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상주 아천1리 마을 ‘프로젝트 1980’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귀농청년 #마을기업 #노인돌봄 #사회적농업 #이주여성 #순환농업

 

▲ “가자, 1980년대로…”,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과 장동범 이장은 아천1리 마을 환경을 1980년대로 돌려놓아 지속가능한 마을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아천1리 마을이 비상하고 있다.

“연출을 안 해도 된다면 언제든 오시면 됩니다.” 경북 상주시 이안면 아천1리에서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백아름 씨는 본보의 취재 요청에 ‘연출은 하지 않겠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더도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백 대표를 비롯한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은 이들의 멘토인 아천1리 장동범 이장과 함께 아천1리 마을을 시나브로 1980년대로 돌려놓고 있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았던’ 1980년대와의 응답을 통해 지속가능한 마을의 미래를 그려가겠다는 것. 그 첫 시작은 장동범 이장이 귀농 4년 만에 이장이 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00억대 벤처
직접 이끌던
귀농 7년차 이장
폐교에 공부방 넣고
체리 단지도 성공

지속가능한 마을
청년 있어야 가능
거처 등 마련해줘

20~30대 9명 모인
청년이그린협동조합
대부분 폐교서 살며
1980 프로젝트 주도

생활하수 줄이고
유기농업 도전
환경 바꿔나가며
체험·관광 등 연계

마을 어르신들
“농활 왔나 했는데
이젠 친손주 같아”


◆귀농 4년 만에 주민 추대로 이장이 되다=지금은 마을 이장이 된 것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장동범(60) 아천1리 이장은 이곳에 귀농하기 전엔 농(農)과는 다른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청춘을 보냈고, 1000억원대의 벤처회사를 직접 이끌기도 했다. 고향도 서울로, 농업·농촌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장동범 이장의 농촌행은 ‘건강 회복’ 단 하나의 이유였다.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갔다고 해야 하나, 간경화로 몸이 상당히 안 좋았어요. 그래서 도시 생활을 다 정리하고 지인이 추천한 아천1리 마을에 정착했죠. 지금은 거의 회복이 됐고요.”

약 7년 전 귀농한 장 이장은 처음엔 건강 문제 등으로 마을과는 거리를 뒀다. 그러던 중 경관 훼손과 환경문제 야기 등을 이유로 주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수상 태양광 발전소가 이 지역 저수지에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고, 고령이었던 주민들을 대신해 민원을 해결하면서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이 시작됐다.

이후 10년 전 문을 닫은 폐교를 공부방으로 변모시키고, 경북 최초의 체리 특화단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마을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주민 추대로 2017년 이장을 맡게 됐다. 이장이 된 이후 그의 행보는 마을의 지속가능성과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마을에 점점 동화돼가면서 우리 마을이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마을이 될 수 있을지,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다 여러 일을 구상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 일을 실행에 옮기려면 청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폐교에 청년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까지 하게 됐죠.”

◆농촌에서 가치를 본 이삼십대 청년들=장동범 이장의 생각은 조카 이신서 씨에게 권유하며 첫발을 내딛게 됐고, 사회적기업 설명회 등에서 청년들을 만나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됐다. 부산에서 농촌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올해 서른의 주슬기 씨와 그 친구 백아름 대표, 그리고 함께하는 청년들이 늘면서 2017년 의기투합해 청년이그린협동조합을 결성하게 됐다.

현재 폐교에서 대부분 생활하고 있는 청년이그린협동조합 구성원은 정조합원 7명, 비조합원 2명 등 모두 9명에 이른다. 나이 대는 21세에서 35세까지 이삼십 대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의 사연 역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친구 소개를 받고’, ‘귀농한 아버지의 권유로’, ‘지역설명회를 듣고’, ‘남편이 상주 기관에 취업하게 돼서’ 등 다양하다. 1월엔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는 2명의 청년이 더 합류할 예정이다. 이들은 공유오피스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청년들 중 처음으로 아천1리행을 결단한 주슬기 씨는 “이십 대 초반부터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으면서 지냈다. 그래서 농업·농촌에 대한 강의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다”며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농업은 생태 환경과 건강한 먹거리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백아름 대표는 “농촌에서의 사회적기업을 꿈꿨지만, 그 이면엔 나름대로 농촌에 대한 로망도 있었던 것 같다”며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대하고 마을에 더 다가가면서 공동체가 지니는 즐거운 삶, 가치 있는 삶을 느껴가고 있다”고 전했다. 백 대표는 “부산에 사시는 부모님도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자식이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응원해주신다”며 “마을과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상생하고 교류하며,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자는 게 우리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농촌 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은 이곳에서 폐교를 활용해 카페, 공방, 놀이터, 도서관, 가공장 등을 운영하며 아천1리 마을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또한 장동범 이장이 기획한 ‘프로젝트 1980’의 주도적인 역할을 할 이들도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이다.
 

