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농정 틀 전환’ 뒤늦게 시동…개혁 추진동력 확보 걱정”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연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주최한 행사에서 “과감한 농정의 대전환” 의지를 재차 피력하며 5대 농정 방향을 제시했다. 관계부처와 농특위는 올해 세부 실행계획 수립을 위한 후속 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5월부터는 공익형직불제가 시행되는 등 ‘농정 틀 전환’이 본격 추진되고, 농특위도 농정 예산 개편 방안을 올해 초 내놓을 계획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가 이미 반환점을 지난 시점에서 추진 동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한 상황. ‘농정 틀 전환’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현장의 체감과 행정 간의 거리감이 커 ‘변죽만 울리는 것 아니냐’는 물음표도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2020년 새해를 맞아 ‘문재인 정부 농정 3년 평가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농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신년좌담을 진행했다.

-일시 : 2019년 12월 24일 오후 2시
-장소 : 서울 송파구 한국농어민신문사 회의실
 

참석자
문광운 한국농어민신문 편집국장(좌장)
장상환 경상대 명예교수
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 교장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문재인 정부 농정 3년 평가

농식품부 장관 공백 길어지면서
출범 초 골든타임 허송세월
농특위 발족도 너무 늦어져
방향 전환만 하다 그칠까 우려


▲문광운(이하 문)=문재인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지났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 성장 일변도와 규모화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농업,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업으로의 전환을 내세웠지만 현장에서는 체감을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3년 평가를 해 본다면.

▲김정섭(이하 김)=돌이켜보면 출범 1~2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게 가장 뼈아프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인수위도 없이 급작스럽게 정부가 바뀌다보니 내세웠던 공약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내고 동의를 구하고 설득을 얻는 과정이 없었다. 그럼 적어도 정권 출범 후 1년 동안은 농정개혁의 방향과 과제를 정리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하는데, 초대 농식품부 장관 사퇴 이후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서 처음부터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부분이 굉장히 컸다고 본다. 가까스로 ‘직불제 전환’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그 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치 않았다.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추진 동력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본다.

굳이 위로를 삼는다면 대통령이 최근 전주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짧은 연설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정 개혁의 방향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연설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농정과 연결돼서 표현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농정 전환을 이제 겨우 선언했다’는 점에서 위로를 삼을 수는 있다고 본다.

▲박기윤(이하 박)=저도 비슷한 의견이다. 기본적으로 너무 늦었고, 현장에서는 농식품부 장관이 장기간 부재했다는 점에서 실망이 컸다. 농특위가 이제야 발족했는데, 아마도 방향을 전환하다가 임기가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게 많은 사람들이 변화와 개혁을 기대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하기에는 힘이 너무 미약하다는 생각이다. 농업농촌도 마찬가지다. 목표는 전체적인 농정의 틀을 바꾼다는건데, 지금 상황에서 임기 내에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까, 그 부분이 여전히 고민이고 문제인 것 같다.

▲장상환(이하 장)=그동안 우리 사회가 고도성장을 해 오는 과정에서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나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등 계층 간 문제, 그다음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 확대 문제, 농업의 낙후 문제 등 3가지가 큰 문제로 대두됐다. 문 정부는 집권 후 비정규직 문제에 상당히 강조점을 뒀다. 상대적으로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 문제, 농업 문제는 국정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농식품부 장관 부재기간이 길어진 것도, 농특위 발족이 늦어진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다. 

왜 밀렸느냐를 보면, 농업계의 의견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사실 그동안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 왔지만, 수입개방 문제도 그렇고, 구조조정 문제도 그렇고, 어쩔 수 없이 적응하며 정부에 끌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기대했던 것에 비해 너무 실적이 저조해서 앞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농정 틀 전환의 의미

'사람 중심 농정' 큰 틀엔 공감
공익직불제 도입만으론 불충분
농촌사회 지속가능성에 초점
입체적 정책수단 개발 급선무


▲문=농정 틀 전환의 의미를 짚어본다면.

▲장=우리나라 농정의 변화 과정을 보면, 1970~1980년대까지는 증산 중심이었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선진국은 이 같은 증산정책으로 농산물 과잉생산이 초래되자 가격 지지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했고, WTO체제 이후 가격지지가 어려워지자 직불 등을 통한 농가소득 보장 쪽으로 농정을 전환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경로를 따르지 못하고 증산하다가 곧바로 WTO 이후 구조조정정책을 추진, 소수 상층농에게 생산 구입비용을 지원하는 쪽으로 갔다. 결국 수혜는 자재업자들이 보고, 혜택을 보지 못한 농민들과 격차만 커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농정을 전환한다고 하면, 결국 우리가 건너뛴 농업보호정책, 즉 소득보장과 가격안정 부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지금도 농민들이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농산물 가격불안 문제다. 문제는 정부가 ‘농정 틀의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보면 기존 농정기조는 유지하면서 보태는 정도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

