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해영 한신대 교수

한·일관계, 1965년 한일협정체계 기반
한반도평화 프로세스와는 모순
항구적 평화체제로 가는 첫걸음


지소미아(GSOMIA)란 다소 생소한 이름이 언론의 여러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웬만하면 몰라도 되는 이름이다. 대부분의 국제관계 관련 용어들처럼 실제 생활하는데 아무 소용이 안 되는지라, 평화로운 나라 백성이라면 몰라도 상관없고 알아도 써먹을 데도 없다.

‘지소미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일컫는다. 2016년 박근혜가 탄핵되기 얼마 전 한·일간에 바로 이 지소미아협정이 타결되어 현재 발효중이다. 거의 모든 국제조약이 그렇듯 체약국 일방이 그냥 일방적으로 연장 거부를 하면 협정은 종료된다. 예컨대 상대국의 동의라 던지 하는 어떤 다른 절차도 불필요하다. 통보만 하면 된다. 그 협정만료일이 8월 24일 바로 코앞에 닥쳤다.

정부로선 선택의 기로에 선 셈이다. 박근혜 정부 훨씬 이전부터 일본이 요구해 온 것이라 실상 일본측이 아쉬울 것이 많다. 각종 첨단 전략자산을 통한 이른바 신호정보(SIGINT)야 일본이 훨씬 우월하다. 우리는 대개 주한 미군을 통해 이에 접근해 왔으니 굳이 일본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른바 휴민트(HUMINT) 곧 인적 정보, 더 쉽게 말해 예컨대 간첩 등을 통한 대인 정보가 아쉽다. 그래서 우리 측이 제공해 주는 것이 주로는 휴민트 정보다.

지소미아 폐기는 현재 최악의 상태인 대일관계에서만 보자면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그 배경에 놓인 큰 그림을 보면 결코 만만치가 않다. 미국에는 미·일동맹을 관리하는 기본적으로 친일 내지 지일파들이 모여 ‘초당적인’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발표해 왔는데 이른바 <아미티지-나이 보고서>가 그것이다.

미국 민주, 공화 양당의 국제관계 특히 아시아 전략통들이 주기적으로 회합해 그 결과를 공표한다. 양당의 핵심 브레인들이 거의 망라되고, 또한 보고서에 관여한 자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정부 요직을 맡게 되는지라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여기에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대강이 담긴다. 이 보고서는 처음 2000년에 발표되었고 이후 2007년, 2012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 발표된 것이 작년 2018년 10월이다. 과거보다 좀 힘이 빠졌지만 한국 관련 내용은 이렇다.

“돌발 상황에 보다 잘 대처하기 위해 한·일간 방위협력은 정보공유 개선과 군수 장비 조달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한·일 각국과 미국과의 양자 동맹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만약 대북 협상이 평화협정을 포함해 미지의 땅으로까지 진전된다고 할 때, 한·미·일이 통일된 입장을 유지하고 어떤 핵심적인 동맹자산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군사훈련, 군대 주둔 그리고 미사일 방어(MD)는 북한의 검증할 수 없고 불완전한 비핵화 약속과 맞바꾸는 그런 협상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이것은 한·미·일을 더 안전하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박근혜 탄핵이 없었더라면 지소미아는 물론이고, 지금 한·일간에는 군수지원협정 (ACSA)도 이미 체결, 발효 중이었을 거다. 한·일간 정보와 군수가 공유되면 남는 것은 병력이다. 이렇게 해서 한·일관계는 군사동맹으로까지 발전되게 되고 이는 곧 중국과 북한을 겨냥하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이 완성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저지 파탄시킨 것이 바로 촛불혁명이다. 저들 미국의 초당적 안보 귀족들은 실망하겠지만 우리는 말하자면 촛불혁명 덕에 좀 더 안전한 나라에서 살게 된 셈이다.

여전히 미국의 안보통들은 한·미 군사훈련, 주한미군, MD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고, 지소미아가 한·일 군수지원협정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이른바 1965년 한일협정체계에 기반해 있다. 이 1965년 체제는 남북분단과 군사적 긴장 그리고 크게는 미소 냉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는 이 체제와 모순, 상충하는 것이다. 지소미아 역시 1965년 체제의 연명을 위해 설계된 것이라 지금의 평화 프로세스와 공존하기 어렵다. 지소미아 연장 여부는 그저 한일관계의 일부는 아니다. 그것은 더 크게 보면 지금의 평화 프로세스를 안착시켜 좀 더 안전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내내 외세에 휘둘려 갈등과 전쟁위험 속에서 살 것인지 바로 그 선택의 첫걸음이다.

(이 글은 24일 직전에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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