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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몇 년 후에는최승옥

[한국농어민신문]

며칠째 인부들과 함께 복숭아 봉지 씌우는 일을 하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넓은 밭의 일을 언제 다 끝내나 싶더니 어느새 절반을 넘게 씌워가고 있다. 이랑에서 보면 나무마다 주렁주렁 노란 옷을 입은 모습이 벌써 복숭아가 노랗게 익은 듯하다. 시작이 반이라 했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수확이 코앞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인부를 더 불렀다. 농촌의 일손은 외국인이 아니면 감당할 수가 없다. 복숭아밭에서 일하는 사람 중 한국 사람은 우리 부부뿐이다. 그나마 이들이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날씨는 더워지고 곧 장마까지 들이치면 복숭아가 실하게 여물지 못하니 서둘러야 한다. 이랑마다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봉지를 씌우다 보니 여기저기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웃음소리가 잔칫집 뷔페식당에 온 듯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재작년 일이 떠오른다. 그때도 봉지를 씌우던 이맘때쯤이다. 아주머니 몇 분이 봉지를 씌우고 있었는데 일을 마칠 무렵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고함을 쳤다.

“난 도저히 마음이 맞지 않아 일을 더 못하겠어, 한 사람을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우리 일곱 명은 내일부터 안 올 거여!”

도대체 누구를 못 오게 하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소리를 지르는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튿날 소리를 지른 아주머니의 일행은 정말 오지 않았다. 일거리는 즐비한데 온다간다 말 한마디 전하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 부부는 어둑새벽부터 어두컴컴해질 무렵까지 봉지를 씌웠다. 목이 꺾어질 것 같았지만 시기를 놓치면 농사는 망치게 돼 있어 죽을 둥 살 둥 밭에서 살았다. 나중에 그 아주머니의 일행에 관해 들리는 이야기로는 집밥이 아닌 식당 밥을 시켜준 게 불만이라고 들었다.

그 후유증이 깊었던 걸까. 올해도 열매솎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몸도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는 상황에서 먹거리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더군다나 인건비도 오른 데다 내가 집에서 밥을 해서 나르는 것도 만만치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주인인 내가 나서면 일도 훨씬 줄어들고 식당 밥을 시켜 먹는 비용 또한 더 절약된다.

하지만 우리네 아주머니들은 점점 갈수록 일보다는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 아주머니들의 일손보다는 외국인노동자가 편하다. 해서 올해부터는 아예 외국인 인력만 쓰기로 했다. 우리 과수원뿐만이 아닌 듯하다. 다른 농가들도 마찬가지로 속 편하게 외국인 인력을 쓰기로 했다는 소문이 돈다.

일을 시켜보니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치와 행동이 재빠르고 높은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 일을 잘한다. 이래서 이웃 농가와 동네마다 한목소리로 외국인이 없으면 농사 못 짓는 말들을 하는가 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나 다른 농가들은 동네 사람의 품을 사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 한걱정을 했었다. 외국인 노동자는 과수원 일이든 어떤 일을 시켜도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을 잘 해낸다.

남편 친구도 올해는 복숭아 봉지 씌우는 일을 외국인과 해 보았다고 했다. 눈썰미가 어찌나 좋은지 한두 시간이 지나자 꼼꼼하게 봉지 씌우는 일을 잘하더라고 했다. 무엇보다 새참으로 먹을 간식을 본인들이 챙겨오니 주인으로서는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더란다. 일꾼에게 농장주가 음식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각각 사람마다 입맛에 맞춰주길 바랄 뿐만 아니라, 식당 음식은 정말 못 먹겠으니 된장 한 가지라도 직접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하지만 ‘밥을 할래? 일을 할래?’라고 하면 당연히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힘들게 일하는 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요즘 농촌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눈에 띈다. 나라도 다양하다. 주로 아시아인으로 중국, 베트남, 태국 그리고 더 멀리 유럽인 러시아인들도 있다. 대농을 하는 농업인은 아예 의식주를 마련해주고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머지않아 농사일뿐이 아니라 공장에서도 외국인이 다 차지하고 진즉 우리 한국인들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 같다. 우리나라야말로 박힌 돌이 빠지게 되는 건 아닌지, 힘든 노동은 피하려는 우리의 세태가 아쉬울 따름이다.

최승옥/문학미디어 등단,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음성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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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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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날 2019-07-17 07:46:14

    우리 국민이 힘든 일을 안 하려 하는 게 아니죠.처우 좋은 환경미화원은 한 명 뽑는데, 수십 명 몰리잖아요.


    이 글 쓰신 분도 외국인에게는 대충해줘도 되니 선호하시잖아요. 피고용인 입장에서는 처우가 안 좋다는 말이죠.

    우리나라 사람에게 일당 10만원짜리 일자리가, 외노자에게는 자국 임금대비 일당 100만원짜리 일자리죠.
    그러니 외노자는 물불 안 가리고 하는 거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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