한 품목은 대부분 자조금을 도입하게 된다. 가히 자조금 공화국이라고 할만하다.

자조금 제도 도입을 통해 기대하는 가장 일반적인 효과는 소비 촉진을 통한 시장 축소에 대한 대응 혹은 시장규모 확대이다. 미국의 자조금 제도는 주로 이런 효과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또한 자조금 제도 도입을 통해 수급 조절을 원활히 하여 가격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이는 전국 단위 품목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원래 미국과 유럽에서 운영되는 자조금 제도란 유통명령제 혹은 유통위원회 제도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산자는 물론이고 유통상인들도 함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자조금을 조성하여 일반광고를 해 왔다. 생산자들의 조직화는 역시 일반적으로 품목농협 혹은 농협의 이름을 가지지는 않더라도 사업적 성격을 가진 협회가 이미 만들어져 이들이 유통위원회를 주도했다. 품목별 협동조합-유통위원회-자조금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1960년대 무렵에 하나의 체계로서 도입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자 주체로서의 전국단위 품목별 협동조합 조직이 취약한 상황이며, 동시에 유통명령제 혹은 유통위원회 제도는 공정거래법의 거꾸로 뒤집어진 운영에 따라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조금 제도만을 계속 확장하고 의무화시켜 나가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004~2006년경 제주도청과 농협들의 협력을 통해 감귤유통명령제가 도입되었는데, 상당한 가격안정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담합으로 보고 감귤유통명령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여 흐지부지 되었다. 낙농진흥회의 활동도 언제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대상이다.

공정거래법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다. 이런 종류의 법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다 만들어져 있는데, 주목표는 독점을 규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약칭도 대부분 ‘반독점법’, ‘독점규제법’ 정도로 부른다. 이 법을 담당하는 부처도 ‘반독점위원회’ 등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독점규제보다 담합을 막는 것에 더 힘을 쓴다.

그리고 농민이나 소상공인 등 약자들의 협동도 담합으로 취급해 버린다. 농업인들의 품목조직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공정거래법 혹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잘못된 행태를 교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품목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우나 양돈, 과수는 개별농가의 경영규모가 크고, 품목전환이 어려워 멤버십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규모가 작은 시설채소나 노지채소의 경우에는 품목전환이 심해 멤버십이 확보되기 어렵다. 이런 상화에서 품목을 세부화시켜 자조금 제도를 도입할 때 자칫 민간의 주도성은 사라지고 행정의 의지만 남을 우려가 높다. 이미 경종 자조금의 경우 품목농협보다 지역농협에서 거출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무, 배추 등은 생산자와 유통 상인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품목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품목농협 조직과 유통위원회와 관련된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고, 이를 통해 농가의 교육과 조직화가 체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을 고리로 자조금 제도가 확대되면, 적정 가격의 유지와 시장 확대가 이뤄지기보다는 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의 불충분한 보전이라는 정부의 목표에 농가의 거출금만 사용하는 최소효과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불완전 제도가 될 수 있다. 근본적인 고민과 신중한 정책 도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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