▲박=수백가지 보조사업 중심의 농정에서 사람 중심의 농정으로 농정의 틀을 바꾸겠다는 정부의 방향은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여기서 수반되는 많은 저항들은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농업·농촌을 너무 특별하게 보기보다는 농업·농촌도 도시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보편성을 기준으로 접근해 주었으면 좋겠다. 즉, 대도시 못지 않게 농촌에서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보편적인 사회안전망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농정 틀 전환이 시작됐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불안한 구석이 많다. 앞으로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정부가 강조하는 공익형 직불제는 아무리 농업예산을 늘린다고 해도 상당히 불충분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전환의 방향이 ‘지속가능성’이라고 한다면, 농촌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인 정책수단을 개발,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농촌지역사회의 사회적인 측면, 환경적인 측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그것이 농가 및 농촌경제에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도 일조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다. 직불제는 그런 입체적인 정책들의 포트폴리오 안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는, 안전판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공익형 직불제 도입

소규모 다수 농가에 혜택 긍정적
변동직불금 폐지 불안감 여전
가격안정 위한 별도의 장치 필요
일종의 최저임금 국민 공감 얻어야


▲문=공익형 직불제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눠보자.

▲장=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한 농업의 공익적 기여에 대해 직불금을 지급함으로써 다수의 농가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방향이다. 문제는 변동직불금 폐지인데, 가격 불안정 문제에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다수 농민들은 변동직불금을 다른 품목까지 확대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농업수입보장보험 확대 등 별도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지금 지자체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농민수당은 지자체에 맡길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정책으로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특히 공익형직불, 가격변동직불 등을 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많이 필요한데, 추가적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비효율적으로 사용됐던 예산, 즉 상층농 중심 생산재 구입비용이나 과잉 중복 투자예산 등을 대폭 삭감, 전환해야 한다.

▲김=공익형 직불제가 보상이냐 투자냐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수가 보상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공익형 직불제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상 논리로만 보면 함정이 많다. 제가 볼 때는 농업 자체가 공익적 기능을 자동으로 산출하는 게 아니라 농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농업을 환경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할 수도 있고 고투입으로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환경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촌에서 먹고 살 수 있게 ‘투자’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변동직불금 폐지 문제는 결국 예산 규모로 볼 때 총량 면에서는 후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동직불이 가지고 있는 가격안정장치는 사라진 셈이니 경영 불안을 완화시킬 별도의 정책 사업이 분명히 나와야 한다.

▲박=직불제는 기업으로 보면 일종의 최저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직불제 자체로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기반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왜 농업에만 그런 혜택을 주느냐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농식품부나 농민단체 차원에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고, 그동안 수출기업 등 국가 기간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쏟은 예산이나 특혜 등도 비교해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기존 보조사업 예산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특히 지방분권으로 농정 예산이 지자체로 더 내려가는데, 그럼 점점 더 지자체의 정치적 부분에 농민들은 목이 조일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농민단체도 줄을 서야 하는 마당이고, 지자체도 보조금을 들고 줄 세우기를 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옆집에서 보조금을 받아서 비닐하우스를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나만 바보인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잘못 쓰이고 있는 현행 보조금을 직불제나 농민기본소득으로 돌린다면 현재 예산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마트팜 확산정책

소수에만 특혜·과잉생산 위험
투입 대비 산출 효과도 의문
정부 지도받아 농사짓는 시대 지나
농민 의사 얼마나 반영했나 반성


▲문=혁신성장을 모토로 스마트팜 확산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장=농업의 스마트화는 필요하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농업의 기술혁신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을 농가에 거대한 보조금을 줘서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 정부가 수천억원을 투입해 4개 지역에 혁신밸리를 조성 중인데 과잉 투자의 위험이 크다. 지금 현재도 수출 한계에 도달한 상황인데, 여기에서 더 증산하게 되면 결국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하락 위험이 있다. 그 다음 투입하는 비용 대비 효과가 비효율적이다. 소수 농가에만 특혜가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산시설 지원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박=그동안 시설자동화 등은 꾸준히 진행해 오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사업이 추진되는 순간 마치 그동안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사업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진행돼 버린다. 그러면서 그와 관계된 수많은 자금이 투입된다. 정부가 여전히 우월한 농업기술이나 시스템을 농민들한테 가르치고 주입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겠다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뭘 지도하고 농민들이 그 기술을 지도 받아 농사를 짓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면 농민들은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찾아간다.

