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귀농청년 #마을기업 #노인돌봄 #사회적농업 #이주여성 #순환농업

 

▲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가 ‘우리 마을 119’ 사업으로 농촌 노인 복지 서비스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윤요왕 대표와 마을 주민 홍영순·이춘남·김화림 씨, 노인복지 담당 '나좋을팀'의 최대영 팀장과 김다현 생활복지사다.

부모님 집 TV가 안 나올 땐 TV가 고장 나서가 아니라 리모컨의 ‘외부입력’ 버튼이 잘 못 눌렸을 가능성이 크다. 소리가 안 나올 땐? ‘음소거’ 버튼을 먼저 확인해 봐야 한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얘기다. 

한적한 농촌 마을 혼자 사는 노인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까. ①면사무소 ②동네 이장 ③도시에 사는 자녀 ④119. 정답은 ④번이다. 진짜 ‘119’가 아니라 ‘우리 마을 119’.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주민들은 ‘우리 마을 119’를 부르면, 이런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부탁할데 없는 
농촌 어르신 위해
‘나좋을팀’ 만들어
생활 밀착형 케어

직접 집 찾아가
부품값만 받고
문제해결 ‘뚝딱’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 케어 
생활권 단위 펼쳐야
실질적인 도움돼

전담 인력만 두면
적은 예산 큰 효과
우리마을 119 사업 
농촌사회 확산 시급


◆‘나이 들기 좋은 마을’=‘우리 마을 119’ 사업은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별빛마을(고탄리, 고성1·2리, 송암리, 인람리, 가일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 밀착형 토털 케어 서비스’다. ‘우리 마을 119’ 사업을 펼치는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는 이곳 주민들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우리 마을 119’ 스티커를 나눠 주고,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팀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윤요왕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대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10여 년 전 그가 마을 이장 일을 할 때였는데, 마을 방송을 하고 내려오던 길에 한 할머니가 집에 LPG가스가 안 나온다며 그를 불렀다. 가보니 새 가스통 밸브만 틀면 되는 일을 몰라 몇 일째 휴대용 가스버너에 밥을 짓고 있었다. 이에 그는 마을 청년들과 자원봉사단을 결성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땔감용 나무를 전해주거나 병원에 모셔다 드리는 일을 자발적으로 해왔다.

윤요왕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농촌 어르신들이 부탁을 쉽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녀들은 대부분 도시에 나가 있고, 마을에 사는 청장년들은 농사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먹고 사니, 바쁜걸 아는 어르신들이 쉽게 부탁을 못 한다”고 말했다. '우리 마을 119'가 탄생한 배경이다.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는 ‘우리 마을 119’ 사업을 위해 전담 인력을 두고 별도의 팀을 만들었다. 외부에 말할 때는 이해하기 쉽게 ‘노인복지팀’이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나이 들기 좋은 마을팀’, 줄여서 ‘나좋을팀’이다. 자원봉사처럼 해왔던 일을 조직적으로 손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마을 119’ 사업 체계는 단순하다.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생활하며 불편한 일이 생기면 센터 직원이 집을 방문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구멍 난 방충망을 보수하기도 하고, 씽크대 수전을 교체해 주기도 한다. 돈이 많이 안 드는 건 무상으로 고쳐주고, 부품 값이 비싸면 실비를 받는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면, 업체를 연결해 준다.

수요조사를 실시해 농촌 노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찾기도 한다. 이른 바 ‘발굴 사업’이다. 한 예로 산골센터는 얼마 전 수요조사를 실시해 노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의 등을 LED등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춘천별빛산골센터 최대영 나좋을 팀장은 “이미 고령화된 농촌 마을에는 사회복지사가 해줄 수 없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오늘도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해 가봤는데, 단순히 전기 플러그가 뽑혀 있었다. 사소하지만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나좋을팀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춘천별빛산골센터에 반찬나눔 활동을 하러 오는 김화림 씨(71)도 얼마 전 집안 전구를 교체하는 도움을 받았다. 그는 2남 1녀의 자식을 두고 있지만 모두 도시 생활을 하고, 지금 집에는 남편 이석희 씨(78)와 둘이 산다. 김화림 씨는 “나이가 들다보니 사다리에 올라 등을 바꾸는 일 조차 쉽지 않다”며 “편하게 부탁할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초고령 사회 농촌의 복지 모델=우리나라는 2026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이에 정부는 2018년부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노인 복지를 강화해 나가는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노인 복지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기존 복지 시스템에 예산과 인력을 더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과 같은 기준에 가려져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복지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도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이미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농촌 지역의 경우 농촌 특성을 고려한 노인 복지 모델이 필요한 상황.

