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구자룡 기자]

▲ 제17회 태풍 ‘타파’로 인해 경남 밀양 얼음골사과 재배단지에 낙과피해는 물론, 사과나무 도복피해까지 속출했다. 사과나무 420그루 중 407그루가 쓰러진 염종길 씨<오른쪽>의 과수원에서 설현수 밀양시의원<가운데>, 안기환 한농연밀양시연합회 산내면회장<왼쪽>이 함께 복구대책을 의논하고 있다. 경남 구자룡 기자

경남 밀양 염종길 씨 과수원
수령 17년된 400그루 중
13그루만 남기고 뿌리 드러내

 

나무 사이 강철 와이어도
순간 돌풍 못 견디고 끊어져
“어떻게 다시 일구나…” 막막


몽땅 도복됐다. 벼 도복 피해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 과수원의 사과나무가 일제히 쓰러져 뿌리를 드러냈다. 다시 세울 수 없다. 몽땅 베어내야 한다. 낙과피해와 달리, 한 해로 수습이 불가하다. 묘목을 새로 심어 빨라야 5~6년은 키워내야 이곳에서 다시 사과를 수확할 수 있다.

지난 23일 찾은 경남 밀양시 산내면 가인리 염종길(50) 씨의 사과 과수원이 직면한 처지다. 거센 비바람을 동반했던 제17호 태풍 ‘타파’는 밀양 얼음골사과 재배단지를 강타해 곳곳에 이와 같은 치명타를 안겼다. 낙과된 사과는 부지기수고, 사과나무 도복피해가 속출했다. 폭우가 과수원 지반을 무르게 해놓은 상황에서 산골짜기에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2754㎡ 면적의 염 씨 과수원에 있던 약 17년 수령의 사과나무들은 420여 그루 중에서 불과 13그루만 남겨놓은 채 드러누워 있다. 한 나무 한 나무를 바치고 있던 굵직한 철재 지주들도 사과를 매단 채 쓰러진 나무와 함께 넘어져 있다. 강철 와이어들도 터져 맥 풀린 채 널려 있다. 쇠말뚝과 나무들 사이를 연결했던 강철 와이어가 순간적인 돌풍의 엄청난 힘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면서 사과나무들은 도미노처럼 일제히 쓰러졌다고 한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낙담해 하고 있는 염종길 씨의 눈시울이 젖어 있다. 안기환 한농연밀양시연합회 산내면회장과 설현수 밀양시의회 의원이 다가가 위로를 전하며 복구대책을 의논해보지만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아 함께 한탄만 할 뿐이다.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진 사과나무들은 억지로 세워봐야 제구실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쓰러진 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새 묘목을 심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새 사과나무에서 다시 사과 수확의 결실을 보기까지는 5~6년이 훨씬 더 걸린다. 그동안 염 씨는 주요소득원을 잃고 실직과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과수원을 새로 일구는 데에는 지속적으로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에 일반 노동자의 실직과 비교할 수 없는 생활고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염 씨의 사과과수원이 농작물재해보험에 들어있긴 하다. 그러나 낙과에 대한 보험금은 몰라도 나무 도복에 대해 지급되는 보험금은 쥐꼬리 수준이라 경영난을 타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한 두 나무 쓰러졌을 때야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과수원 전체가 도복피해를 입었을 때는 답이 없다고 한다.

보험회사 직원이 피해조사를 다녀간 후에야 13그루의 사과나무가 쓰러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을 염 씨는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달갑지 않다. 13그루만 듬성듬성 남겨놓고 과수원을 새롭게 조성할 수 없기에 함께 베어내야 하는데, 도복피해 보상금은 못 받는다.

염종길 씨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태풍을 겪었지만, 하루아침에 과수원을 이토록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지는 몰랐다”며 “주 소득원이었던 노른자 과수원을 어떻게 다시 일구어야 할지 몰라 억장이 무너져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안기환 한농연밀양시연합회 산내면회장은 “산골짜기를 따라 거센 돌풍이 몰아쳐 이 마을에서는 염 씨 말고도 송영찬 씨가 150주, 송영규 씨가 42주, 최종호 씨가 30주 사과나무 도복피해를 입었다”며 “낙과된 사과도 우박이 무더기로 내린 듯 과수원을 가득채웠다”고 전했다.

밀양에서는 태풍 ‘타파’로 인해 사과 낙과피해 252ha, 사과나무 도복피해 50ha가 발생한 것으로 이날까지 잠정 집계됐다. 거의 모든 피해가 얼음골사과단지에 집중돼 있다. 얼음골사과는 10월에 과실을 더욱 키우고 당도를 높여 11월 중순에 수확하는 농가가 많다. 이번에 낙과된 사과는 맛이 덜 들었을 뿐더러, 잔류농약의 문제도 걸려있어 폐기될 수밖에 없다. 사과나무 잎이 떨어지는 피해도 심각하기에 올해 얼음골 사과 맛을 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설현수 밀양시의회 의원은 “밀양시 대표 특산물인 얼음골사과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태풍 ‘타파’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서 신음하고 있다”면서 “조속한 피해 복구를 도울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농작물재해보험의 실효성도 보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밀양=구자룡 기자 kucr@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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