▲김=박 선생님의 지적에 동의한다. 긴 호흡을 가지고 농업기술 발전의 역사를 보면 쓸 만한 농업기술은 농민들이 다 만들어낸 것이다. 나중에 과학자들이 따라가서 표준화하고 규격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스마트팜 정책 뒤에 있는 담론의 배경에는 농업을 기술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농민의 역량, 농민들의 주도권이 사라지고 없다는 부분이 있다. 4차산업 혁명시대에 빨리 올라타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이 주도하는 영역의 농업을 강조하고 있다. 이게 진정한 의미에서 농업기술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의문이다. 또 하나, 스마트팜 정책에서 지적할 지점은 1조원이 넘는 농업 관련 R&D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농민들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되는지, 실제 반영되는 구조가 있기는 한 것인지 하는 점이다.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한국농어민신문은 2020년 새해를 맞아 ‘문재인 정부 농정 3년 평가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신년좌담을 진행했다. 경남 진주, 강원 화천, 전남 나주에 각각 연고지를 두고 있는 장상환 교수, 박기윤 교장, 김정섭 연구위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정부 주도 획일적 사업 부작용…긴 호흡 현장역량 키워야”

◆사회적 농업과 청년농, 로컬푸드

사회적 농업 사업적 접근은 안돼
로컬푸드 보조금 ‘농협이 반독점’
지역 특성 살린 청년농 육성 필요
충분한 트레이닝 후 농지 등 보장을


▲문=사회적 농업 활성화, 청년농업인 육성, 로컬푸드 등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다.

▲김=사회적 농업은 그동안 없었던 영농스타일이다. 사회적 공공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사회에서 농민 중심으로 지역구성원이 합심해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농업활동과 연계해 풀어보겠다는 의미에서 혁신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개별 농가들을 포함해서 지역의 주민들, 사회복지기관과 같이 협업해 풀어보자는 관점이 크다.

청년농업인 육성 문제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1년에 의사 자격증을 받는 20~30대 신규 의사들이 3000명 정도인데, 40세 이하 신규 귀농인은 2400명 정도다. 1년에 나오는 의사 숫자보다 농부 숫자가 적은 거다. 그야말로 지속가능성의 위기다. 그럼에도 새로 농촌으로 들어온 다수는 제대로 된 교육기회가 없고, 영농기반 마련이 쉽지 않다. 현장 중심적인, 현장에 뿌리를 내린 청년농업인 육성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로컬푸드는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공급망에서 가격 문제는 고사하고 아예 팔 데조차 없는 소농들을 위해 추진한 정책이다. 문제는 운영되고 있는 매장 중 몇 퍼센트가 취지를 살려 사업을 하고 있는지 보면 굉장히 회의적이다. 이유는, 로컬푸드 정책의 보조금 대부분이 지역농협으로 흘러가면서, 로컬푸드 정신은 없이 하나로마트 증축 효과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 말고도 담보는 없지만 로컬푸드를 직접 운영하겠다는 소농그룹들이 꽤 있고, 이 사람들을 도와주면 괜찮을 텐데 왜 정부 보조금 사업을 농협이 반독점하고 있나. 이 부분을 고쳐야 된다고 본다.

▲박=사회적 농업 자체의 당위성 부분은 공감한다. 하지만 사업화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가 많다. 정부 사업 형태를 보면 모델을 만들어 보조금을 투입,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인데 이렇게 해서 성공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기존에 보면 관광농원 하던 분이 그 다음 체험농장으로, 또 교육농장으로, 최근엔 치유농장, 돌봄농장으로 갈아타고 있다. 정부는 스스로 잘하고 있는 현장을 발굴해 알리고 홍보하는 정도로만 해주면 좋겠다.

로컬푸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완주처럼 전주라는 대도시 기반을 잡고 있는 지역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지역도 있는데 획일적으로 지원하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우리 동네에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에는 우리 지역 농산물이 못 들어간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농협의 역할이다. 이 부분을 소홀히 하면서 농협이 로컬푸드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청년농 육성정책도 사업화되면 다 똑같아진다. 지역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른 만큼 지역화되고 특성화 될 수 있는 섬세한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

▲장=사회적 농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보조금보다는 자기 책임성을 높이는 구조로 가야 한다. 너무 갑자기 확장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도록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체크하는 기능을 살려 과다 공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농업인 육성은 지금이라도 선진국형으로 가야 한다. 후계농이든, 청년농이든 트레이닝 기간을 장기간 충분히 받아야 하고, 그 사람들한테 농지와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식으로 가야 청년농을 육성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돈을 주는 부분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다.


