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류 탄저병균 300여개 수집…방제기술 개발·기초자료 활용 기대

[한국농어민신문 서상현 기자]

▲ 채소류 탄저병균 분류 및 동정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최효원 농업연구사.

탄저병은 채소류를 비롯해 기주식물이 광범위하고 과실, 잎, 줄기, 뿌리 등 다양한 부위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정확한 분류, 동정, 기주범위 등 기초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국립농업과학원(원장 이용범)이 국내 채소류에서 탄저병균을 수집하고,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분류와 동정, 특성을 조사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고추 탄저병에 8종 이상의 병균이 관여하고, 기후나 재배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점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채소류 탄저병균의 다양성 확보는 물론 품종육종 및 식물검역 분야에 이용하거나 효율적 방제기술 개발 등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널리 알려진 ‘고추 탄저병’
과실 상품성·수확량 떨어뜨려
유전자 분석·특성조사로
8종 이상 병균 관여 밝혀내
종 따른 살균제 효과 확인도

무 새 탄저병균 세계 최초 보고
유전자 정보 78건 ‘NCBI’ 등록도
“종합 관리로 농가소득에 기여”


▲기반연구가 필요한 이유=탄저병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곰팡이병(진균)이다. 채소류, 과일류, 두류, 화곡류, 목초류 등 다양한 작물에 병을 일으키며, 농작물의 재배기간은 물론 수확 후 저장기간에도 피해를 준다.

국내에는 45종 이상의 탄저병균이 80개 이상의 기주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널리 알려진 게 고추 탄저병이다. 고추 탄저병은 주로 과실에 발생해 상품성과 수확량을 크게 떨어뜨린다. 또한 온도가 높고 비가 자주 내려 다습한 환경일 때 크게 발생하는데, 7~8월 강우가 잦았던 2011년의 경우 고추 과실에 탄저병을 비롯한 여러 병이 확산돼 생산량이 20% 넘게 감소했다. 2017년과 올해의 경우에도 비가 자주 내렸던 지역에서는 고추 탄저병으로 피해를 입었고, 우리나라는 평균적으로 고추생산량의 13%가 탄저병에 의한 손실로 추정된다.

고추 탄저병과 같이 식물의 병이 발생했을 때는 그게 어떤 병인지, 해당 병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만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것이 국립농업과학원이 2017년부터 ‘유전정보를 이용한 채소 탄저병균 분류 및 동정’ 연구를 추진하는 이유다. 이 과제의 책임자인 최효원 국립농업과학원 농산물안전성부 작물보호과 농업연구사는 “병에 대해 잘못된 진단을 하거나, 대상 병원균의 특성을 정확히 모르면 방제효과는 당연히 떨어진다”면서 “어떤 병원균이 주로 피해를 주는지, 여러 농작물에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병원균의 종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저항성 품종 육종 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식물병원균의 체계적인 분류, 동정에 대한 연구가 수행된 실적이 매우 미흡하다. 일부 병원균에 대해 단편적인 연구가 진행됐지만 몇몇 선진국들이 진행하고 있는 유전정보를 이용한 분류체계를 바탕으로 한 분류, 동정 연구는 초보수준이다.

특히, 고추 탄저병의 경우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우리나라에서만 4종 이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병원균의 정체가 더욱 세밀하게 밝혀지고 있다. 최효원 연구사는 “DNA(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최신분류법으로 고추 탄저병균을 분류, 동정한 결과, 중국은 15종, 호주는 5종, 태국은 6종, 인도네시아는 7종이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이렇게 수행된 결과는 국가별로 식물검역에 이용하거나 지역별 병원균 분포도 작성, 저항성 품종 육종에 활용하는 등 병해관리 및 대응을 위한 기반기술로 이용되고 있다”고 전한다.

▲ 탄저병에 감염된 고추 과실 및 고추 탄저병균의 다양한 포자 모양.

▲연구성과=‘유전정보를 이용한 채소류 탄저병균의 분류 및 동정’을 통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고추를 비롯한 채소류에서 300여개의 탄저병균을 수집했다. 또한 병원균에 대한 유전자분석과 여러 특성을 조사해 우리나라의 고추 탄저병에 8종 이상의 탄저병균이 관여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여기에 더해 각 종별로 고추 탄저병에 사용하고 있는 약제에 대한 반응을 조사한 결과, 종에 따라 살균제 효과가 다를 수 있음을 확인했다. 또, 시판 중인 고추품종을 대상으로 탄저병균의 종에 따라 병을 일으키는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울러 2000년대 초반 연구에 의하면 국내 고추 탄저병균이 과거에는 ‘콜레토트리쿰 글로에오스포리오이데스’라는 종이 우점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콜레토트리쿰 아큐타툼’이 우점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살균제 사용 등 재배환경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가 기후변화나 재배환경 변화에 따라 고추 탄저병균의 우점정도가 변할 경우를 대비한 기초자료로 가치가 있는 이유다. 이와 함께 무 탄저병을 일으키는 균으로 기존에 알려진 ‘콜레토트리쿰 히긴시아눔’이라는 종 이외에 새로운 종인 ‘콜레토트리쿰 트런카툼’이 관여하는 것을 밝혔다. 이 종은 무에 탄저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서 세계 최초로 보고가 됐다. 또, 관상용이나 약재로 사용되는 기린초 탄저병을 일으키는 병원균 ‘콜레토트리쿰 애니그마’ 역시 국내에서는 처음 보고했다. 최효원 농업연구사는 “이번 결과가 기후변화나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서의 중요성이 크다”면서 “국내에서 분리된 탄저병균에서 분석된 유전자정보 78건을 미국의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 등록했고, 국내외에 학술발표도 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최 연구사는 “남은 연구기간 동안 지역별로 수집한 균들을 동정하고, 종별 특성을 조사해 채소류 탄저병균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품종육종이나 식물검역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한 기초 데이터로 축적할 것”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제기술 개발이나 살균제 저항성 병원균 관리 방안 마련 등 종합적인 탄저병 관리체계를 통해 농가소득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번 연구에서 확보한 균주들은 저항성 품종육종 연구나 효과적인 살균제 혹은 생물방제 제품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보존, 관리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균주 특성과 유전자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DB(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식물병원균의 분류와 동정, 진단을 위한 플랫폼 구축의 발판이 되도록 한다는 게 국립농업과학원의 설명이다.

서상현 기자 seosh@agrinet.co.kr
<공동기획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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