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달 맞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홍상 원장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취임직후 보직인사 내고 변화 ‘속도’
행정업무 최소화·연구 중심 경영 약속
미래지향적 중장기 과제 발굴 힘써야

직불제 중심의 농정 개혁 추진시
합리적 논거 있어야 국민 설득 가능
정교한 연구 등 농경연이 역할해야

정부가 직접 주도하는 스마트 농업
자원배분 왜곡·형평성 논란 불가피
정부 개입영역과 시장영역 구분해야


“우리 연구원에 박사가 89명이다. 전국 대학의 농경제학과 교수들을 다 합친 수 보다 많다. 농정 틀의 전환이 추진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사회적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집단지성을 발휘해 나가겠다.”

취임 한 달을 맞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농경연) 김홍상 원장은 연구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했다. 나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의 수장이라는 자리의 무게때문이다. 취임 후 두 시간 만에 보직인사를 단행하는 등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를 이끌고 있는 김홍상 원장. 지난 4일 그를 만나 연구원 운영 방향과 농정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취임식에서 김홍상 원장은 연구원의 방향성을 세가지로 제시했다. △미래를 그려내고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원 △필요한 연구를 깊이 있고 속도감 있게 실천하는 연구원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고 사회에 기여하는 연구원. 이를 위해 그는 구성원들에게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고, 불필요한 업무에 신경 쓰지 않도록 ‘연구 중심 경영’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연구 중심 경영을 강조한 이유는.
“연구원은 연구로서 말해야 하는 조직이다. 연구는 연구자들이 한다. 그래서 부서장들의 연구과제도 경감시키지 않았다. 부원장에게도 연구과제를 수행하라고 했다. 각 분야 최고의 능력자들인데, 행정업무에 치우쳐 진짜 해야 할 연구를 놓치면 안된다. 임명할 때 보직사표 권리는 없다, 보직 그만두려면 연구원 사표를 내라고 말해뒀다. 갑질을 좀 한 셈인데, 그래도 많은 후배들이 이런 분위기에 동참해 주고 적극 해보자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불필요한 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쓸 데 없는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

-연구과제 발굴 방식도 변화가 있다고 들었다.
“하고 싶은 연구 50%, 해야 될 연구 50%를 겸하도록 할 생각이다. 스스로 과제를 발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조직이 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도 구성원의 중요한 임무다. 그래야 큰 틀에서의 미래지향적 연구, 중장기적인 연구과제 발굴이 가능하고, 정책을 선도해 나갈 수 있다. 운영전략회의나 부서장 워크숍도 추진한다. 부서장들은 1년에 농정포커스나 농정 현안을 최소한 하나씩 무조건 써야 한다. 후배그룹과 소통하면서 이들의 성장을 돕는 것도 부서장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미션이다. 개혁을 하려면 스스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최근 농정개혁이 급물살을 타는 느낌이다. 농특위가 출범했고, 공익형 직불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농경연의 역할은.
“농정 틀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직불제 중심의 농정 개혁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 이뤄진 듯하지만, 사실 예산규모도 2조2000억이냐, 3조냐 아직 논란 중이고, 그 예산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집행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 그림이 없는 상태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제고하려면 어떤 식으로 직불제를 개편하고 운용해야 하는지, 합리적 논거와 정교한 프로그램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예산당국이나 국민에 대한 설득이 가능하다. 농경연이 그 부분에 대한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농정 비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삶의 공간으로서 농어촌 공간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품목별 가치사슬 경영분석이나 지속가능한 축산, 남북농업 교류협력 등도 주요 의제다.”

-스마트팜 혁신밸리 등 정부 주도의 혁신성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금 농업부문의 인력구조나 산업을 보면 혁신성장이라든가 스마트 농업은 불가피한 시대적 요구다. 그런데 그걸 정부가 직접 주도해 돈으로 다하려고 하니까 문제다. 필연적으로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시장이 주도할 수 있게 제도나 물줄기를 바꿔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정부가 개입할 영역과 아닌 영역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건 농산물 수급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섣부른 개입이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시장의 플레이어들을 쫓아내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야기한다. 농업계에서 시장 이야기를 하면 ‘반농업적 인사’로 낙인찍히기 십상인데, 그래선 안된다. 시장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제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앞으로 연구원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과제가 되겠다.
“나는 일정 부분 욕을 얻어먹고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의사 결정은 없다. 대개 원장이 되면 소통한다고 직급별, 부서별로 만나기도 하지만 난 그런 식의 만남은 원치 않는다. 그런 건 부서장들이 해야 한다. 나는 부서장들과 경영철학에 대해 공유하고, 연구원들을 리딩하는 건 부서장이다. 부서장들이 후배그룹을 최소한 1~2명씩 키워내면 우리 연구원의 박사들 절반 이상이 주요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책임있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조직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다.”

김홍상 원장은 1994년 박사공채 1기로 연구원에 들어왔다. 일반 경제학과 출신으로 사실 이렇게 오래있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엄청나게 많은 자료와 정보가 집적되어 있는 연구원의 매력에 빠져 발을 빼지 못했단다. 우리나라 농업·농촌 정책을 선도한다는 자부심도 컸다. 김 원장은 “10년 앞을 내다보고 주어진 3년의 시간 동안 내가 할 일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연구원의 사회적 책무를 거듭 강조하는 그의 말에서 앞으로 농경연이 어떻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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