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표준시험조건 ‘4℃, 30분’ 명시 
현장 여건과는 맞지 않아
소독효과 두고 우려 고조

차량 전면 고압세척 필수지만
상당수가 안개분무 그쳐
소독제 승인방식 개선 여론


9곳의 양돈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가운데 현재 현장에서 가동되는 방역시설들 중 적잖은 시설이 제대로 된 소독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방역당국의 소독제 효력시험조건도 현장 여건과 맞지 않아 소독효과를 높이기 위한 소독제 승인방식에 대한 개선도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소독제 효력시험지침에 따르면 표준시험조건은 소독대상 병원체를 함유한 증류수 희석액, 경수 희석액 또는 유기물 희석액을 각각 소독제를 함유한 증류수, 경수 및 유기물 희석액과 동량 혼합 후 4℃에서 30분간 처리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이 지침에 따라 시험을 실시하면 소독제로 승인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차량소독시설이 바이러스를 처리하기에는 부족한 1분 내외로 가동된다는 점이다. 또 겨울철에는 기온이 0℃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상당수다. 4℃에서 30분이라고 명시된 표준시험조건과 현장 여건이 맞지 않는 셈이다. 소독시설을 제조하는 A업체 관계자는 “표준시험조건을 따르면 바이러스를 4℃에서 30분 간 노출시켜야 죽는다는 뜻”이라며 “현장에서는 소독약을 1분도 뿌리지 않는데 소독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방역시설의 성능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재 차량소독시설은 터널식 또는 벽면형태로 상당수가 안개 분무 방식으로 가동되고 있다. 거점소독시설 등에서 가동되고 있는 방역기들은 도축장과 농장, 분뇨시설 등 각종 축산 관련 시설을 오가는 차량의 전면을 고압 세척방식으로 소독해야 하지만 상당수 방역시설이 소독약을 차량에 묻히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소독시설이 가동될 때 바람이 불 경우 소독약이 쉽게 날아가 소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지난 8월 열린 축산현장 방역관리 세미나에서 최농훈 건국대 교수는 바람을 고려하지 않은 설비, 차량 바퀴 및 차체 하부의 경우 충분한 소독 불가, 방역기의 부적절한 노즐 위치와 방향 등으로 차량 하부의 유기물을 제거하기 힘든 것은 물론 차량 바퀴 등은 적절한 소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홍성의 한 양돈농가는 “축산 관련 시설을 오가는 차량의 바퀴에는 해당 시설의 각종 유기물 덩어리는 물론 바이러스까지 묻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철저하게 차량을 세척한 후 소독약을 뿌려야 그나마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거점소독시설의 소독방식은 이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소독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A업체 관계자도 “정부가 설치한 거점소독시설 등에서 이 같이 하기 때문에 농장주들도 ‘이 정도만 해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세차하는 것처럼 고압세척시설로 소독을 실시해야 그나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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