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자료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 포기로
새 통상조약 추진 시 미칠 영향 커
산업별·계층별 이해관계 달라 
사회적 합의 있어야 후유증 최소화

허용보조·최소허용보조 활용
공공비축·소득보험·환경직불 등
효과적 정책수단 마련 필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24년 만에 정부가 향후 농업 분야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미래 통상협상 추진 시 자국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대내 협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또 WTO 협정상 인정하는 허용보조와 최소허용보조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6일 ‘우리나라 WTO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 자기선언의 변화와 향후 과제’라는 제목의 분석 자료를 내놨다. 이 자료에서 김규호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정부의 WTO 농업분야 ‘개도국 특혜 주장 중단’ 발표 이후 아직 가시화된 영향은 없다. 그러나 향후 WTO 회원국들 간 부분 협상이 진행되거나 새로운 통상조약이 추진되면, 우리는 처음으로 WTO 개도국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 조건으로 국제 통상 무대에 서게 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WTO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 △WTO 상소기구 위원 선임과 관련된 미국의 보이콧 탓에 연말 이후 WTO 주요 기능이 무력화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 △현재까지 50여 개 이상의 국가와 체결한 FTA의 이행을 통해 점차 WTO 양허관세보다 낮은 관세율이 적용되거나 아예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이 늘어날 예정인 점을 거론하며, 이는 정부 발표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고 짚었다.

하지만 농업계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봤다.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농업계 일각의 우려는 향후 ‘일괄타결’ 방식이 아니더라도 WTO 회원국들 간 개별 이슈에 대한 부분 협상이 급물살을 타거나 새로운 통상조약이 추진될 때 이번 선언이 미칠 영향이 크다는 점에 있다”며 “게다가 국제 통상협상의 장에서 우리가 개도국 특혜 관련 주장을 자발적으로 중단했음에도 다른 국가들로부터 확보한 실익이 불분명하다는 점, 거론된 (정부) 대책이 대부분 원래 추진 중이던 것이 많다는 점에서 우려와 반발이 쉽게 잦아들기는 힘들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농업 분야는 WTO 개도국 지위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 조건으로 통상조약에 임해본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포스트 WTO 시대에 대한 대비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우선 국제 통상협상 추진 시 대내 협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제통상협상을 대외 협상과 대내 협상으로 이뤄진 ‘양면게임’으로 보는데, 대내협상은 자국 내 다양한 산업과 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가는 일련의 활동이다.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이번 개도국 특혜 관련 결정은 이렇다 할 국회 차원의 보고 및 논의 없이 내려졌고,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던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내년 농정 예산안 증가율이 정부 총 예산안 증가율인 9.3%에 크게 못 미치는 점도 농업계를 실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입법조사관은 이어 “산업별, 계층별 손익이 다를 수 있는 대외 협상을 추진할 시 정부는 대내 협상에도 힘을 기울여 사회적 후유증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법제에 허점이 있다면 이를 고쳐야 하고, 법제의 취지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 대내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며 “농정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향후 대책의 추진 과정에서 농정 주체들 간 신뢰가 쌓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도 긴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과제로 WTO 협정상 ‘허용보조(Green box)’와 ‘최소허용보조(De minimis)’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정책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분을 꼽았다.

김 입법조사관은 “WTO 농업협정에 따르면 공공비축, 소득보험 지원, 환경 및 조건불리직불 등의 정책은 허용보조로 분류돼 어떤 회원국도 전혀 감축의무를 지지 않는다. 최소허용보조 역시 선진국에게 개도국보다 강한 의무가 부과되기는 하나 예산 한도 내에서 기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정책 수단”이라면서 “앞으로 이런 정책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마련하고 추진하느냐가 포스트 WTO 시대에 대내 협상과 농정 거버넌스의 내실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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