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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주민 빠진‘어쩌다 협치’유감

[한국농어민신문]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행정·컨설팅사 주도 ‘거버넌스 왜곡’
다 짜놓은 판에 농민 동원 구태의연
언제쯤 직접민주주의 바람 불까


얼마 전 ○○면 이장단의회에 해당지역 농업회의소 실무자가 농업회의소의 취지와 추진경과, 지역농업인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설명회를 참관하게 되었다. 그 지역 농업회의소는 이미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선정된 상태이고, 행정에서 주관하는 공식행사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설명회를 지켜보면서 나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농업회의소 임원들은 과연 누구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은 것일까? 아니 그들이 공식석상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과연 그 지역 농업인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 우리 사회전반에 ‘거버넌스’ 구축이 대세이다. 이제 출범 100일을 넘긴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도 향후 다뤄야 할 주요의제 가운데 하나로 ‘농촌 거버넌스 혁신’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최근 농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농업회의소’와 ‘푸드플랜, ’‘신활력사업’ 등은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거버넌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특정 사안과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으로 ‘협치’라고도 부르고 있다. 과연 현재 농촌에서 구성되고 있는 거버넌스의 실상이 과연 그럴까?

얼마 전 화성시에서 농업회의소 창립총회가 지역농업인들의 반발로 파행으로 이어졌다는 기사를 접했다. 파행의 원인은 총회 전까지 지역농업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정관의 승인을 시도했으며, 농업회의소 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담당할 대의원총회가 지역농업인들의 참여 없이 이미 꾸려져 있었다고 한다. 행정의 기획인지 컨설팅사의 기획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다 짜놓은 판에 농민들을 동원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일이 비단 화성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최근 전국 지자체로 번지고 있는 푸드플랜패키지사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기간 동안 행정과 컨설팅사에서 지역농업인단체 대표를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몇 차례를 형식적인 회의를 진행하는데 그치고 있다. ○○군 푸드플랜패키지사업 거버넌스단체로 참여하고 있는 한 대표는 컨설팅사의 기본계획 수립 연구가 끝나면 거버넌스는 중단되고, 민간은 소집할 권한도 없는 거버넌스라고 꼬집었다.

농업회의소와 푸드플랜 등 지역의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인 사업들이 현장에서 추진되는 과정에서 거버넌스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과 컨설팅사가 기획하여 주도하는 거버넌스, 참여범위와 단체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버넌스, 논의과정과 결과가 현장 농업인과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거버넌스, 지자체장과 의원은 인사만 하고 나가는 거버넌스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농업인과의 사전 협의와 소통 없이 행정과 컨설팅사의 주도로 기간을 정해놓고 조직과 임원을 결정하고, 지역농업인을 동원하는 방식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농업회의소야말로 지역농업인과의 소통과 공감대 형성을 통해 아래로부터 절차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마을별, 읍면별, 시군별 층위마다 대의원이 구성되고, 광역단위 농업회의소로 그 힘이 모아져야 하지만, 현실은 광역에서 읍면과 마을로 조직을 내리꽂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산하에 특별위원회로 좋은농협위원회를 설치했다고 한다. 농협개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문제가 바로 한국 농협의 태생적 한계이다. 정부주도로 농협이 설립되어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재의 구조가 고착되었다는 지적이다.

농업회의소가 현재와 같은 상태로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농업계에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또 하나의 전국 조직이 더 생기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는 ‘자치분권’과 ‘주민주권’강화를 위한 직접민주주의 확대이다. 언제쯤 농업·농촌에도 직접민주주의의 바람이 불까?

좋은농협위원회에서 농협중앙회장의 간선제를 직선제로 전환하기 위한 법과 제도 개선에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제 출발선상에 있는 농업회의소는 물론이고, 푸드플랜 거버넌스 등 협치기구는 아래로부터 농업인과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합의를 통해 제대로 민주적 과정을 밟아가는 학습과 경험 축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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