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강용 친환경농산물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쌀·밀·콩 가격 폭등 등 ‘국제 식량전쟁’
우리가 못 느낀건 높은 쌀 자급률 덕
31% 불과 국산 식품원료 비중 높여야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산업이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무역협회의 통계를 보면 작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63.7%를 한국이 점유하고 있으며, 특히 D램은 72.3%를 점유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D램은 1970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 생산됐지만 80년 중반에 미국을 제치고 일본이 세계 1~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1983년 일본의 비웃음 속에서 뒤늦게 출발했던 한국의 반도체는 미국, 일본 등을 누르고 1992년부터 지금까지 세계1위를 지키고 있다. 더구나 일본 반도체의 자존심이던 Toshiba마저 작년 우리기업에 인수되었으니 자존심 상한 일본은 복수의 칼을 갈았을 것이며, 핵심소재의 무역규제라는 치졸한 방법으로 그 칼을 휘두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산업을 비교할 때 흔히 ‘변화와 축적’을 말한다. 오랫동안 축적되어 기초가 탄탄하지만 변화가 느린 일본, 기초기술은 부족하지만 변화가 빠른 우리 산업을 비교하는 말이다. 그간 우리 업체들은 부족한 기초기술을 일본에 의존해 왔다. 지나친 일본 의존도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개발보다 수입이 더 경제적이라는 생각과 무엇보다 WTO라는 국제 무역 질서를 믿고 있다가 허를 찔린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대일 무역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무역보복을 당하고 있다. 결국 국가 간의 질서는 강자의 필요에 의한 ‘힘의 질서’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산업의 쌀’ 반도체의 무역보복을 보면서 자꾸 우리 농업이 데자뷰 된다. 반도체가 경제성을 주된 이유로 기초산업에 대한 국산화 노력이 부족했듯이 농산물도 외국에서 수입해서 먹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경제학자나 관료들이 많다.

그러나 2006년~2008년 밀, 콩, 옥수수의 국제 곡물가격은 2배가 올랐으며 쌀은 3배가 폭등했다. 2009년에는 호주의 가뭄과 홍수로 쌀값이 폭등했고, 2012년 미국의 가뭄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급감하여 사상 최고로 폭등했고, 러시아는 곡물수출을 금지했다. 캘리포니아 가뭄과 태국의 정치 불안으로 2014년에는 국제 쌀값이 40%나 폭등하기도 했다.

이렇게 요동쳤던 식량전쟁을 우리 국민들이 느끼지도 못했던 이유는 주식인 쌀의 국내 자급률이 높아서였다.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외국에서 사먹고 자급률이 낮았다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자.

농업의 기초투자 역시 매우 취약하다. 올해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그런데 통계청, 농경연과 실제 생산량의 통계가 제각각 맞지 않아 원성을 사고 있다. 통계는 정책 결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행 자료 수집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아직 방식에 변함이 없다. 필자도 본지<2018년 12월 28일>를 통해 직불금과 전국 농지의 ‘생산지도‘를 통한 AI 정밀 통계를 제안한바 있다. 국가 R&D 예산 중 농업분야 비중은 1/20인 1조원에 불과하지만 많고 적음을 떠나 현장에 필요한 진짜 기초연구와 신기술 개발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NON-GMO와 유기농 콩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대체 육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주 원료인 친환경 콩류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HMR이나 도시락 등 간편식의 매출 증가로 국내산 원료 소비가 감소하고, 수입산의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의 기초소재를 일본에 의존했듯이 국내 식품원료 생산 기반 확립보다, 수입 원료로 당장의 소비패턴 변화에 빨리 맞추는 것이 농업 발전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내산 가공 원료 비중은 31%에 불과해 작은 과잉에도 과거보다 더 큰 폭으로 가격 곡선은 곤두박질 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최근 미국이 한국의 ‘개도국지위’를 강제로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일본의 아베처럼은 아니겠지만 ‘식량 전쟁’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언제든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옥수수, 콩, 밀 등 산업의 기본이 되는 기초 원료 농산물의 자급률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2018년 10월 2일자 본지에 구체적인 육성 방안을 게재)

단지 나타난 현상위에 뭔가를 올리는 ‘평면적 사고(思考)’의 정책으로는 우리 농업은 발전할 수 없다. 생산의 기초와 수요의 변화, 농촌의 현실, 미래의 예측까지 계산하여 다양한 공간을 채우는 ‘공간적 사고(思考)’의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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