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샤인머스켓만 심었어도 수익은 몇 배 더 나왔겠죠. 하지만 모든 포도 농가가 다 샤인머스켓을 심어선 안 되는 거잖아요.”

얼마 전 경북 상주에서 한 포도 농민을 만났다. 2년 전 그는 샤인머스켓이 아닌 신품종 포도를 심었다. 그 결과는 1억원에 달하는 조수입 감소로 돌아왔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또다시 선택하게 돼도 그는 같은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 한다. 신품종의 한계로 생산량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못 얻었을 뿐이지 정상품만 나오면 기능성에 맛도 좋아 포도 소비를 늘릴 수 있는 품종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포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캠벨얼리 품종의 흥망성쇠를 겪으며 품종 다양화 필요성을 절실했던 이유도 있었다.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는 샤인머스켓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높은 시세 속에 재배면적이 급증하고 있고, 품위보다는 양에 중심을 둔 생산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캠벨얼리를 통해 이에 대한 아픔을 이미 겪었던 포도업계에선 샤인머스켓으로의 편중 현상이 달갑지만은 않다.

돌아가 상주의 그 포도 농민은 껍질째 먹을 수 있고, 샤인머스켓과 맛은 차별화된 이 신품종이 시장에 정착되면 두 개 품종을 한 선물세트로 담는 등 포도 소비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는 내년에도 신품종 포도를 계속해서 재배할 것이라고 한다. 올해 생산 과정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 개선된 재배 방법도 이미 세워놓고 있다.

포도뿐만이 아니다. 국내 과일시장엔 신품종 도입이 절실하고, 그렇게만 되면 획기적인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한 품종이 70~80% 넘게 독점하는 배와 단감 시장에 신품종이 자리 잡으면 배는 명절에만 먹는 큰 과일이란 이미지를 바꿀 수 있고, 늦가을에 수확이 집중되던 단감은 9월 추석상에도 올려놓을 수 있다. 조생부터 만생까지 다양한 품종이 정착되면 소비뿐 아니라 홍수 출하 방지 등 생산·출하 과정에서의 여러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신품종이 정착하기 위해선 상주의 포도 농가와 같은 개척자나 선구자의 결단과 일정 부분의 실패, 또 그에 따른 개선안 도출이 선행돼야 한다. 신품종은 필요하지만 누가 이를 감내할 수 있을까. 또 누구에게 이것들을 감내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아직 많은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신품종에 대한 홍보가 필히 수반돼야 한다. 과일 정책에선 신품종과 관련 연구 기관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신품종 농가에 대한 판로 지원도 따라와야 한다. 신품종 평가회에 품종 연구 기관을 넘어 산업 정책 부서에서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선구자의 길은 외롭다고 하지만 적어도 과일 신품종을 담당하는 선구자의 길은 외롭지 않게 해줘야 할 때다.

김경욱 유통팀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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