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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여러분 이성을 회복···.”

[한국농어민신문]

이해영 한신대 교수

일 수출규제에 맞서 불매운동 확산
일부 언론 이성 회복 강조하지만
영락없는 내정간섭에 그럴 이유 없어


때는 1980년대 전두환 시절이었다.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다. 모든 저항세력은 끌려갔거나 쫓기던 시절,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은 전두환의 단말마적인 폭압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저항의 중심지였다. 민주화를 위한 학내시위는 끊이지 않았다. 시위가 일어나면 어김없이 대학본부 건물 옆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녹음된 방송이 흘러나왔다. “학생여러분 이성을 회복하시고……강의실로 돌아가 주십시오.”

이 방송멘트에 포함된 ‘이성’이라는 단어가 왜 귀에 걸렸는지 지금도 생생할 정도이다. 강의실은 ‘이성’이고, 시위의 광장은 ‘반이성’이거나 ‘감정’이거나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돌이켜 생각해도 만일 그 때 “학생여러분”이 진정 ‘이성’을 회복했더라면 우리 사회는 어찌되었을까 참으로 모골이 송연하다.

최근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다. 여러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얼핏 뭘 저러나 싶을 정도로 정부 전체가 나서서 대책에 부산을 떤다. 평소 농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늑장 대응만 봐왔던 농업계로선 좀 야속한 심사도 들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 하나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농업 전체보다 큰지라 가뜩이나 저성장에 발목을 잡힌 우리로선 보통 사나운 문제가 아니겠다. 그런데 아베정부측이 수출 규제의 이유로 들이댄 이유라는 것이 영 아니다. 남의 나라 사법부가 내린 최종 판단을 걸고넘어진 것은 내정간섭인지라 지금이 구한말인가 싶을 정도다.

이런 이유가 구차했던지 아베 측근을 시켜 일본의 수출품목이 북한으로 흘러들어 북핵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는 냄새를 풍겨 자신들의 조치를 국가안보상의 그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라는 ‘못 믿을 나라’가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는 헛구실을 만들고 싶은 거다.

아베의 도발에 대한 소비자단체를 비롯한 우리 시민들의 자발적 반응은 전국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대개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국면이면 의례히 등장하는 것이 민족감정 자제론이다. 예컨대 “개방경제체제에 불매운동은 감정적 대응일 뿐 과거를 잊지 않되 미래지향적 실사구시 추구”해야 한다(<중앙>사설). “한국은 ‘관제민족주의’ 성격을 띄고 일본은 언론의 과도한 ‘혐한 감정’ 부채질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정도다. …양쪽 다 이성을 잃은 채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착오적 행태임에 틀림없다”.

정부의 대응은 관제민족주의로, 시민사회의 자발적 대응은 ‘감정적인 것’으로 이성을 잃은 것이라는 말이다. 아베정부의 부당성보다 일종의 예견된 외교 참사인데 손 놓고 있었다는 식으로 현 정부를 비난하는 데 골몰하는 또 다른 보수언론의 논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협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사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일관계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마련될 틀이 역사 마찰 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미래지향적’이길 바란다.”(<조선>기사)

요컨대 불매운동 등 시민의 대응은 과거사 프레임에 사로잡힌 과거지향적이며 감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성이라는 우월적이고 특권적인 지위를 가진 자들이 보기에 이것은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시민여러분’이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과거사 프레임에서 탈피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란 본디 한·미·일 삼각관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넘어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을 억지할 군사동맹까지를 내다보는 것이었다. 역사문제가 언제나 이 삼각의 불안요소이기 때문에 미래지향에 있어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한일 위안부합의는 이를 넘어가는데 중요한 디딤돌 중 하나였는데 문재인정부가 그만 이를 부정한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 헌법9조 개헌을 위해 북핵은 너무나 좋은 명분이었는데 북미 화해흐름이 이를 망가뜨려 버렸다. 아베로선 외부에 새로운 적을 만들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아베의-경제제재가 아닌-경제보복은 이런 흐름 속에 위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여러분이 이성을 회복’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참으로 이성적인 것은 “대세도 모르고 제 처지도 모르는 정치난쟁이” 아베가 “제 몸값이나 알고 푼(분)수에 맞게 처신”(<조선중앙통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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