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맥주>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성장하고 있는 수제 맥주 시장에서 판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국내산 보리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을까.

수제 맥주 시장의 성장 속에 맥주의 주 원료인 맥아를 국내산 보리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산 맥아를 사용·판매하는 업체가 전국에서 단 한곳에 불과해  맥주 원료 국산화를 위한 길도 녹록치 않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업체가 한곳이라도 있다는 것은 맥주 원료의 국산화가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국내 유일의 국산 맥아를 활용하는 ‘수제 맥주업체’ 방문과 ‘국산 맥아 소비 확대를 위한 맥주산업 전문가 간담회’ 내용을 토대로 수제 맥주 시장에서의 국내산 맥아 활용 가능성을 점검해봤다.
 

▲ 이용선 파머스맥주 대표가 맥아가공시설에서 제주도 우도에서 생산된 보리로 맥아를 시범 생산하는 모습.

#국산 맥아 활용 업체를 가다
“맥아 시설비 감당 어려워…수입과의 가격 차도 문제”


2013년 문 연 고창 ‘파머스맥주’
연간 약 500톤 수제 맥주 생산
100% 국산 맥아 ‘파머스 드라이’
쌀 첨가로 부드러운 목 넘김 뽐내

2억 투입된 자체 맥아가공시설
연간 필요량 50톤의 절반만 충당
이마저도 전북도 지원으로 가능
“국산 재료 사용할 유인책 필요”


보리로 유명한 전북 고창. 이곳엔 국내산 맥주보리를 활용한 맥아로 수제 맥주를 제조하는 파머스맥주가 위치해 있다. 농촌진흥청 작물육종과에 따르면 국내 수제 맥주업체에서 국산 맥아를 사용하는 곳은 제주 제스피맥주와 고창 파머스맥주 두 곳이다. 하지만 최근 제스피맥주를 이곳 파머스맥주가 인수하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산 맥아로 수제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됐다.

2013년 문을 연 파머스맥주는 3300m²(1000평)의 부지에 맥아 가공시설과 저장시설 등을 구축하고 연간 약 500톤의 수제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맥주제조전문기업인 OB맥주에서 15년을 근무한 뒤 수제맥주산업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30년 넘게 맥주산업에 종사해 온 이용선 파머스맥주 대표는 자타공인 맥주 전문가다.

파머스맥주가 2016년 출시한 ‘파머스 드라이’는 100% 국산 맥아에 쌀을 첨가해 만든  프리미엄 쌀 맥주로 국내 수제 맥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다.

35도가 웃도는 무더운 여름, 양조장에 도착하자마자 이 대표는 맥주 한잔을 건넸다. 단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이 대표가 건넨 맥주는 ‘파머스 드라이’였다. 쌀 맥주 특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과 국산 맥아의 알싸한 향기가 더해졌다. 대형 마트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맥주와는 차별화된 색다른 맛이었다.

이 대표는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파머스 드라이’는 100% 국내산 맥아를 사용하면서도  국산 쌀 30%를 첨가해 만든 프리미엄 쌀 맥주다”며 “이 맥주는 현재 경기도, 평창, 광주, 부산, 창원 등 전국 각지 수제 맥주전문점에 ODM(제조자개발생산)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머스맥주가 국내 최초로 맥주 원료의 국산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일찌감치 자체 맥아 가공시설을 갖출 수 있어서다. 맥아 가공시설비에만 1억 후반에서 2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충분치 않다. 파머스맥주에서 맥주 생산에 필요한 맥아는 연간 50톤 이상이지만 자체적으로 맥아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는 25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수제 맥주가 국산 원료를 써야 한다는 점엔 공감하면서도 100% 국산 맥아를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소규모 수제 맥주 업체가 맥아 제조시설 등 추가 공정에 대한 시설비용을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도 전북도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며 “수입 맥아와 국산 맥아의 가격 차이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세금 감면 등 실질적인 혜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파머스 맥주가 국내산 보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이용선 대표는 "수제 맥주가 지역을 대표하는 진정한 국산 로컬 맥주로 인정받기 위해서다"며 "국산 맥아로 만든 차별화된 맥주를 생산하는게 파머스맥주의 목표다"며 웃어보였다.
 

