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농업인 건강, 지자체장 의지에 달렸다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 곡성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에서 관내 농업인들이 짐볼과 밴드를 이용해 근력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농촌이 아프다. 고령 인구 비율이 도시에 비해 월등히 높고, 다른 직업에 비해 몸을 많이 사용하는 농업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촌은 늘 아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 편에서 살펴봤듯이 농촌에 병원과 의료인이 부족하기 때문에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다. 거주 인원이 적다보니 당연히 수익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나 민간 부문에서 병원 설립을 쉽게 결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계속 의료 사각지대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반대로 2000만원의 적은 예산으로 농업인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자체도 있다. 곡성군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의 사례가 다른 지역에 퍼져나가 농촌지역 의료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란다.


‘무료 운영’ 곡성 농업인재활센터
연간 이용자 1만3000명 달해
전문 재활치료사 구호에 따라
수십 명의 사람들 스트레칭 ‘쭉’

뇌졸중으로 3년 다닌 정재우 씨
“돈·시간 아끼며 상태 호전 다행”

기존 보건의료원 인력 활용
초기비용 뺀 운영비 연 2000만원
“지자체장 관심·의지 있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운영”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무료인 농업인재활센터

전남 곡성군의 가장 번화가인 곡성기차마을시장의 건너편에 위치한 곡성군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 한 해 농사를 마친 농업인이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농한기인 12월, 이곳을 방문해 건물을 마주하고 처음 느낀 건 여유로움이었다. 5일장이 열리지 않은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북적이지 않았고 조용했기 때문이다.

안내를 받아 농업인재활센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1층에선 50~70대의 이용자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운동 및 재활기구에서 조용히 움직이며 몸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시의 시끄럽고 복잡한 체육관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1층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문 재활치료사의 구호에 따라 수십 명의 사람들이 스트레칭용 고무밴드를 이리 저리 움직이며 근육을 이완시키고 있었다. 대부분이 고령자임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동작을 놓치지 않고 따라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몇몇은 근육이 굳어 동작이 쉽게 되지 않자 주변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곡성군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는 농업인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지난 2016년 11월에 설립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연간 농업인재활센터를 이용하는 수는 1만3000여명으로 곡성 전체 인구(2019년 12월 기준 2만8887명)의 절반가량이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농업인재활센터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한 명과 간호사 한 명, 물리치료사 두 명 등 총 네 명의 의료진이 관내 농부증과 지체 장애인 등 근·골격계 질환자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관리와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의 가장 장점은 ‘무료’다. 대부분의 비용은 곡성군이 부담하고 있고, 초음파나 약 처방, 주사 등을 처방 받았을 때만 약간의 본인부담금이 발생한다.

농업인재활센터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농업인재활센터의 재활의학과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아야만 재활운동실을 이용할 수 있다. 재활운동실 이외에 재활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재활교육실에서는 근력 유연성 운동 위주로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 짐볼과 요가 등의 건강증진프로그램도 함께 제공되고 있다.
 


관내 농업인들의 반응도 좋았다. 20여분 남짓 런닝머신에서 빠른 걷기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을 풀던 정재우(76) 씨는 농업인재활센터에 다니며 건강이 급격히 호전됐다. 그는 오랜 시간 곡성읍에서 벼농사를 지었는데 몇 년 전 논에 나가서 농작업을 하다 갑작스레 뇌졸중이 발생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 됐고, 그는 농업인재활센터를 찾아 재활을 시작했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빠지지 않고 재활치료와 운동을 병행한 결과 이제는 런닝머신에서 20분 이상 운동할 수 있는 상태로 호전됐다.

정재우 씨는 “뇌졸중으로 처음에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는데 농업인재활센터에 나와 꾸준히 운동을 하니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면서 “보통 재활치료를 하기 위해선 곡성에서 멀리 떨어진 광주광역시까지 나가야 했는데 농업인재활센터가 근처에 있어서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무릎관절 운동을 하고 있던 이정희(63) 씨도 농업인재활센터의 재활치료를 이용 후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늘기 시작했고, 무릎 관절에 무리가 왔다. 농업인재활센터에 방문해 진찰을 받고 처방에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적절한 운동과 스트레칭을 한 결과 체중도 감량했고 무릎통증도 완화됐다.