▲ 사진 왼쪽부터 백아름(30) 대표, 조성용(32) 씨, 장동범(60) 이장, 주슬기(30) 씨, 마민지(30) 씨, 한재웅(28) 씨.


◆1980년대로 시선을 돌리니 따라올 것들=“비 오면 저수지에 살던 붕어와 새우가 논둑까지 올라오는 1980년대의 아천리마을을 다시 만든다면 지속 가능한 마을 경쟁력은 반드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장동범 이장과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은 1980년을 주목하고 있다. 1980년대로의 회귀가 아천1리 마을의 앞날을 보장해준다고 확신하고 있다.

장 이장은 “우리 마을이 살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는데 우리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20만평(66만㎡) 가량의 저수지가 있어 농지가 적다. 대규모 농사나 기업농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게 할 자본도 없다”며 “그렇다면 소농에 적합한 농업 환경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프로젝트 1980’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1980년대 이 마을에선 비가 오면 저수지에서 붕어와 새우가 논둑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요즘 말로 대박이라고 봤다”며 “그래서 정부의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마을에 선정돼 생태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 복원을 추진하면서 중점을 뒀던 것 중 하나가 생활하수를 줄여 저수지와 개울의 오염을 막는 일이었다. 그래서 합성세재 대신 EM을 써서 미생물이 죽어 나가는 걸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친환경으로의 전환도 도모하고 있다. 전국의 친환경 베테랑 전문가들을 초청, 1박 2일 세미나 등을 열며 농업 환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장 이장은 “내년에 청년들과 4000평(1만3200㎡) 규모의 유기농 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벼, 고추, 오이 등 30여 가지 작목을 유기농으로 길러 품위를 좋게 한다면, 공공급식 등 판로에도 자신이 있다”며 “우리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잘 정착시키는 걸 지역 주민들이 본다면 주민들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활동들을 기본에 두고 아천1리 마을은 체험과 관광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찾아 나설 계획이다. 이에 마을 뒤에 위치한 800m 고지의 작약산과 마을 내에 있는 66만㎡ 규모의 저수지를 활용, 둘레길 조성 등 생태 정원 마을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정부의 ‘마을 만들기 사업’에 신청, 선정돼 현재 사업 진행을 앞두고 있다.

땅이 살아나고 환경이 복원되면 마을에 동식물 곤충이 많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이를 유념해두고 최근 마을 인근에 있는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과 경북대와 지역생태협력협의체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는 농업환경 보전과 공동체 복원, 자연생태계 보전을 아우르는 마을 활동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연스레 체험·관광과 연계되며, 또 이는 고품위 농산물을 팔 수 있는 통로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동범 이장은 “현재 10년의 계획을 갖고 프로젝트 1980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모든 활동의 주역이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이 될 것”이라며 “1980년대로 생태 환경을 복원하면 자연스레 체험, 관광산업도 활성화되고, 우수마을로 교육을 오는 인원도 많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생산하는 고품위 농산물은 자연스레 판매도 이뤄지게 되고, 지역 브랜드도 만들 수 있다. 앞으로의 마을 비전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마을 어르신들은=“처음에는 농활 왔나 하다 그다음엔 얼마나 갈까 했어. 그런데 주민등록도 이전하고, 농사도 짓는 거야. 마을 청소도 앞장서서 하고 노래자랑 등 마을 행사도 기획하고. 이제는 친손주나 다름없지.”

아천1리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청년이그린협동조합 청년들은 이제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아천1리 노인회장 이인자(76) 씨는 “청년들로 인해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청년들이 마을에 없다는 건 상상도 안 된다”며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은 친손자, 손녀 같다”고 전했다.

채순랑(76) 씨는 “우리 마을엔 60대만 돼도 청년에 속한다. 150여명의 구성원 중 10명이 80대이고 대부분이 70대”라며 “그런 마을에 스무 살, 서른 살의 청년들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귀하고 대견스럽겠냐”고 말했다.

특히 이들로 인해 마을이 하나씩 변화해간다는 것을 어르신들도 느끼고 있었다.

조상구(82) 씨는 “방송에서 동네 청소를 한다고 해 나와 보면 가장 먼저 와 있는 게 청년들이다. 이들이 오면서 마을 노래자랑도 하고 동네가 신명 나고 있다”며 “청년들이 마을을 복원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청년들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로 큰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아름 대표는 “음식 만들어 몇몇이 나눠 먹는 게 동네 행사가 되는 게 우리 마을”이라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오히려 우리가 배우는 게 더 많다. 어르신들과 함께 우리 마을이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마을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백 대표는 “마을에 와서 2년 넘게 함께 살다 보니 농촌은 단순히 의욕이나 억지 연출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며 “직접 마을에 스며들며 어르신들과 마음으로 함께하고픈 청년들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장동범 이장은 “청년들이 농촌에 와서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정부와 지자체에서 숙소 문제 등 청년들의 생활에 좀 더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다”며 “현재 어려운 면이 많지만 비전도 상당한 청년과 농촌은 어찌 보면 닮은 게 참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