▲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선 ‘국산 맥아 소비확대를 위한 맥주산업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맥주산업 간담회
“2배 더 비싼 국산 맥아, 품질·균일도 보완에 힘써야”


수제맥주 양조장 전국 130여개
연간 맥아 사용량 23만톤 달해 
국내산 생산량은 3000톤 불과

제도 손 봐 ‘지역특산주’ 인정
국산 보리 신뢰 회복 등 과제


7월 30일 전주혁신도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선 ‘국산 맥아 소비확대를 위한 맥주산업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선 △국산 맥주보리 생산과 유통 현황 △국산 맥아산업과 수제 맥주 산업 현황 들을 발표했다. 또한 국산 맥아 소비확대에 대한 수제맥주업계의 주문도 나왔다.

▲수제맥주산업의 현 상황=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산업 규모는 2018년 633억원으로 매년 약 41%씩 성장하고 있다. 국내 수제 맥주 양조장은 2014년 54개에서 2019년 130개를 넘는 등 5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더구나 최근 주세법이 종량세로 개정되면서 주류 원료의 고급화 길도 열리고 있다.

이처럼 국내 수제 맥주업체의 증가로 맥아 사용량은 연간 23만톤에 달하지만, 맥주에 사용되는 맥아 대부분을 값싼 수입 맥아에 의존하는 등 국내 보리 농가와의 연계는 낮은 실정이다. 한해 24만톤의 맥아가 수입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불과 1만3000톤의 맥주보리가 생산되고 있을뿐더러 이중에서도 맥아로 만들어지는 양은 3000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내 수제맥주업계가 맥주 원료를 국내산 농산물로 전환하는 것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수입 맥아를 국산 맥아로 대체하기 위해선 규제개선, 품질제고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지자체도 국산 맥아의 소비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진청과 군산시농업기술센터는 2017년부터 43억원의 맥아생산시설을 구축, 8월 12일부터 본격 가동해 연말부터 국산 맥아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간 300톤의 상업용 맥아를 생산할 준비를 완료했다는 발표에 업계의 기대도 크다. 하지만 수제맥주업체들은 맥아 제조시설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유인하는 제도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와 업계 제언=임성빈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은 “주세법이 종량세로 전환되면서 국내 수제 맥주가 고품질의 원료를 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국산 맥아 사용 시 주세 경감 등의 실질적 혜택 없이는 저렴한 수입 맥아를 대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맥주는 지역특산주에 포함되지 않아 국내산 보리를 사용하더라도 세금 감면이나 통신 판매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또한 지역특산주로 인정받기 위해선 양조장과 같은 시군구에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국내 주요 보리 재배지는 전남·경남 등에 몰려 있다.

김지혜 오매농업법인 대표는 “처음 여수에서 수제 맥주를 시작했을 때 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만들면 지역특산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전남에서 수제 맥주를 만드는 데 다른 지역의 보리를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국산 맥주보리가 수제 맥주 원료로 상용화되기 위해선 맥아의 품질과 균일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선애 블루웨일브루하우스 대표는 “국산 맥아가 수입 맥아보다 2배 더 비싸다고 해도 품질만 좋으면 사용할 의사가 있다. 하지만 수입 맥아와 국산 맥아의 차이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며 “국산 맥아에 대한 품질이나 균일도가 양조용으로 적합한지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다.

전효철 펠리세트 대표는 “맥주에 있어서 맥아는 가장 기본 원료인데 국산 맥아의 생산수율, 맥아 색도 등이 균일하지 않아 매번 맥주 맛이 변한다면 가격 경쟁으로 가기도 전에 이미 상용화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국산 보리의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다. 정철 서울벤처대 교수는 “과거 국산 맥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국산 맥아의 품질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한 노력이 나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선우 군산시농업기술센터 주무관은 “아직 국산 맥아로 맥주를 만들었을 때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제맥주가 지역특산주로 인정받기 위한 원료 조달 범위를 시군구 단위가 아닌 광역시로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제 맥주(소규모 주류제조)업체가 국산 원료의 원가 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주세 감면 등 제도개선도 하겠다”고 덧붙었다.

이에 대해 장영진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 사무관도 “맥주의 국산 원료 사용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세제 혜택 등 국가적 지원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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