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허선진 중앙대 교수

건강하지 않다는 오해와 편견에
육식에 대한 불안만 가중 답답
고기나 채소나 동일한 잣대 가지길


식약처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지난 9월 국내 유통 젓갈류 136건 수거 검사한 결과 이중 44건(32%)에서 A형 간염바이러스 검출됐다"고 보고한 후 젓갈류 사용을 자제해줄 것을 권고했다. 젓갈류는 김치를 제조하는 중요한 재료로, 김장철인 요즘 큰 이슈가 될 수 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국내 소비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육류에서 이 같은 바이러스가 발견됐으면 어땠을까. 최초 발견된 이래 90여년간 인체감염 사례가 보고된 바 없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고기 소비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현재 국내 축산업의 역할과 위치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소비자들에게 한국인의 전통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김치·된장·간장 등을 말할 것이다. 반면 식육을 전통음식으로 꼽는 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채소는 전통식이고 건강에 좋으며, 육식은 서구식이라 건강에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 사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있어 본격적인 고기소비의 역사는 매우 짧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삼겹살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도 불과 30~4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면 식육을 주요 전통식품으로 꼽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과거 서민들에게 고기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어렵사리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고, 주식은 대부분 쌀밥과 채소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서민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영양실조 상태에 있었는데, 절대 부족한 육류 섭취가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고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깊이가 같고, 제사나 잔치 또는 집안의 각종 경조사에 있어 고기는 아주 귀한 식재료였다. 현재에도 귀한 사람을 대접할 때는 고기가 가장 주요 소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식육을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인체에 100% 무해한 식품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음식이든 잘못 먹으면 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소비자들은 똑같은 사안도 육식 관련 사안에 대해선 채소 또는 과일류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채식에 의한 식중독 발생비율은 육식에 비해 잦은 편이고, 외부 식당에서 발생하는 식당 보다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식중독의 비율이 더 높다. 식약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식중독 감염의 주요 원인은 ‘날로 먹는 채소’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에도 식중독 위험이 가장 큰 식품으로 녹색채소라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채식에 의한 사고 사례에는 육식에 의한 사고 사례에 비해 매우 관대한 자세를 취한다. 흔히 돼지고기는 기생충 때문에 바짝 익혀서 먹어야 한다고 모두들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돼지고기 섭취에 의한 기생충 감염사례는 지난 수십 년 간 없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돼지고기 기생충이 국내에서 발견된 사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체감염 사례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만 되면 돼지고기 기생충 관련된 각종 언론보도가 나올 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사에서 기생충은 비록 없어도 병원성 미생물이 있을 수 있으니 익혀 먹으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생충과 관련 과도한 겁주기식 기사가 주기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육식에 대해 얼마나 강한 불안감을 가지는지 알 수 있다.

최근 교통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10월 한 달 교통사고 사망자가 일일 13명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런 사례와 비교해 봤을 때 지난 30년간 감염사례가 없는 돼지고기 기생충은 확률적으로 무해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자료들을 보면 우리가 어디에 더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인지 분명한데, 우리는 스스로 지켜야 하는 안전에는 관대하고 음식처럼 남이 나를 위해 지켜줘야 하는 안전에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축산물이 우리의 것인가 서구의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보면 축산업과 축산업 종사자는 순수한 한국의 농업이고 농업인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나 축산업이 생산한 축산물은 서구의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축산물을 소비하는 것을 우리는 서구식 식단으로 규정한다. 일부 축산인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사안을 두고 우리가 공공의 적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자조 섞인 말을 한다. 예를 들어 언론에서 식육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있다면 다음날 당장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고 한다. 이에 반해 채소류는 이러한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우리 전통음식의 가장 큰 단점은 소금의 함량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국내외 여러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위암발생률이 높은 주요 원인으로 높은 나트륨 섭취를 꼽는데, 한국인이 섭취하는 나트륨의 60%는 김치와 장류를 비롯한 전통음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만약 나트륨의 섭취가 위암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면 그 책임의 무게가 어디에 쏠려 있을지 생각해야 하지만, 전통식 또는 채식은 그 책임에서 매우 관대하다. 만약 육식에서 기인했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는 육식이 채소보다 건강식이고 전통식품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우리 전통식도 해로울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 이런 주장도 펼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트륨 섭취의 주요 요인이라고 해도 어떻게 한국인이 김치를 안 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떤 식품이건 잘못 먹으면 건강에 해를 줄 수 있고, 과도한 육식이 생활습관병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한 가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육식이건 채식이건 균형 잡힌 식단이 가장 건강식이라는 점이다. 채소가 건강식인 이유는 육식과 함께 하기 때문이며, 육식이 빠진 채식은 필수 영양소의 결핍을 가져올 수 있다. 적절한 육류와 풍부한 채소를 같이 섭취하는 균형 잡힌 식단이 가장 건강식이 될 수 있다. 균형 잡힌 식단이 가장 건강에 좋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듯 고기나 채소나 동일한 잣대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축산물에게만 너무 과도한 책임을 지우고 채소나 전통식품에는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고기나 채소나 다 같은 손가락이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는가? 축산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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