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소비가 안 되니 농사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하우스를 내놔도 살 사람은커녕 빌려 지을 사람도 찾기 힘들다.” 수도권 인근에서 쌈채류를 재배하는 한 농가의 말이다. 작황은 어떤지 말을 건넸다가 나온 하소연이다. 얘기는 ‘나라 경제’로까지 흘렀다.

무역전쟁이다 뭐다 경제 상황은 계속 나빠지는데, 생산비는 계속 오르고 직장에서는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란 뜻)이란 신조어가 생겼듯 회식 문화가 사라지면서 식당과 같은 곳의 대량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물론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서 농산물 값이 더 오르는 것은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2019년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0.0%’를 나타냈다. 사실상 마이너스 물가란 평가다. 통계청은 디플레이션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그 원인으로 농축수산물의 가격하락을 꼽았다. 양호한 기상여건에 따른 생산량 증가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했고, 지난해 8월 폭염 등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했던 기저효과라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실제 올해 대부분의 작물들은 생육 상황이 좋아 생산량은 늘고, 가격은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상반기에는 양파와 마늘 생산량이 늘면서 가격이 폭락해 정부가 수급조절 대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농산물이 제값을 받으려면 소비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수급관리가 우선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농민들은 정부의 농산물 수급관리 정책을 힐난한다. 지난달 농식품부는 채소류 가격안정을 위해 전국 순회 워크숍을 열고 사전 재배면적 조절에 나섰지만, 농민들은 예산 없이 자율 감축만을 고집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순회 워크숍 마지막 날인 지난달 29일에는 전국양파생산자협회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의 워크숍이 ‘겉치레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농식품부가 수급관리 정책 개편 방안을 모색하기 운영 중인 채소발전기획단 TF에서도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TF는 당초 8월 말까지 새로운 채소산업발전계획을 내놓을 계획이었으나, “막상 운영하고 보니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아 계획 수립이 늦어지고 있다”고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했다. 

2020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채소가격안정지원 예산은 190억여원으로, 올해 150억여원보다 26% 증가했다. 농업관측 예산은 올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 170억여원이 편성됐다. 수급관리 예산과 농업관측 예산이 늘어난 만큼 내년엔 더 이상 가격폭락으로 이어지는 농산물 수급 문제가 불거지지 않길 바란다.

그러려면 새로운 수급관리 정책에 농민들이 지적해온 문제점도 반영해 나가야 한다. 농산물이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몰리는 것도 모자라 디플레이션 원인으로까지 몰리는 상황은 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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