◆놓치고 있는 개혁과제-농지·농협

부당한 농지소유 처분명령 내리고
농지농용원칙, 투기수요 없애야
조합장 막강한 권한이 문제
품목별 연합회로 농협 개편을 


▲문=농지개혁과 농협개혁 등 개혁 논의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장=1994년 농지법을 제정하면서 비농업인 소유 농지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버린 게 패착이었다. 일정기간 동안 매각하라든지 강제 조항이 있었어야 했다. 농지 문제는 비농업인 소유와 전용에 따른 기대수익 증가 등 두 가지 때문에 심각해졌다.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농업인들이 산다. 주택과 마찬가지로 농지에 대해서도 투기적인 것은 안 된다는 선언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전용이 됐을 때 전용에 따른 수익을 정부가 환수하는 조치를 강력하게 추진하면 농지가격이 상당히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이 부분을 확실히 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농지를 확보할 수 있지 않겠나.

농협은 신경분리를 했지만 여전히 농산물 판매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지주회사의 경제사업과 회원조합의 경제사업이 충돌하면서 전체적으로 힘이 안 모이는 상황이다. 지금 농협은 농민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통해 10만 구성원들이 소득을 올리는 이상한 조직이 돼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품목별연합회 방식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중앙회장 선출방식을 민주적으로 개선해 농민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농지 문제는 부재지주 문제, 농지소유의 양극화 문제, 농지 전용 문제가 중요하다. 이것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을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농지법상 부당하게 농지를 소유한 것들에 대해서는 처분 명령을 내려야 한다. 실제 적용이 안 되더라도 사인을 계속 줘야 한다. 지금 문제는 임대차 관계다. 이미 사실상 절반 이상의 농지가 임대차 관계에 들어가 있다고 보는데, 차라리 임대차를 허용하고 그것을 엄격히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구를 농촌 지역사회에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일각에서 경자유전이 아니라 농지농용의 원칙을 적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 교수님 말씀대로 투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지에서는 농사만 지을 수 있도록 하면, 농지에서 얻을 수 있는 불로소득의 기대수익이 줄고, 그러면 사람들의 농지 소유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박=지역에서 가장 예민한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도, 군수 선거도 아닌 조합장 선거다. 그만큼 조합장이 되면 조합장 끗발로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조합장의 막강한 권한이 문제다. 

또 하나는 농업인 기준을 상향 조정했으면 좋겠다. 현재 300평만 소유하면 농업인인데 적어도 농사짓는 농민이라고 하면 1000평 정도는 돼야 한다. 이를 기준으로 농업인과 관계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소규모로 분할돼서 생기는 땅 문제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청년농업인들의 농지 임대가 3년 거치 7년 상환이었는데, 이제 겨우 5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바뀌었다. 사실 기반을 만들어줄 정도가 되려면 10년 거치 15년 상환이라든지 20년 이상 늘려 줘야 한다. 


◆2020년 전망과 과제

농민단체 역량 키워 제 역할해야
여전한 개발우선주의 사고 탈피
지역 구성원으로서 청년농 육성을
정부-현장 멀어진 거리 회복부터


▲문=2020년은 공익형직불제 시행 원년이고, 21대 총선이 예정돼 있다. 2020년 전망과 과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장=선거라는 것이 유권자로서는 기회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선출 과정에서 공약을 내놓기는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시정할 것이냐가 문제다. 역시 농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시군단위별로 농민단체협의회가 있는데,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시장이나 군수가 의견을 듣는 정도에 그치고 사업에 협조해 달라고 안내하는 창구 역할에만 머물고 있다. 농민단체를 활성화하는 게 정말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농민단체도 실력을 키워야 한다. 미국 의회는 농업위원회가 중심이 돼서 농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우리도 이런 부분들을 활성화해야 한다. 

▲박=‘농정 틀 전환’은 다음 정부까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농정 틀 전환을 현 정부의 성과로 가져가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여전히 정부 내에 개발우선주의 사고가 만연돼 있다. 한 방에 몇십억씩 주는 사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을에는 노인정까지 걸어올 수 없는 분들이 많다. 만일 내가 이장이라면 마을사업으로 승합차 한 대를 사서 공동급식, 마사지, 체조하는데 노인 분들을 모셔다 드리고 모셔올 것이다. 인건비 지급까지 1년에 1억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한 10년 지속되면 그 마을은 노인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청년들 데리고 제발 장난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1차 산업인 농업의 소중함을 가르치지 않고, 3차 교육을 하면서 그것을 6차산업이라고 호도해선 안된다. 농업기술자가 아니라 지역 구성원을 키워낸다는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긴 호흡으로 봤을 때 걱정되는 것이 있다. 농식품부나 다른 부처, 저희 같은 연구기관도 마찬가지다. 시골에서의 일상 생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너무 모른다는 점이다. 모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고, 그러면 제대로 된 정책 수립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멀어진 거리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치 투쟁도 필요하지만, 투명인간이 돼 버린 농민과 농업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또 다른 실천이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다. 농민단체가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바라건대 다양한 생업을 가진 가구들이 골고루 소박하게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농촌 지역사회를 꿈꾼다. 보다 세심하고 균형감 있는 정책적 배려와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김선아·고성진 기자 kimsa@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