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농촌 의료복지의 민낯

[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대한민국 사회에 웰빙이 깊이 뿌리내리자 최근에는 반대로 ‘건강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건강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재산의 크기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다. 특히 건강 불평등은 농촌 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의료시설이 ‘효율과 수익성’에 따라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 집중돼 있어,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건강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에 해결방안을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 인구가 해가 지날수록 급격히 줄어들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일부 의료원은 매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의료인 중 농촌 지역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까닭에 정부도 선뜻 의료 기관 확충을 결정하지 못하는 등 뚜렷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보는 상편과 하편에 걸쳐 농촌 지역 내 의료 시스템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어떠한 대안이 있는지 알아본다.


농어촌 지역 의료기관
2017년 기준 5만8678곳
도시의 12.9% 수준 머물러

농촌 근무 희망자도 없는 탓
군 단위 의료인력 고작 8019명
전체 14만1600명 중 소수 뿐

읍내 종합병원 장비·시설 부족
응급환자들 병원 찾아 헤매
잔린 손가락 수술 포기 사례도 

공중보건의료인력 양성법 등
국회, 법안 통과 적극 나서고
농식품부 정책 수립 참여해야


◆농촌 주민, 아파도 치료 받을 수 없는 게 현실

#경남 의령군 칠곡면에 거주하는 박래녀(64) 씨는 최근 가슴을 쓸어내리는 큰일을 겪었다. 늦은 밤 같은 동네에 사는 아흔 살의 시어머니에게 갑작스레 오한과 발열이 발생했다. 부리나케 시어머니를 모시고 읍내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응급환자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와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다른 큰 병원으로 가길 권유했다. 고령의 시어머니가 걱정돼 해열제나 기본적인 응급처치만이라도 해주길 부탁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하는 수 없이 주변의 큰 병원을 검색했는데 칠곡면에서 차로 40여분 떨어진 창원에 위치한 대학병원 밖에 대안이 없었다. 혹시 모를 이동 중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병원에 119 구급대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사설 구급대 밖에 부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 온 후 119 구급대를 불러 창원의 대학병원까지 이동했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병원에 도착해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고 상태가 회복됐다.

박래녀 씨는 이 같은 일이 있고난 후 농촌 지역 의료 시스템에 대해 많은 불신이 생겼다. 자신이 급작스레 아프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과연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또 이 같은 일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기 안성시 공도읍에 거주하는 이길숙(67) 씨는 최근 손가락이 절단돼 봉합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그는 지금도 사고 당일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고 한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집에서 메주를 만드는 날이었다. 기계에 콩을 넣고 간 후 지저분해진 기계를 닦았다. 하지만 기계의 전원을 차단하는 것을 깜빡했고, 기계에 고무장갑을 낀 손이 말려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손을 급하게 뺐지만 이미 손가락 한마디가 절단된 후였다.

급한 마음에 절단된 부위를 지혈하며 평택에 위치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 막상 응급실에선 절단된 부위를 찾아와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절단된 부위를 찾아 응급실에 도착했더니 봉합수술을 하는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으로 안내했다. 이 때까지 걸린 시간이 3시간 남짓이었다. 또다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 운 좋게 봉합 수술을 마쳤다. 하지만 절단 이후 수술까지 오랜 시간이 흘러 회복이 더딘 상황이다.

