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선(先)조치, 후(後)보고하라.”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을 앞둔 지난 7월 말 원희룡 제주지사는 정책조정회의에서 “피서지 안전관리 강화와 쓰레기 무단 투기 등으로 인력 수요가 발생할 경우 선조치 후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원 지사의 정책조정회의 발언처럼 정책 추진 중 위기나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될 경우 ‘선조치, 후보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보고로 시작해서 보고로 끝난다’라는 군대에서조차 적 도발 등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할 경우 ‘선보고’가 아닌 ‘선조치’를 요한다.

월동채소 주산지인 제주를 비롯해 9월 말 현재 주요 농산물 산지엔 위기·긴급 상황이 발령돼 있다. 이례적으로 한반도에 큰 타격을 준 태풍이 한 달 새 연달아 찾아왔고, 그 사이사이 가을장마 등 궂은 날씨도 이어졌다. 산지에선 낙과 피해, 파종·정식 지연, 물량 유실에 따른 재파종 일정 잡기 등 자칫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는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이들 산지에선 낙과를 바로 거둬들이지 않으면 중하품은 물론 가공용으로도 쓸 수 없게 되고, 재파종도 심어야 할 마지노선 시점이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정작 재해보험과 재파종 지원 등 지원책은 보고가 먼저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산지에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2016년 가을, 태풍 차바로 인해 월동채소 수급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산지에선 ‘재파종과 피해 복구가 우선이니 열흘 밖에 되지 않는 신고 기간을 연장하고, 복구 지원을 먼저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22일 제주와 남부권을 할퀴고 간 제17호 태풍 타파는 2016년 차바와 시기, 방향, 강도 등이 유사했고, 차바 못지않게 남부권에 상당한 피해을 줬다. 여기에 지난 8일 태풍 링링의 여파까지 더해져 3년 전 이상으로 과일은 떨어졌고, 제주와 남부권의 월동채소 유실 피해도 상당히 컸다.

태풍 등 악천후에 따른 농산물 산지 피해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농가들은 한 해 농사가 걸린 피해 복구, 즉 ‘선조치가 무엇보다 더 중요하고 다급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월동채소 산지는 제주 등 특정지역에 집약돼 있어 이들 산지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전 국민의 겨울철 먹거리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농산물 재해에 대한 ‘선조치’는 농가만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위한 조치라는 의미다.

김경욱 기자 유통팀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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