이정희 씨는 “농업인재활센터에서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고 처방받은 운동을 꾸준히 한 결과 체중도 감량하고 자신감도 생겼다”면서 “앞으로도 농업인재활센터에 꾸준히 나와 건강한 삶을 누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곡성군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의 한 해 운영 예산은 2000만원이다. 지자체의 일반 사업 예산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내고 있는 셈이다. 곡성군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는 현 유근기 곡성군수의 공약사업 중 하나였다. 문제는 초기 자금이었다. 센터를 설립하고 운동 및 재활치료 기구를 구매하기 위해선 많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곡성군은 보건복지부의 농어촌특별지원자금을 받기 위해 농업인재활센터 운영에 대한 사업 제안을 했고, 그 결과 계획안이 통과돼 총 10억여원(국비 5억5500여만원, 도비 1억3900여만원, 군비 2억6500여만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의료진의 경우 기존 곡성군보건의료원의 인력을 활용해 구인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장비를 초창기에 구매한 까닭에 이제는 유지·보수 비용밖에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게 곡성군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임인동 곡성군보건의료원장은 “농업인재활센터는 지자체장의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잘 운영될 수 있고, 그 혜택은 고스란히 지역 농업인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서 “다른 지자체에서도 농업인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농업인재활센터를 잘 운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귀숙 곡성군보건의료원 방문보건팀장
“농촌 의료복지, 발병 전 예방에 신경써야”

방문보건팀과의 협업 통해
의료취약계층 건강 상태 공유
쉽게 찾도록 접근성도 중요 

“농업인재활센터는 농업인들의 정신 및 건강 증진을 위해 농촌지역에 반드시 필요한 곳입니다. 농업인재활센터가 타 지자체에도 확산돼 잘 운영된다면 열악한 농촌 의료복지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귀숙 곡성군보건의료원 방문보건팀장은 관내 농업인재활센터의 설립 과정부터 운영까지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그가 농업인재활센터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며 느낀 건 ‘예방의 중요성’이다.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의 수가 도시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 지역에서 발병 후 치료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발병 전 예방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김귀숙 팀장은 지자체가 농업인재활센터를 운영할 때 참고할 몇 가지 정보를 제시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농업인재활센터와 관내 보건의료원의 협업이다. 그에 따르면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건의료원에는 대부분 방문보건팀이 존재한다. 방문보건팀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노령자나 거동이 불편한 의료취약계층의 집에 방문해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이를 농업인재활센터에 보고하면 환자가 농업인재활센터 방문 시 번거로운 절차 없이 맞춤형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김귀숙 팀장의 주장이다.

그는 “농촌의 환자들이 농업인재활센터를 방문하기 꺼려하는 이유 중 몇 가지가 번거로운 절차와 이용 시간 때문인데 방문보건팀이 정기적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해 농업인재활센터에 전달하면 번거로움이 줄어들게 된다”면서 “협업이 반드시 이뤄져야 농업인재활센터의 이용률도 증가하고 농업인의 건강도 증진된다”라고 강조했다.

협업 이외에도 중요한 건 접근성이다. 농업인들이 언제나 쉽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농업인재활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귀숙 팀장에 따르면 곡성군보건의료원 농업인재활센터의 경우 근처에 5일장이 있기 때문에 관내 모든 마을버스가 정차한다. 따라서 농업인들이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다른 지자체에서도 농업인재활센터 설립에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귀숙 팀장은 “의료진과 의료시설에 투자를 많이 하더라도 농업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 의미가 퇴색된다”면서 “농업인들이 언제든 이용하고 싶을 때 편하게 올 수 있는 곳에 농업인재활센터를 설립해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끝>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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