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해영 한신대 교수

두 달여 온나라가 홍역을 앓았지만
그 누구도 농심을 묻지 않아
대다수 농민 그들만의 리그서 소외


약 2달여 온 나라가 지독한 홍역을 앓은 느낌이다. 과연 나을 수 있을까. 난 선 듯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쪽에 서질 못하겠다.

서울시가 이 와중에 재미난 데이터를 발표했다. 처음 한 쪽, 서초동 집회측이 100만이 모였다고 하자, 광화문집회측은 200백만을, 다시 한 쪽이 300만을 부르자 상대 쪽은 500만, 1000만을 불렀다. 집회 참석 연인원의 숫자 말이다. 그런데 논란가운데 야당 쪽에서 인근 지하철 역사 하차 인원 등을 근거로 10만도 안된다고 했고, 다시 500만 모였다는 광화문 집회도 같은 기준으로 보니 40만 전후더라는 보도도 나왔다. 다시 말해 숫자정치 아니 숫자 놀음 속에 서로 10배, 20배 세 불리기 과장 속에 그나마 객관적 팩트에 가까워 보이는 데이터가 나왔으니 시선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말하자면 ‘생활인구’ 데이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라고 할 때 휴대전화 사용자의 접속 기록을 통해 매일, 매시간 서울시 특정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 들었는지 그 ‘연인원’을 추산하는 방식이다. 특정일 특정시간대 휴대전화 접속 수에서 평상시 해당 지역의 상주인구와 유동인구를 합한 수를 뺀 수치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먼저 9월 28일 서초동 촛불집회 참여 인원을 추산해보니 7만6853명이 나왔고, 그 뒤 10월 5일 촛불 집회 참가자는 10만6462명이었다. 이런 식으로 10월 3일 광화문 태극기집회 참가 인원을 추산해 보니 32만 2330명이었다.

이를 연령대별로 나누어 보니 10월 5일 18시 기준 13만7168명이 참가한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60대 이상의 비중은 19.6%였다. 반면 40~50대는 57.68%였다. 9월 28일 촛불집회 역시 40~50대가 56.3%를 차지했다. 그런데 10월 3일 14시 기준 41만8087명이 참가한 광화문 태극기 집회는 60대 이상이 74.85%였고, 40~50대는 20.35%였다. 같은 날 서초동 집회의 20대 비율은 5.7%, 반면 광화문 집회의 그것은 0.94%로 1%미만이었다. 그래서 연령대별로 보자면 서초동은 40~50대가 광화문은 60대 이상이 주축인데 양쪽 다 20대는 외면했다. 성비로 보자면 서초동은 대략 균형을 이루는데, 광화문은 60대 이상 참가자중 남성 비율이 70%이상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10월 3일 2시 기준 광화문집회 참석자의 출발기점을 보니 서울동남권 (5만2170명), 경기남부권(5만1080명), 서울동북권(4만1569명)이 다수이고 특이하게도 경북에서 7788명이 참가했다. 서울동남권이라 함은 이른바 강남3구를 말하는데, 강남구 약 2만 여명, 송파구 약 1만8000여명, 서초구 약 1만7000여명이, 경기 남부권에서는 특히 성남시 분당구 1만3000여명, 용인시 수지구 약 1만 여명이 참가했다.

반면 9월 28일 오후 7시 기준 서초동 촛불집회 참가자를 마찬가지로 살펴보면 서초구를 제외할 때 강남구(약 5203명), 관악구(약 4189명), 성남분당구(약 3055명), 송파구 (약 3040명)를 기록, 서초동 촛불집회 역시 서울 동남권, 곧 강남3구를 필두로 경기남부권이 핵심이었다는 말이 된다.

현실 정치에서 성별, 연령별 보다 지역별 동원의 크기가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해당 선거구의 투표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번 조국대전의 동원기반은 촛불이건 태극기건 서울 동남권과 경부고속도로를 좌우로 끼고 있는 ‘경부권’ 곧 경기남부권이다. 한마디로 넓은 의미의 ‘강남’이다.

그래서 조국대전은 강남공화국 대한민국의 중원을 높고 한바탕 힘겨루기를 한 셈인데 놀랍게도 광화문 쪽이 강남에서 더 많은 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저 말없는 빅데이터의 핵심 메시지다. 더군다나 진보개혁이라 할 서초동쪽은 애시 당초 서초동 대 비서초동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그 서초동마저도 여의동과 서초동2로 다시 분열되기 시작했다. 광화문 쪽도 박근혜탄핵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극우분파들이 혼재되어 있어 지켜볼 대목이 있지만 아직은 진보개혁진영 만큼 균열되어 있지는 않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이 국면에서 ‘농심’을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혹 일부 농민이익을 대변할 정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장에서 그들만의 목소리를 나는 듣지를 못했다. 나로선 대다수 농심이 ‘그들만의 리그’인 조국전쟁에서 소외된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또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남화’된 자신들의 나라를 지켜보는 것 이외에 별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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