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익형직불제 농업예산 충분한가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공익형직불제의 핵심 쟁점 중 하나가 재원 확보 문제다. 정부가 목표로 한 시행 시기는 내년 3월로 코앞이지만, 전체 예산 규모는 아직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정부가 2조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최소 3조원 이상 확대해야 한다는 야당과 농민 단체들의 요구가 맞서있어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국회 논의가 진행 중이다. 예산 규모에 따라 지급단가와 지급대상 면적(경영규모) 구간 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소득보전 등의 직불제 개편 효과를 높이려면 제도 도입에 맞춰 가능한 많은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 비공개 시나리오만 나와
농가소득·쌀 수급 안정 효과 등
핵심논의 공론화는 뒷전

적정예산규모 논의 지지부진
정부·국회·농민 시각차만 확인

정부 내년 예산안 2조2000억
2017년 지급한 전체 직불금
2조6000억보다 적어 논란도

“소농 보호 취지 제대로 구현”
농민단체·야당 요구 커져

 

◆예산 규모에 밀려난 핵심 논의들

정부는 현행 직불제를 공익형직불제로 전환할 계획으로, 내년도 예산안에 2조2000억원을 배정했다. 공익형직불제 제도개편 사업을 신규 사업으로 1조605억원, 나머지 약 1조1000억원은 기존의 7개 직불사업(쌀소득보전고정, 쌀소득보전변동, 경영이양, 조건불리, 밭작물, 경관보전, 친환경농업)에 개별 편성했다.

이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야 간사들이 올해 1월 합의한 ‘2조4000억원~3조원’ 범위에도 못 미친 금액이다. 야당과 농업계는 예산 규모가 최소 3조원 이상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농정TF팀은 2022년까지 5조2000억원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는데, 정부안과 간극이 3조원가량 된다.

예산 규모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논의들은 공론화될 수 없었다. 이상적인 제도 설계를 위해 세부 논의를 바탕으로 적정 예산이 수립돼야 했지만, 전체 예산 규모에 쫓기다보니 세부사항을 예산 규모에 맞춰 정해야 하는 방식이 돼 버린 것이다.

농업인 준수사항 등 공익 기능과 관계한 선택형직불의 논의는 전무했고, 그나마 기본형직불의 경우 소농직불금을 정액으로 지급하고 면적직불을 역진적으로 개편하겠다는 기본 방향만 알려졌을 뿐이다. 처음 내세웠던 ‘하후상박’ 기조는 대농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하후상유지’ 기조로 수정됐다. 정부는 지급단가와 대상면적 구간 등이 담긴 비공개 시나리오(안)을 들고 농민 단체들을 찾아다녔다. 직불제 개편으로 농가소득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지는지, 쌀 수급안정에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등의 핵심 논의는 공론화가 될 수 없었다.

소농에 일정액을 지급하는 소농직불금 경영규모를 어떻게 정할지도 중요한 부분이다. 소농을 보호하자는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2017년 기준 전체 농가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1ha 미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 여건상 ‘0.5ha 미만’도 검토하고 있다. ‘0.5ha 미만’으로 기준을 낮추면 대상자는 전체 농가의 47.5%로 축소된다. 제도 취지가 약화되는 셈이다. 그동안 학계 등에서 직불제 개편마다 거론됐던 소농의 기준 면적은 1ha여서 지급기준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편 통계청의 2017년 기준 경지규모별 농가분포는 10ha 이상 0.9%, 7~10ha는 1.1%, 1~7ha는 27.4%, 0.5~1ha는 23.1%, 0.5ha 미만 47.5%다.


◆적정한 예산은 얼마?

적정한 예산인지 타당성 여부 역시 깊게 논의되지 못하고 정부와 국회, 농민 단체 간 극명한 시각차만 확인했다. 재정 당국은 공익형직불제 예산 2조2000억원에 대해 2019년 직불제 예산 1조4000억원보다 8000억원 대폭 증액한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2조2000억원의 예산은 늘어난 것이 아니다. 2018년의 경우 고정직불과 변동직불을 합쳐 1조8890억원, 친환경·조건불리·경관보전 등 3개 공익형을 합쳐 1034억원, 밭직불 1937억원을 더하면 직불금 예산 규모가 2조1000억원 이상 된다. 특히 변동직불금이 AMS(감축대상보조) 한도에 근접한 2017년에는 고정직불(8383억원)과 변동직불(1조4894억원) 등 쌀 직불금으로 2조3277억원을 비롯해 친환경·조건불리·경관보전·밭 직불 등 총 2조6000억원이 지급됐다. 공익형직불제 예산안 2조2000억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예산 증액 없이 변동직불만 없애고 이름만 공익형으로 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기본직불 지급단가 시나리오(안)를 통해 소농직불금의 경우 가구당 연간 80만원과 120만원으로 각각 나누고, 면적직불금은 0.1~2ha·2~6ha·6~30ha 등 3개 구간으로 나눠 검토하고 있다. 현재 정부 예산안인 2조2000억원 규모에서는 소농직불금 80만원과 면적직불 구간별로 ha당 200만원·192만5000원·185만원 정도(논·밭 진흥)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2조4000억원 가정 시에는 소농직불 120만원과 면적직불 200만원·192만5000원·185만원을, 2조6000억원 가정 시에는 소농직불 120만원과 면적직불 220만원·210만원·2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농민 단체들과 야당은 3조원 이상 예산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여당 일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소농을 보호하자는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 소농직불을 확대하려면 3조원 이상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경연 예측 자료를 바탕으로 직불제 개편을 위한 적정 재정지출 규모를 산출한 바에 따르면 1ha 이상 규모 농가들의 수령액을 재정지출규모 3조원 기준으로 고정시킨 상태에서 1ha 미만의 농가 전부를 상대로 한 기본 직불금을 연간 200만원으로 높일 경우 필요한 재정지출 규모는 3조4400억원으로 예측, 사실상 제도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입 예산은 3조원 이상 돼야 한다고 봤다.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면적직불을 ‘하후상박’이 아니라 ‘하후상유지’로 가기 위해서는 최소 3조2000억원의 예산 확보를 전제로 공익형직불제 논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전체 예산 중 농업 비중 5% 이상으로 늘려야

