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잦은 교체, 농정 협치 강화 걸림돌
지역특색 반영 자치농정도 어려워
순환보직제 단점 보완장치 활용을


자연생태계는 살아있는 생명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물질순환이 잘 이루어져야 건전하고 지속가능하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농업 생산물의 부산물이 폐기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태계의 자원으로 이용되어야 생태학적으로도 경제학적으로도 바람직하다. “똥이 자원이다”라는 오래된 경구가 있듯이 땅도 물질도 사람도 돌고 도는 순환관계를 만들어야 자연세계도 인간사회도 지속가능하게 돌아간다. 원래부터 농촌사회는 허투루 버리는 것 없이 농민생활 속에 재사용, 재이용, 재활용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근대화, 경제성장이란 과정은 이런 순환관계를 파괴하고 단절시키고 특정 기능으로 분단시켰다. 자연은 착취와 약탈의 대상이었고, 또 폐기물 처리장이 되었다. 국가 정책으로도 거점개발, 특화발전, 규모화 등의 전략이 채택되었다. 수출입국이 지상명제였고, 온 국민과 지역이 동원되었다. 그러면서 농민이, 농촌이, 농업이 희생을 강요받았다. 그런 역사를 우리는 살아왔고, 다수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 위정자나 전문가도 많이 보인다.

연초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이맘때마다 반복되는 공무원 인사 때문이다. 순환되는 것이 모두 좋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공무원 순환보직제는 아니라 본다. 1년에 두 번 정기인사가 있고, 너무 자주 바뀌니 농정의 협치(거버넌스) 역량은 성장하지 못하고 지역 특색을 반영한 자치농정도 싹트기 어려운 토양이다. 과거와 달리 공무원 비리도 쉽게 드러나니 이제는 순환보직제의 장점을 찾기 어렵다.

자치분권이 강화되고 중앙 사무가 지방으로 계속 이양되는 시대이기에 공무원에게는 더 높은 정책 전문성이 요구된다. 정책을 기획하고 막대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는 무게감을 생각할수록 순환보직제 문제는 심각하다. 개인적인 현장 경험으로 공무원은 최소 3년을 근무해야 전문성도 발휘하고 정책토론도 가능하며 새로운 정책도 기획할 수 있었다. ‘한 우물을 판’ 공무원이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공무원보다 정책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환보직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제도적으로 이미 여럿 마련되어 있다. ‘불편한 진실’이기에 홍보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간 것으로도 이해된다. 농정에만 적용되는 제도는 아니지만 농촌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에 이 자리를 빌려 간단히 소개한다.

먼저, ‘직위공모제’란 제도다. 특정 직위에 대해 해당 지자체 내외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경쟁(시험)을 치러 임용하는 제도로 2007년부터 도입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기획, 인사, 예산, 홍보 등 승진에 유리한 직위에 적용해왔다. 최근에 주민자치 정책에서 도입하는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도 한 형태인 셈이다.

둘째, ‘필수보직기간’(예전의 ‘전보 제한기간’)이란 제도도 있다. 공무원이 현재 직위에서 반드시 근무해야 하는 기간을 말한다. 계속 강화되어 왔는데 현재는 직렬에 관계없이 모두 2년으로 늘어나 있다. 여러 예외조항도 있지만, 그 이전에 부서를 이동했다면 원칙을 어긴 셈이다.

셋째, ‘전문직위’란 제도다.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분야(직위)를 정하고 3년간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렇게 근무하는 공무원을 전문관이라 부른다. 최근에는 전문직위를 유사 정책 그룹으로 묶어 5년간 근무할 수 있게 하는 전문직위군(群)이란 제도로 강화되었다.

넷째, ‘임기제 공무원’ 제도다. 민간 전문가를 공무원으로 일정 기간 채용하는 방식으로 역사는 오래되었다. 현재는 일반임기제, 전문임기제, 시간선택제임기제, 한시임기제 등 네 유형이 있다. 이 중에서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은 ‘정원 외’로 취급되기 때문에 가장 쉽게 도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현장 활동가나 연구자라면 꼭 경험해보라 권하고 싶다.

나아가 작년 3월에 발표한 ‘자치분권 시행계획’을 보면 더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직무특성에 따라 처음부터 장기근무형(전문가형)과 순환근무형(관리자형)으로 구분하고, 필수보직기간은 더욱 강화하며, 전문직위에는 가산점을 의무적으로 부여하는 등이다. 이외에도 작년에 시행되었는데 공무원 직렬(직류)을 신설하는 것도 자치단체 조례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딱딱한 행정 정보를 소개하는 것은 농정이 이런 관점을 너무 놓치고 있고 이것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핵심과제라 보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이 일을 잘하든 못하든 인사이동 시기는 예측가능해야 민과 관의 신뢰관계도 이어지고 협치 역량도 성장할 수 있는 셈이다. 민간의 주도성이 강조되고, 행정부서의 업무협조(융복합)가 중요하며, 중간지원조직 설치가 요구되는 정책 영역일수록 순환보직제 단점 문제는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이제 농정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주장보다 ‘누가’,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로컬푸드, 여성복지, 마을공동체, 사회적농업, 6차산업, 나아가 최근의 공익형직불제, 농민수당 등이 아무리 중요한 정책이라 주장해도 이 점을 놓치면 단편적인 프로그램 사업에 불과할 뿐이다. 자치농정이 형성되는 것도 아니고, 중앙정부 정책을 단순 전달하는 기능에 그친다.

중요한 정책 영역일수록 해당 공무원을 직위공모제로 경쟁 선발하고, 전문직위로 지정하여 3년간 근무하도록 하며, 나아가 전문직위군으로 묶어 서로 협력관계를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임기제 공무원 채용도 크게 늘려야 한다. 이런 점이 지난 농정 역사에서 우리가 놓쳤던 부분이고, 그래서 앞으로 당면과제로 깊이 검토해야 할 점이다. 새해 인사철을 맞이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이달부터 우리나라 마을만들기 1세대인 충남연구원의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이 ‘농업마당’ 새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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