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농산물 수출 차질 빚을까 걱정 앞서
일본산 불매운동 동참 않는다면
‘국산 농산물 애용’ 설득 또한 어려워


며칠 전 샤브샤브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서는 우동을 주면서 “삿포로에서 직접 제면한 우동입니다”며 자랑을 했다. 아내가 “다음부터는 우리밀로 만든 우동을 주세요”라며 웃으며 말했는데, 직원은 “품질이 달라서......”라며 말을 흐렸다.

강제징용 개인 배상 판결에 일본이 발끈하여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을 규제한지 보름이 되었다. 다양한 원인 분석과 대응책 마련, 수출 규제 확대 전망 등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농업계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여러 각도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우리 농식품 산업의 과제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겠다.

농산물 수입개방에 우호적인 인사들은 지난 수십년간 농산물 통상협상이 있을 때마다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내세워 왔다. 여기에는 정부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면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합리적인 정부라면 언제나 시장논리를 따를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갈등이나, 일본의 사법적 국제 이슈에 대한 경제 보복을 보노라면 힘있는 국가의 정부일수록 합리적이지 않구나라는 냉소어린 시선을 보내게 된다. 국제정치이론에 자유주의이론과 현실주의이론이 있다고 한다. 자유주의이론은 외교적 관계는 합리적인 분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반면, 현실주의이론은 실제 외교는 힘과 무력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을 가지고 있다.

미중갈등에 따른 미국의 안드로이드 사용금지 조치 권고나 일본의 수출규제는 통상정책도 궁극적으로 외교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타국의 약점을 공략하는 힘과 무력, 전략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이런 상황적 인식 속에서 우리나라의 농축수산업 정책을 포함한 농민 및 농업계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대응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규제가 워낙 메가톤급 이슈가 되다보니 크게 보도되었지, 실상 일본의 통상 보복은 이미 지난 5월 한국산 ‘넙치’와 조개류에 대해 식중독을 운운하며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는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규제에 대한 WTO 패소판결에 대한 일본의 ‘사실상 대응조치’라고 일본 언론도 해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무역 보복에 대한 농식품업계의 걱정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농업전문지는 “일본의 농산물 수입규제를 단행하면 우리 농업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종자와 농기계에 대해서는 수출 규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따지고 있다.

농업계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시키려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무작정 수출과 수입 모두에서 우리가 약자라고 지레 겁먹는 것은 오히려 일본의 기세를 올려 줄 수 있다. 2017년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수출한 농식품은 21억 달러이다. 이 가운데 다수의 농민들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신선농산물 수출은 2억5천만 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산 농기계는 2억6천만 달러를 수입했다. 일본에서 수입한 농식품은 2015년 기준 338억 엔, 약 3억3천만 달러에 이른다.

한 소비자는 일본 식품 불매운동을 하려하니 일본산 완제품 뿐만 아니라 유산군, 돈가스 등 국산 제품에 들어간 일본산 재료, 포장용기 등이 한국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며 청와대에 일본산 재료 표기를 요구하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농자재와 신선농산물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일본에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려하는 일본의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문제도 식료품은 이와 관련한 수출규제에서 해당사항이 없는 실정이다.

물론 일본이 비관세 장벽을 활용한 우리나라 농수산물 수출을 압박할 수는 있지만, 이는 농민단체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주장하든 그렇지 않든 일본의 의사결정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농업계는 이미 2000년대 중반에 국민과 함께 하는 농업, ‘국민농업’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온국민이 동참하는 일본산 불매운동에는 조금의 우려로 동참하지 않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국산농산물을 애용해 달라고 말한다면 과연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정부가 힘이 부족하면 수백만 농민들의 힘을 모아주어야 냉혹한 힘과 전략이 작동하는 현실외교에서 국가의 자긍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냉정하게 대응하되, 우리 농민들은 국산농산물 애용을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라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또한 국내 농관련 기자제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기술개발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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