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지위 포기 공식화 논란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농업주권 포기, 농업 홀대”
농민단체 일제히 반발


정부가 10월 25일 농업분야 WTO(세계무역기구)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포기 결정을 발표했다. 향후 WTO 협상에서 농업 분야 개도국에 주어지는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미국이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결정하라며 통보한 마감시한(10월 23일)에 따른 결정으로, 미국의 압박이 구체화된지 석 달여 만(92일)에 ‘백기투항’했다. 농업계를 비롯해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9시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직후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브리핑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이태호 외교부 2차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홍남기 부총리는 “우리 정부는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에 우리 농업의 민감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 하에 미래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혀, ‘농업 분야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결정이 농업 분야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니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특히 이번 의사결정 과정에서 쌀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WTO 미래 협상에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인 만큼 당장 농업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이 미래의 WTO 협상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협상 효력은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DDA(도하개발아젠다) 농업 협상이 장기간 중단돼 사실상 폐기 상태에 있고 향후 협상이 재개돼 타결되려면 상당히 장기간 소요될 것으로 보여 시간적 여유와 대응 여력도 충분하다는 ‘낙관’이다.

농업 분야의 피해가 당장 발생하지 않는다는 정부와 달리 농업계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

30여개의 농업 단체들이 결집한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도국 지위 포기는 농업주권 포기이자 농업 홀대의 결정판이며, 미국에 굴복한 굴욕외교”라며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충격과 동시에 격앙된 반응이 농업계에서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성명에서 “미국이 7월부터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 압박을 했음에도 정부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발표 전부터 이미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당장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며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었기에 이번 정부 결정에 배신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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