제한된 재원 두고 경쟁하는
공모제 중심 정책사업 한계
과잉·중복 투자 편중 개선을
공익적 기능 제고에 목표 둬야

WTO 허용하는 농업보조금 
실제 집행 비율 갈수록 줄어
정부 의지에 따라 확대 가능 



◆재정 확보 방안은

공익형직불제의 추진 의미 중 하나는 직불제 중심의 농정체제를 구축, 기존 농정의 틀을 전환한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직불 예산을 어떻게 확충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 수순으로 이어진다.

농림축산식품부 내년 예산안 15조2990억원 중 공익형직불제 예산은 2조2000억원으로, 농업 예산의 약 14%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농정개혁TF팀은 현재 직불 예산 규모를 2022년까지 농업 예산 대비 30%인 5조2000억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매년 1조원씩 재원 확보 방안으로 5000억원은 기존 농업예산구조의 개편을 통해 마련하고 또 다른 5000억원은 농업예산을 연차적으로 증가하고 농업예산 증가분을 직불제 확대에 필요한 재원으로 우선 배정해야 한다며, 이 두 가지 방안을 병행해 직불제 확대개편 목표 달성을 위한 재원확보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TF의 방안대로라면 공익형 직불제 예산은 내년 2조2000억원이 아닌 3조2000억원이 돼야 한다. 이후 2021년 4조2000억원, 2022년 5조2000억원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2조2000억원을 제시한 것 외에는 추후 예산 확대 방안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직불 중심의 농정’이라는 비전에 의문이 따른다.

국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농업 예산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어 3% 내외인 상황에서 재정 확보 방안은 농업예산을 최소 국가예산의 5% 이상으로 늘리면서 농업 예산구조를 개편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현재의 재정배분은 경쟁력과 성장 중심의 대규모 시설 투자 등 건설 분야에 집중돼 있고, 과잉중복투자를 유발하는 사업에 편중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헌 인천대 교수는 “농정 예산은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산업육성 중심의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며 “공모제 중심의 정책 사업은 농업인, 비농업인, 시군, 단체 등이 제한된 재원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다. 농정사업의 공모제 효과는 한계가 있고, 선택된 주체에 대한 선택된 투입재를 보조하는 문제, 농식품부 과단위로 분절된 사업 체계 등으로 자원의 집중적, 체계적 사용이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고보조사업은 대농, 부농 등 소수만 지원받는 구조가 심화되고 영세농 진입은 불가능하다”면서 “지자체 재원은 국비·도비를 매칭하기에 버거운 현실로 고유사업 실행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예산구조 개편 방향이 제시된다. 이명헌 교수는 “공익적 기능을 제고하는 농업생산, 가공, 유통, 소비 등 푸드시스템의 지속가능성·안전성·다기능성에 목표를 둬야 한다”며 “중앙정부 직할의 농정전달조직 구축, 중앙과 지방 농정의 협력심의체제 구축, 지방농정 거버넌스 개선 등이 농정예산 구조개편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농정개혁TF팀은 △시장왜곡적 지원 축소·폐지(쌀 변동직불금 1조4900억원 예산의 전환) △소규모·저효율의 선별적 개별경영체 지원 축소·폐지 △‘농발계획’ 중점과제 아닌 예산의 점진적 축소 △지방비 비중이 높은 중앙정부 사업예산을 지자체 예산으로 전환 △결산·예산 비율이 낮고 계속 저조한 항목의 예산 축소 등을 제시했다.

농정개혁TF팀에서 활동했던 일부 인사들이 포진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내년 초에 농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예산 재배분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시설투자 보조금 위주의 지출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으로, 출범 이후 첫 번째 연구용역으로 농업 예산구조 개편 검토에 착수한 상황이다.

농업계 현장에서는 농업예산 개편은 농업 관련 기관 단체의 조직개편과 연결돼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생산주의 농정, 토건농정의 대명사라는 지적을 받아온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어촌공사 등 농업 관련 기관의 조직과 사업, 예산을 근본적으로 함께 검토하지 않고 예산 조정은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다.

WTO(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농업보조금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김현권 의원이 밝힌 정부가 WTO 농업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확보한 보조한도에서 실제 집행한 보조금 집행(AMS+최소허용보조) 비율을 보면 WTO 출범 이후 1995년 30.9%에서 갈수록 줄어 2011년 10.6%, 2012년 2.7%, 2013년 3.5%, 2014년 3.8%, 2015년 7.2%에 그치는 상황이다. 농업총생산액 50조원의 20% 한도인 최소허용보조(De minimis) 10조원과 감축대상보조(AMS) 1조4900억원 등 11조원이 넘는 농업보조금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데도 실제 예산 집행은 매년 평균 5%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WTO가 아무런 제재를 두지 않도록 한 보조금(Green Box) 지출액도 늘지 않고 10%대에 머물고 있다. 이 부분은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 의지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스위스, 일본 등 선진국들이 추진하는 동물복지와 친환경축산직불제와 같은 선진화한 농정프로그램인 블루박스 예산지출은 단 한 번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정부가 농업보조금도 줄였지만 농정도 선진화하는 데 게을리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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