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축산물 관련 복잡한 문제 풀려면
축산 전반 이해도 높은 전문가 시급
소비자 대상 홍보 위해서도 필수


전문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해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랜 기간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보다 대중 매체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더 전문가로 대접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축산업 현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각종 문헌 또는 인터넷으로 얻은 지식이 전문가 의견이 되고, 그것이 일선 현장에 혼란을 주는 일은 지양해야 마땅함에도 대중들이 오히려 자극적인 이런 제안에 더 크게 호응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예를 들면 최근 들어 축산물등급제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는 의견, 닭고기 크기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실 정부와 축산업계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축산업의 본질적이고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고 고민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있다.

축산물등급제는 축산물의 규격 표준화, 농가의 생산효율과 소득 극대화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준 제시 및 부정축산물의 유통근절과 축산물의 품질 및 안전성 증대 등 축산업의 근간을 유지토록 하는 주요 제도 중의 하나다. 불편하니 새로 만들거나 없애자 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결코 아니며, 축산농가 뿐만 아니라 유통업, 금융업 또는 요식업 종사자 등 관련된 수백만 명 우리 국민의 생계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로 신중한 접근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닭고기의 체중을 올리자는 주장도 양계산업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닭고기 사육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장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보통 30일 내외 사육을 통해 2㎏ 정도의 체중을 가진 육계를 생산하는데, 이것은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사육방식과 품질의 최적 조합을 찾은 것이다. 예컨대 육계의 체중을 두 배로 올리면 사료비가 두 배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 배 또는 그 이상 올라갈 수 있고, 분뇨의 생산량도 늘어 환경문제와도 연관되며, 무엇보다 현재 육계는 두 배의 체중 증가를 골격이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복지와도 밀접하게 관련될 수 있다. 또 미국과 같은 축산 선진국에서 육계의 체중을 늘려 부분육 시장을 확대하려는 상황으로 자칫 국내 닭고기 시장의 국제 경쟁력 저하로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단순히 맛을 위해 늘리자 또는 말자고 할 만큼 손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육계 체중 문제는 고려할 부분이 적잖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안다. 다만, 소비자들에게 축산물을 정확하게 홍보하고 때로는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을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 축산분야는 전문성을 갖춘 고급 인력난이 심각하다. 대학의 관련학과나 국책연구소도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구 인력들은 과중한 업무에 내몰리고 있지만 인력보강은 쉽지 않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월간 식료품 지출비 약 36만원 중 가장 비중이 높은 항목은 육류(약 5만5000원)로 조사됐다. 또한 축산업은 국내 농업총생산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며, 미국과 호주에서도 한국을 거대 육류 시장으로 평가한다. 그러므로 축산분야 전문 인력의 비율도 축산업의 비중만큼 전체 농업에서 40% 수준이어야 한다. 물론 이 수치에 근접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현실적인 수준으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전문 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해마다 반복되는 축산물 관련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특히 축산물 관련된 각종 이슈는 다른 식품관련 이슈에 비해 그 심각성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에 전문 인력의 양성은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축산물을 논하려면 가축의 품종 개량과 보존, 사료와 사육방법의 개발, 유통·안전성 등 수많은 고려사항이 있고, 생산단계별로 정부와 업계 또는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연결됐다. 그러므로 축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축산업 전반의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정부, 생산자, 소비자 및 학계가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최적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소비자들이 호평하고 있는 이베리코 돼지고기에서 보듯이 다양한 가축의 품종과 고기 부위별로 맛과 품질을 차별적으로 소비하는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의 다양한 변화에 발맞춰 가축 품종별 또는 육류 부위별 품질 차별화와 이에 합당한 관련 제도의 정비 등에 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합리적이고 치우침 없는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전문가라 함은 문제제기와 함께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방법이 체계적일뿐만 아니라 신중하고 품격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전문가가 될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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