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처리 예고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인구 하한선 미달 총 26곳
지난 총선서 5석 축소 이어
선거구 대폭 조정 불가피
“농업계 입장 반영 미흡” 우려


국회의원 선거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이른바 연동형비례제의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심상정 의원 발의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국회 본회의에 오를 예정인 가운데 해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내년 총선에 앞서 대폭적인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농어촌 지역의 선거구 축소가 재현될 수 있다는 농업계의 우려를 키운다.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최소 91개 선거구에서 많게는 135개 선거구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대폭적인 선거구 조정에 따른 혼란을 예고했다. 개정안은 의원정수(300명)는 유지하되 지역구를 현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현 47석에서 75석으로 확대하는 연동형비례제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이달 27일 본회의에 올라가고, 법안이 통과되면 2020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에 적용된다.

주호영 의원은 개정안 통과를 가정해 국회의원 선거구를 225석으로 줄이고 1개 선거구 획정 인구의 상한선 30만7120명·하한선 15만3560명을 바탕으로 한 선거구 조정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 7개, 경남 1개, 울산 1개, 부산 3개, 대구 1개, 경북 2개, 경기 3개, 광주 1개, 전남 2개, 전북 3개, 대전 1개, 충북 1개, 충남 2개, 강원 1개 등 총 29개 선거구가 축소되고, 세종시 선거구가 1개 확대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는 225개 선거구 기준으로 인구 하한선(15만3560명)에 미달하는 지역구가 총 26곳에 이른다.

주 의원이 예측한 선거구 조정안에서는 ‘공룡선거구’도 대거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5개 자치구·시·군이 하나의 선거구가 되는 곳도 전국적으로 6곳에 달하고, 강원도의 경우 6개 자치시·군이 1개의 선거구로 묶여야만 최소 인구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번 선거구 획정 때마다 논란이 일었던 문제들이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 의원은 “광역시 등 대도시는 그나마 현재 선거구를 유지하는 곳이 상당수이나, 인구가 적은 시·군 지역에서는 현행 선거구를 유지하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대적인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2016년 4월 실시한 제20대 총선에서 농어촌 선거구는 5석 줄었고, 수도권 선거구는 오히려 10석이나 늘었다. 표의 등가성 확보를 위해 인구 편차 허용 범위를 3대 1에서 2대 1로 축소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선거구 조정 작업에 일률적으로 갖다 댄 결과다.

공직선거법 제25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지역구는 시·도 관할구역 안에서 △인구 △행정구역 △지리적 여건 △교통 △생활문화권 등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인구 이외 다른 요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20대와 마찬가지로 시간에 쫓기다 인구 기준 중심의 방식으로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될 확률이 높다. “인구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2016년 3월 공직선거법에 신설했지만, 이 역시 ‘인구 범위 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인구 감소가 뚜렷한 농어촌의 지역구가 통폐합되는 방향으로 축소되는 시나리오가 또다시 그려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농업계의 우려와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22일 “현행 의원정수를 확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지역구 축소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행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적용할 경우 도시 지역에 반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구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정치적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하는 연동형 비례제가 오히려 농촌 지역 주민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게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으로 다수의 농촌 지역구가 통폐합돼 농촌 출신 국회의원 수가 확연히 줄어듦에 따라 각종 정부 정책에 농업계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면서 “또다시 농촌 선거구가 줄어든다면 농촌 주민은 정치적으로 더 소외될 것이다. 연동형비례제 도입 시 각 정당은 농업계 인사를 의무적으로 공천하는 것과 더불어 현행 인구 수 중심의 선거구 획정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선거법상 국회는 선거일 1년 전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 하지만 18~20대 총선 모두 선거를 40여일 앞둔 시점에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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