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해영 한신대 교수

투자자들 ISDS 선호로 지속 증가
신자유주의·자본의 세계화 결과
오래 전부터 국제사회서 개혁논의


지난 23일 정부가 밝히기를 영국 고등법원에서 대한민국 대 이란 다야니가문 사이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한국 정부의 취소 청구를 기각해 우리 정부가 약 730억원을 물어주게 되었다고 한다. 본 사건의 개요는 지난 2010년 대우일렉 매각과정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등 한국채권단이 계약해지 및 계약금 몰취에 대한 유엔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ISDS) 판정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이의제기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번에 2018년 6월의 중재판정부 결정이 확정된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ISDS를 설명하고 또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용어도 복잡하고 재판과는 전혀 다른 ‘중재(arbitration)’의 절차나 관행이 우리 생활에는 여전히 낯설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재는 재판이 아니다. 그래서 판사가 법원에서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중재기관에서 분쟁 당사자가 각각 추천한 2인과 중립적인 제3자 이렇게 3인이 모여 비공개로 단심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3심제로 이루어진 재판과는 달리 비용과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상사분쟁에서 선호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ISDS를 말 그대로 옮기면 투자자(investor) 대 국가(state) 분쟁해결제도(dispute settlement)의 머릿자를 따온 것인데, 여기서 이 분쟁해결 제도가 바로 중재라는 말이다. 투자자(기업) 대 투자자(기업)사이의 분쟁을 중재라는 것을 통해 해결하는 그 방식을 투자자 대 국가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데 적용하자는 말이다.

그런데 금새 의문이 들 수 있다. 사익 대 사익간의 충돌을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야 문제 삼을 일이 아니지만, 사익 대 공익간의 분쟁을 중재로 해결하자는 것은 공익을 사익의 지위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닌 가하는 의문 말이다. 국내 법원에서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면 거의 99% 공익이 이긴다. 공익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투자자 (=자본가)가 굳이 나라밖에 있는 ISDS를 선호하는 이유는 쉽게 이해가 된다. 국내 법원에서 공익 대 사익간 승률이 거의 100대 0 정도라면 국제중재기관에서는 이 비율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 30대 70으로 대 역전이 일어난다.

특히 21세기 들어 과거 일 년에 한 두건이던 ISDS건이 한 달에 한 두건으로 폭증하더니 이제 누적건수 1000건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혹은 자본의 세계화의 결과이다.

ISDS는 공익에 치명적인 비수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기업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역대 정부는 항의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ISDS를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확대·수용해 왔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ISDS 청구 총액이 10조원이 훨씬 넘는다고 할 때 이번 다야니건으로 물어 줘야할 금액 730억원은 그저 ‘껌값’이라고 보면 된다. 혹은 ISDS 지옥 입장료라나 할까.

ISDS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국제 사회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이에 대한 개혁논의가 이어져 왔다. 현 시점에서 ISDS에 대한 5가지 정도의 접근방법이 있는데 그중 4가지가 이에 해당된다. 첫째, ‘노 ISDS’ (no ISDS)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아예 이 조항을 삭제하거나 지금처럼 정부의 무조건 중재동의 방식이 아닌 건별(case by case) 중재동의 방식이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대체한 미-멕시코-캐나다협정(USMCA)틀 내에서 캐나다-멕시코, 캐나다-미국 간에는 ISDS를 ‘선택배제(opt-out)’방식으로 삭제했다.

둘째, EU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그 공정성이 의심되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등을 대체할 상설중재원(Standing ISDS tribunal)을 설립하는 것이다. 셋째, 선국내법절차 완료 후 국제중재 청구 등 그 청구요건을 강화하거나 특정 공공정책 영역은 중재대상에서 제외해 중재가능 대상을 줄이는 등 ISDS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넷째, ISDS 절차개선이 있다. 중재절차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중재과정을 개방해 투명성을 확보하며, 중재자의 객관성 제고 그리고 중재판정부의 권한 제한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낡은 ISDS를 그대로 존치하는 방식이 있다. 바로 한국 정부의 관료들이 좋아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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