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비농업적 이유로 정부입장 변경
농업에 피해 줄 수 있는 의사결정
그에 상응한 보상 마련돼야


최근 WTO 체제에서 한국의 개도국 지위와 개도국 특혜 주장 포기 관련 논의를 둘러싸고 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일반 신문은 개도국 특혜 주장 철회라는 정부의 주장을 주로 보도하거나, 아예 개도국 지위 포기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농업전문지들은 개도국을 포기하는 것이고, 농업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입장을 주로 보도하고 있다. 물론 어느 쪽도 건전한 시민이 궁금해 하는 것을 잘 정리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이 경우 일반 국민들 대다수는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을 줄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통상협상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따져 봐야 할 것들을 따져보려 한다.

왜 농업의 개도국 지위 논란이 갑자기 부상했는가? WTO협상 과정에서 논의가 나온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이 부분은 명백하다. 미국 트럼프대통령이 7월 달 쯤 트위터에 중국을 겨냥하여 “WTO 개도국이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 무역대표부에 90일 이내에 WTO 개도국 기준을 바꾸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시작이다. 문제는 미국 대통령이 그런 주장과 미국 무역대표부가 WTO에게 시한을 정해서 기준을 바꾸게 만드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개도국 지위 기준이 문제가 된다면 이 또한 WTO참여 국가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데, 현재 WTO 협상이 답보상태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의 주장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최소한 수년 내에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WTO가 원하지도 않은 개도국 지위와 관련하여 갑자기 지위 포기든 특혜 주장 포기든 입장을 택했을까? 정부는 이후의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트럼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앙일보가 아예 기사 제목을 “트럼프 트윗 한 방에 ... 한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추진”(9월 4일자)이라고 잡은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방위비 분담이든 한미 통상협상의 위협요인을 제거한 것이든 비농업적 이유로 정부가 농업의 개도국 지위과 관련된 입장을 변경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비농업적 편익을 위해 농업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의사결정을 했다면 그에 대한 상응한 보상이 당연히 마련되어야 한다.

개도국 지위 포기든 특혜주장 철회든 어떤 것이 달라질까? 현재로서는 정부의 입장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어쨌든 현재까지의 협상에서 얻은 결과는 포기하지 않고, 다만 앞으로의 협상에서 개도국이 가지는 특혜는 주장하지 않겠다는 전망이고 이를 일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이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일부는 우루과이라운드 후속인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은 사실상 타결되기 어렵다는 전망을 하고 있지만, 일괄타결은 되지 않아도, 일부 협상항목들만 타결하는 “패키지 방식 타결”은 진행되고 있다. 2017년 발효된 발리 패키지가 그렇고, 2015년 도출된 나이로비 패키지가 있다. 정부가 말하는 향후 협상이란 DDA 이후의 협상을 말하는지 아니면 DDA 내부의 하위 협상을 말하는 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만약 후자라면 개도국 특혜 주장 포기든 개도국 포기든 농업계는 그 영향을 빠르게 받을 수 있다.

개도국 지위가 포기되면 한국 농업은 괴멸적 타격을 입을 것인가? 그래서 예산 4%를 초과하도록 농업예산을 짜는 것이 필요한가? 이런 농업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UR이 타결되면 농업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했지만 25년 이상이 지난 지금 농업총생산액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농협 조합원의 42%가 70대 이상이라고 한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나라 농업은 급격한 규모화가 이뤄질 것이다. 규모화 된 농민들에게 과연 국민들은 현재와 같은 생산관련 보조를 주는 것을 얼마나 허용할까? 절반 이상의 농민에게는 농산물가격 유지를 위한 예산 투입보다는 농촌복지를 체계화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예산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실제 얼마나 많은 농민들에게 의미 있게 제공되는지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확증편향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힘센 자들은 이런 오류 속에서 밀어 붙여도 크게 문제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농업계처럼 갈수록 상대적으로 힘이 줄어드는 경우에는 확증편향의 오류가 작동할 경우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개도국 지위를 둘러싼 논의에서 상대적 약자가 기대할 것은 정확한 사실의 확인과 합리적인 주장일 것이다. 농업전문지들의 심층 취재와 통상협상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연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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