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정문기 농산전문기자]

“참으로 이 끝을 알 수가 없어요. 그저 참고 버티는 거죠. 하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버겁습니다”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만났던 농기자재업체 CEO들의 한결같은 소리다. 으레 그렇듯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습관성 엄살로 치부하기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절박감과 위기의식이 배어 있다. 

한국 농업의 든든한 후방산업이며 필수 기간산업인 농기자재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지표를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그동안 국내 농기자재산업의 중추였던 무기질비료, 작물보호제업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무기질비료업계는 내수 위축,  원자재값과 환율인상에 따른 수출 부진이 겹치면서 업계 전체 손실액이 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70%에 달하는 원자재값 상승분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면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작물보호업계도  지난해 농협의 가격인하 조치와 PLS 전면시행 여파로 8개 제조사의 매출이 전년보다 5%가량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무엇보다 농약원제 수급 불안에 환율인상까지 겹쳐 생산비 증가에 따른 영업이익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종자업계도 주요 농산물값 약세로 고추와 양파 등 채소종자시장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다만 농기계업계는 전년보다 5%가량 성장이 예상되는 등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경제형 농기계 보급 확대와 수출이 늘어서다. 이렇다보니 일부업체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지출비용 축소 및 인력조정 얘기가 들린다. 

이같은 농기자재업계의 매출하락은 무엇보다 이들 제품의 소비자인 농민들의 구매력 약화가 컸다. 과일은 물론 무, 배추 등 주요 농산물값이 연중 폭락한데다 가을장마와 함께 가을 태풍이 세 차례나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농산물 가격 하락과 시설물 파손 등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감내한 농민들이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상실한 것이다.  

또 농협의 비정상적인 저가 입찰도 한몫을 했다. 농가소득 증대라는 명분이었지만 남해화학, 농협케미컬, 농우바이오 등 자회사들까지도 속앓이를 했던 3년간의 과도한 가격인하 및 동결은 장기적으로 농업인은 물론 우리 농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못했다간 지난해 6개 비료업체 노동자들이 농협중앙회에서 비료 입찰제도 개선 및 공급가격 현실화를 촉구한 집회가 올해도 재연될 수 있고, 타 업종까지도 확산될 수도 있다. 여기에 국제 유가와 환율인상에 따른 원자재값 인상, 최저임금 인상도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농기자재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지금 당장의 매출하락 등의 부진 못지않게 농업을 둘러싼 대내외적 상황 및 여건이 너무나 가변적이고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에다 농업인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농기자재 구매력과 연관된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 비중은 날로 감소한다.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 피해 또한 규모가 커지고 빈번해졌다. 결국 농업인의 구매력 약화→농기자재산업 매출 하락→R&D(연구개발)둔화→신제품 개발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조만간 업계의 생존기반 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듯 총체적 위기에 놓여있는 국내 농기자재산업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들 산업을  다시 회생, 활성화시켜 대내외적으로 경쟁력을 갖춰나가게 하는 한편 농업인들이 필요로 하는 고품질·고효율의 제품들을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욱이 업계가 보유한 고도의 기술력과 최첨단 제품은 농업인들의 기술수준에 따른 소득 격차를 줄이고, 4차산업을 통한 새로운 농업의 경쟁력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는 농기자재산업 전반에 대한 작금의  상황과 실태를 정확히 점검하고 이에 걸 맞는 지원책과 정책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2014년부터 농기자재 업무를 통합해 농기자재 정책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농기자재정책팀의 역할이 막중하다. 농기자재업계도 매출 및 수익 확대에만 치중하는 근시안적 경영에서 벗어나 국내 농업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농민들이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생산해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보다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울러 업계는 한때 추진코자 했던 ‘(가칭)농기자재단체장협의회’ 구성을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농기자재 관련 협회와 조합들이 뜻을 모아 협의체를 만들고, 농기자재산업의 활성화에 다함께 나선다면 업계는 물론 우리 농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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