이길숙 씨는 그날의 악몽을 떠올리며 자신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안성시와 평택시가 수도권에 위치해 비록 이동시간은 길어도 봉합할 수 있는 병원이라도 존재했다. 하지만 수도권이 아닌 농촌 지역에는 이마저도 힘든 게 현실이라는 것이 이길숙 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타 지역에 거주하는 이길숙 씨의 지인은 모내기철에 콤바인으로 작업을 하다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는데 지역에 봉합을 할 수 있는 전문 병원이 없어 수술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농촌 의료 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의 의료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도시와 농촌 간 ‘건강 불평등’은 이미 심각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내놓은 ‘2018년 농어업인 등에 대한 복지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도시 내 의료기관은 총 5만8678개소이고, 농촌 내 의료기관은 7591개소로 도시의 12.9%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급성질환이나 응급질환을 진찰 및 치료할 수 있는 급성기 의료기관의 경우 도시는 2만9109개소, 농촌은 3657개소로 12.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병원 병상 수도 도시와 농촌 간 큰 격차가 존재했다. 도시의 경우 2017년 기준 14만1000개인 반면, 농촌은 9000개로 도시의 6.5%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의료기관의 차이는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 사망률의 경우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가 높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적당한 때 이뤄졌을 때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일컫는 ‘치료가능사망률’의 경우 가장 낮은 5개 시군구(인구 10만명 당)는 서울 강남구 29.6명, 서울 서초구 30.1명, 경북 울릉군 30.3명, 성남시 분당구 30.3명, 용인시 수지구 30.9명으로 나타났다. 반면 치료가능사망률이 가장 높은 5개 시군구는 경북 영양군 107.8명, 강원 양구군 92명, 충북 음성군 86.3명, 경남 밀양시 82.1명, 경남 의령군 80.9명 순으로 대부분 농촌 지역에 포진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의료인력 또한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극단적인 차이를 보였다. 환자를 돌볼 의료인력이 도시에 편중돼 농촌 주민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17년 기준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 등의 보건의료인력수는 14만1600명으로, 이 중 대도시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인력은 7만6445명, 수도권 7만3721명, 시 13만3581명인 반면 군 단위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인력은 고작 8019명밖에 되지 않았다. 

농촌 지역에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국회에서는 공공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해 지역에 보건의료인력을 공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성남 수정구)의원은 지난 2018년 4월 보건복지부와 ‘국립공공의료대학(원) 설립추진 계획’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9월에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률안의 주요내용은 공공보건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해 2023년까지 전북 남원에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을 설립해 운영하고, 국가에서 입학금과 수업료, 기숙사비 등의 학업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장학금 혜택을 받은 공공보건의료인은 군복무 기간과 전문의 수련 기간 등을 제외하고 10년간 지역에서 의무 복무를 하며, 미이행 시 의사면허를 취소하고 10년 이내 재발급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와 관련 김태년 의원은 “의사인력의 수도권 집중, 의료취약지 근무기피 현상 심화, 공중보건의사 감소 등으로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사인력 공급 부족이 문제되고 있다”면서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양질의 균형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보건의료 전반을 기획·조정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이 필요하다”라고 법률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해당 법률안은 야당과 의료계의 반발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특히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재상정될 가능성 역시 희박한 상황이다. 이에 전북시군의회의장협의회는 해당 법률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또 다른 농촌 의료복지의 문제점은 ‘정책과 연구의 부재’이다. 안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 보건 의료 정책은 매우 우수하다.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정책을 효율성을 강조하며 도시의 시각으로 수립하기 때문에 농촌 지역은 소외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보건의료정책 수립 단계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농촌의 시각이 정책 수립과정에 포함이 되는데 농식품부 내 담당 인원도 부족하고,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아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다는 게 안석 부연구위원의 설명이다. 따라서 안석 농경연 부연구위원은 국내 농촌 의료복지 향상을 위해선 반드시 농식품부가 해당 업무 인원을 늘리고.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정책 수립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농촌 의료 복지 관련 연구도 많지 않아 정책 수립이 되지 않는 등 무한의 굴레에 갇힌 현실도 함께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이와 관련 안석 부연구위원은 “농촌 주민들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지금까지의 국내 보건의료정책은 도시 시각에 머물러 있어 농촌 주민들은 소외돼 왔다”면서 “이와 더불어 국내에 농촌 의료 복지 관련 연구자들도 많지 않고 이에 따라 연구 결과물도 많지 않은데 언론이나 농민단체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야 농촌 의료 복지 관련 연구도 이뤄지고 정부에서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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