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중앙회장 따라 농협·농업계 큰 변화
자체 혁신과제 깊이 이해하고
협동조합 정체성 확립 명확히 해야


새로운 농협중앙회장을 뽑는 선거가 시작되었다.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19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범농협을 대표하는 중앙회장 선거전이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다. 누가 중앙회장이 되는지에 따라 농협은 물론 농업계에게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농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누가 되는가에만 관심을 가지고 정치 공학적으로만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바라본다면 그 또한 우리 농업의 미래에 득이 되기 어렵다. 농협중앙회장은 많은 일을 하고, 큰 영향력을 펼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막중한 기대와 의무를 지게 되는 자리다. 섣불리 농업과 농협에 대한 헌신적 자세와 확고한 비전이 없는 사람이 중앙회장을 한다면 4년을 허송세월로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세익스피어는 ‘헨리4세’라는 희곡에서, 주인공의 권력욕을 경계하며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나 어려움 속에 놓여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모클레스는 시칠리아의 왕 디오니시우스가 부러웠다. 부러우면 한 번 일일 명예국왕을 해 보라는 디오니시우스의 말에 따라 왕좌에 앉아보니 왕좌의 바로 위에는 말총 한 가닥에 묶여 있는 칼이 달려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경우 그 칼이 떨어져 목숨을 가져갈 것이라는 책임감 속에서 살아야 하니 권력자의 자리라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자신의 능력이 80% 정도 발휘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 역량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어 무리하다가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나라를 망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난다. 모두 권력의 밝은 면만 보고, 그 뒤에 따르게 될 역량과 성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무거운 족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다수결로 대표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란 제도는 후보자의 역량을 충분히 파악할 시간과 방법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단점을 가진다. 하지만 또한 당시의 다수의 구성원들이 요구하는 사항을 가장 잘 반영하는 사람이 대표자로 선택될 수 있어, 역동성을 가진다는 점은 다른 지도자 선발 체제에 비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왕 그렇다면 현재의 농협중앙회장 후보자들이 중앙회장이 된다면 져야 할 책임과 과제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에 반영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머지는 조합장들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현재 농특위에서는 많은 조합장들과 농민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농협의 자체 혁신 과제를 정리하고 농협중앙회와 함께 협의 중이다. 최소한 농협중앙회장의 자리가 가지는 무게를 견디려면 이들 자체 혁신과제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이행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정책공약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자체 혁신과제를 크게 나누면 △도시농협의 판매사업 활성화 △카드와 보험 등 금융지주 자회사와 농축협 간의 수위탁 사업의 개선 △계통구매사업 관련 내역의 투명한 공개 △조합원 및 대의원, 임원에 대한 교육의 강화 등이다.

또한 장기적인 농협의 협동조합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범농협의 장기 미래비전의 수립 △2020년으로 완료되는 기존 농협경제사업활성화 계획을 대체할 중장기 계획의 재수립 △자치분권 시대에 발맞추는 농협의 상향식 조직체계에 대한 방향 제시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선거라는 제도에는 달콤한 유혹이 내재되어 있다. 후보자에게는 지속될 수 없는 단기적인 이익을 약속하게 하고, 선거권자들은 설령 이뤄지지 않아도 이기적인 욕심을 충족시킨다면 못이기는 척 찍어주게 만든다. 이번 중앙회장 선거에서도 이런 유혹이 판을 친다면 농협의 협동조합적 발전은 더 멀어질 것이며, 농협의 새로운 발전의 기회도 스스로 발로 차버리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농업계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장기적인 농협의 미래비전과 자체 혁신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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