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해영 한신대 교수

중국 표적에 우리나라 걸려들어
11개국 가운데 대부분 포기 전망
쌀·고추·마늘 등 직격탄 불가피


그 속셈은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 미대통령 덕분에(?) 한반도에서의 평화프로세스는 어쨌든 궤도 위에 있다. 미국 민주당 ‘네오콘’ 힐러리 클린턴이 그 때 당선되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 트럼프가 우리 농업, 농촌에 우울한 그림자를 던졌다. 지난 7월 26일 트럼프는 미 무역대표부(USTR)에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도국 지위 유지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향후 90일 안에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 ‘모든 수단’이 무엇일까?,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데드라인이 다가 온다. 대략 10월 26일이다. 무시무시한 협박이다. 한마디로 그 날까지 죽든지 아니면 항복하라는 말이다.

한미 방위비 협상이 곧 개시된다. 한국이 일번이다. 한국과 협상을 끝내고 일본,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로 넘어갈 거라 한다. 우리가 일번인 이유는 간단하다. 제일 만만하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약점도 많다. 그래서 제일 만만한 한국을 상대로 최대한 뼈까지 발라 낸 다음 그 성과를 가지고 다음 단계로 가겠다는 수순이다.

개도국 지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표적은 중국이다. 개도국 지위 시비는 전방위적인 대중국 압박의 일환이다. 그래서 초식을 펼쳤는데 우리가 제대로 걸려들었다. 미국이 제시한 기준이란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지, 주요 20개국(G20)에 포함되는지, 세계은행이 분류하는 고소득 국가인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0.5% 이상이 되는지 등 4가지다. 그런데 마치 ‘깔맞춤’이나 되는 양 미국이 제시하는 이 4가지 기준 모두에 해당하는 유일한 농업 개도국이 바로 한국이다. 물론 한국은 농업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선진국에 상응하는 시장개방 의무를 이미 자발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트럼프의 행정지시 대상국인 11개국 가운데 중국은 당연히 끝까지 개도국 지위 고수가 예상된다. 거의 대부분이 포기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 일각에선 한국, 터키, 멕시코 등이 약간 저항 의지를 보일 것으로 분류한다. 우리만 보더라도 당장 다음 달 말까지 이 민감한 사안을 놓고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경우 미국은 ‘한국은 개도국 아님’이라고 선언한 뒤, 각종 통상 압력을 통해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말이다. 나머지 나라도 마찬가지 신세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문제는 한미관계다. 어느 시점이 되면 이른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자동차를 압박할 거다. 사실 농업분야는 변변한 대미수출품이 없다. 따라서 자동차를 잃을 수는 없으니 ‘별 영양가도 없는 개도국지위 따윈 개나 줘버려’ 하는 논의가 ‘활발’해 질 것이다.

과연 개도국지위가 개나 줘버릴 것인지 지금으로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 WTO체제 개도국 지위를 통해 특별 품목으로 보호받고 있는 쌀, 고추, 마늘, 양파, 감귤, 인삼, 감자, 유제품 중 어느 것은 언젠가 직격탄을 얻어맞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이 품목들의 관세장벽이 무너지거나 완화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또한 국내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세화개방 조치를 단행한 쌀 수입관세 513%의 미래도 보장하기 어렵다. 당시에도 이런 경우를 상정해 이 수치를 법으로 정해 다시는 물릴 수 없도록 하자는 농업계의 요구도 있었지만 결국 묵살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상 좌초되고 말았지만 예컨대 도하개발어젠다(DDA)의 안에 따르면 한국이 개도국지위를 포기한 뒤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쌀을 민감 품목으로 보호할 경우 513% 고율관세는 393%로, 나아가 일반품목으로 분류할 경우 154%까지 하락하게 된다. 이 경우 쌀의 대 수입산 가격경쟁력이 붕괴되고 우리 쌀 산업 자체가 존망의 기로에 몰리게 될 것은 자명하다.

또 하나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재정지출이나 조세지출(세금 감면 등)로 지출하는 농업 보조금 규모는 연간 11조원 수준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경우 허용보조금을 제외한 상당액의 보조금이 삭감되어 지금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보조금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물론 당장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농정에 대한 저 뿌리 깊은 농민들의 불신은 정부가 아무리 ‘철저한 대책’을 약속해도 해소될 수준이 아니다. 개도국지위 포기가 가져올 최대의 문제는 우리 농정의 ‘정책공간’이 더욱 왜소화되는 것이고 이것이 농민들의 불신을 더욱 가중시킬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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