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특위 ‘정책 전환’ 국제 심포지엄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 농특위가 농정비전 선포식에 앞서 ‘농어업·농어촌의 새로운 가치와 정책 전환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 EU 등의 농정개혁 사례를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과 지혜를 모았다.

직불제 시행 목표가 무엇인지
EU내에서도 여전히 의견 분분
회원국간 직불금 배분 불균형
대농 중심 지나친 혜택 논란
기후변화 등 환경 이슈로 ‘곤경’

“농정 전환은 끝이 없는 작업”
정책설계단계서 이해당사자 참여
목표달성 가능한 수단 찾아야


유럽연합(EU)의 농정개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11월 26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농어업·농어촌의 새로운 가치와 정책 전환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함께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EU 등의 농정개혁 사례를 공유하고 ‘농정 틀의 전환’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과 지혜를 모으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이날 ‘EU 농정개혁, 그 지향과 교훈’을 주제로 첫 발표를 맡은 알란 버크웰(Allan Buckwell)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명예교수는 “EU의 공동농업정책은 직불금의 심각한 불균등 배분 문제와 기후변화 등의 환경 이슈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 한국이 EU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먼저 직불제 도입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목표와 정책 수단이 일치되도록 정책설계 단계에서부터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알란 버크웰 교수

◆EU 공동농업정책의 변화=알란 버크웰 교수는 먼저 “농정 전환은 끝이 없는 작업”이라고 운을 뗐다. 1962년 유럽의 공동농업정책(CAP)이 생겨난 이후부터 CAP 개혁은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지만, 여전히 이해당사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식량부족을 경험했던 EU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80년대까지 강력한 시장개입을 통해 농업을 보호해 왔다. 농산물에 높은 가격을 설정해 정부 수매를 실시하고, 보조금을 지급해 잉여 농산물을 수출하는 한편 수입농산물엔 가변부과금을 매겼다. 이를 통해 EU 농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공급 과잉이 누적되면서 재정 부담이 커졌고, 해외 덤핑 수출로 인한 통상 마찰이 심화됐다. 이는 결정적으로 GATT/WTO 압박을 초래,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농업부문이 협상대상에 포함되는 계기가 된다.

EU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개혁조치를 단행한다. 1992년 맥셔리 개혁으로 도입된 직접지불제는 시장개입 축소에 따른 보상 직불로, 재배면적과 사육두수를 기준으로 지급되었으며, 공급 과잉 관리를 위해 쿼터제와 휴경의무가 부과됐다.

2000년대 들어 CAP는 직접지불과 농촌개발, 두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2003년 개혁에서 도입된 단일직불제는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작물과 무관하게 2000~2002년 받았던 직불금 실적에 따라 면적당 단가를 산정해 지급했다. 대신 직불금 지급의 조건으로 상호준수의무가 부과된다. 2013년 개혁에서 가장 부각된 것은 녹색직불의 도입. 기본 직불에 추가되는 직불로 작물다각화·영구초지 유지·생태중점지역 지정 등 세 가지 활동을 지원대상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전체 직불금의 30%를 할당하도록 했다.

◆EU 농정개혁의 교훈=직불제를 중심으로 한 공동농업정책을 소개한 버크웰 교수는 먼저 EU 내에서 직불제 도입의 목표가 여전히 합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직불제가 식량안보를 위한 것인지, 정책변화에 대한 보상인지, 농가에 대한 소득 지원인지, 환경 보전을 위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 회원국간, 농가간 직불금의 불균등한 배분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 버크웰 교수는 “2013년 개혁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성공적이지 않았다”며 “포괄적인 목표에 대해선 동의할 수 있어도 디테일한 내용으로 들어가면 28개 회원국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U에서는 농업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논쟁도 계속 커지고 있다. 그는 “기후변화는 유럽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시민사회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농업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면서 “농업예산 감축과 환경규제 강화를 둘러싼 농민들의 저항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그는 한국이 EU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개혁의 우선순위를 파악해 명확한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에 맞는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평가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EU의 공동농업정책이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이 부분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농특위는 이달 중순경 농정비전 선포식을 열고 농정 틀 전환의 기본방향과 핵심 개혁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내년 2월까지 농정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종합대책을 마련, 익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에 적극 반영한다는 복안이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숙련된 기술 가진 농민농업이 농업을 살릴 것”

얀 다우 판 더르 플루흐 교수

◆기술혁신과 새로운 농민·농촌=극심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농업도 GPS 같은 인공위성시스템과 센서,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정밀농법 등으로 무장, 혁신 성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토양과 생물의 상호작용에 의존하는 ‘농생태학’을 기반으로 환경부하가 적은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것이 기후변화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대안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날 ‘기술혁신과 새로운 농민·농촌’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얀 다우 판 더르 플루흐 전 네덜란드 와게닝엔대학교 교수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숙련기술을 가진 중소 가족농 중심의 ‘농민농업’이 농업의 미래라고 역설했다. 기후변화는 지구적인 문제로 에너지 투입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기업형 농업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플루흐의 설명에 따르면 농민농업은 환경자원을 근간으로 농민의 노동을 통해 작동하며 농가소득이 목적이지만, 기업형 농업은 금융자본을 근간으로 기술을 따라가며 농산업에 투자한 자본수익 극대화가 목적이다. 특히 복잡하고 디테일한 숙련기술 중심의 농민농업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기계적 농업보다 포용적이며 다기능적인 농업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단위당 산출되는 부가가치도, 자율적이고 절약적인 영농을 실천하는 초지기반의 낙농가가 산업형의 관행농가보다 더 높다고 전했다.

그는 이 같은 농민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는 새로운 농민농업시장이 구성되어야 한다”면서 “미래의 식량 조달을 소수의 먹거리 제국이 통제하도록 만들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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