윤요왕 대표는 “경로당에서 점심도 주고 잔치도 열어주는 게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만, 밤에 형광등이 나가 깜깜해도 당장 고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픈 것”이라며 “정부의 ‘커뮤니티 케어’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기존 복지관 중심의 돌봄 서비스와 같은 그림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어 “춘천별빛마을센터가 운영하는 ‘우리 마을 119’ 사업을 기존 복지 시스템대로 운영하려면 팀원이 전기기사 자격증 등을 갖춰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진정한 의미에서 커뮤니티 서비스가 이뤄져야 농촌 노인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별빛마을의 경우 주민 중 70대 이상 노인이 30%에 육박한다. 한 마을에 살며 아들이 아니면, 아들 친구라도 불러 부탁할 수 있는 농촌의 모습은 옛날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최대형 나좋을 팀장은 “이곳 청년들과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게 10여년 전 인데, 그로부터 10년이 더 흘렀으니 농촌 노인 문제가 얼마나 더 나빠졌겠냐”며 “진단서도 없고, 겉으론 멀쩡해도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다. 정부가 일자리 사업 얘기를 하는데 이런 곳에 전담 인력을 두면 적은 예산으로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춘천시에서는 별빛마을을 포함해 총 4개 권역에서 ‘우리 마을 119’ 사업이 시범적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꼭 많은 예산이 아니더라도 농촌 노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춘천별빛산골센터의 경우도 복지 사업 전담 인력에 대한 비용 문제만 해결된다면, 실제 쓰이는 사업비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추진한 시범사업에서도 서비스 1건당 인건비와 재료비를 각각 3만원 씩 책정해 운영했는데, 1회 수리서비스 재료비는 3만원을 넘지 않았지만 인건비는 모자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농촌 노인 복지 서비스의 내실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농업 관련 부처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윤요왕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농촌 마을에 있는 조직을 활용하면 ‘우리 마을 119’와 같은 사업을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다“며 ”사업 주체는 마을방범대가 될 수도, 생협 조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농촌을 잘 아는 농업 관련 조직에서 예산을 확보하고 관심을 가져야 사업이 더 내실 있게 추진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산골유학센터를 운영하는 윤 대표는 “주민들이 행복감을 갖지 못하는 마을에 누가 농촌유학을 오고, 귀촌을 할 수 있겠냐”며 “복지보다 농가 소득이 먼저라는 인식을 버리고, 스텝바이 스텝이 아니라 지금 당장 농촌 현실에 맞는 노인 복지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마을 119’ 사업은 단순한 노인 복지 서비스를 넘어, 늙어가는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사업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윤요왕 대표
“농촌 계속 유지되려면 주민이 행복해야”

“농촌 개발 사업으로 새 건물 들어서고, 새 농기계 들어오면 행복한 농촌 마을입니까. 밤에 불이 나가 깜깜해도 편히 불러 고쳐줄 사람하나 없는데요.”

윤요왕 대표가 “농촌의 현실이 어떤지를 다시 한 번 바라봐야 한다”며 한 말이다. 그동안 경제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농업이 타 산업에서 계속 밀려 왔듯, 농촌 내부에서 조차 농업 소득과 농촌 개발이라는 명분에 밀려 농촌사회 내부를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요왕 대표는 “국가의 격이라는 게 그 나라의 사회적 약자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가 국가의 격을 보는 척도라는 말”이라며 “그런 면에서 농촌에도 이주여성이나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있고, 이들이 행복해야 행복한 농촌 마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농촌이 계속 유지되려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일에 앞서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이러한 행복은 큰 예산을 들여 풀 문제가 아니라 아주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 

윤 대표는 “요즘은 농촌에도 몇 억씩 버는 사람들이 있죠. 소득을 그만큼 올려야 행복한 걸까요. 그렇지 않다”며 “청장년층이 느끼는 행복의 척도랑, 노인들이 느끼는 행복의 척도는 전혀 다르고, 이런 부분을 잘 들여다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김관태 기자 kimkt@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