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정문기 농산전문기자]

사실상 국내 식물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범 국가적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 농촌현장에서는 외래 및 돌발병해충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과수 구제역’이라 불리는 과수 화상병의 피해규모는 이미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고,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았던 열대거세미나방은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여기에 현재까지 정확한 발병원인과 치료방법이 규명되지 않은 과수 세균병인 가지검은마름병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했다. 또 집단으로 이동하며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갉아먹는 멸강나방 발생도 예사롭지 않다.

당장 과수 화상병 피해가 심각하다. 6월 25일 기준 전국 5개 시·군 106농가, 69.1ha에 달한다. 가장 피해가 컸던 지난해 수준(67농가, 48.2ha)을 넘어선지 오래다. 사상최대다. 아직도 의심신고가 접수되고 있어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보니 올해 확보해놨던 95억원의 손실보상금 예산도 바닥났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경상연구비 전용이 불가피하다. 더 큰 문제는 과수 화상병이 2015년부터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고, 방제약도 없다는 점이다. 국내 과수 화상병 권위자인 오창식 경희대 교수가 “확진 과수를 매몰한 뒤 약제방제를 하는 현재의 방식이 최선이지만 치료목적보다 예방목적이고, 방제효과도 60~80%에 불과하며 사과의 주 품종인 후지가 화상병 저항성에 약해 확산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듯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 과수농가의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옥수수에 큰 피해를 주는 열대거세미나방은 지난달 13일 제주 동부 구좌읍과 조천읍에서 첫 발생한 이후 전남 무안, 전북 고창, 경남 밀양에서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바람을 타고 하룻밤에 100km이상 이동하는 특성을 고려하면 옥수수 주산지인 경기, 강원, 충북 등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번식을 통해 개체수가 증가하는 이달부터 9월까지 실질적인 피해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유관기관이 국내 유입 가능성을 내다보고 국경검역 강화, 방제농약 직권등록 등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사실상 국내 유입 차단에 실패한 것이다. 국내 정착 가능성은 낮지만 매년 날아와 반복적인 피해를 줄 것이 뻔하다. 이젠 상시적 해충이 되는 셈이다.

이밖에 강원도 일부지역에는 지난달부터 과수 화상병과 비슷한 과수 세균병인 가지검은마름병이 발생, 사과나무를 매몰 처리했는가 하면 ‘강토를 멸망시킨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농업인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멸강나방은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전국 농촌 곳곳에 외래 및 돌발병해충이 창궐, 농산물 생산 감소와 병해충 방제비용 증가 등의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지만 농업인은 물론 도시민 모두 구제역이나 AI 등 가축질병만큼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때가 되면 으레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나 과정으로 치부한다. 그만큼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하긴 농업의 시작이 곧 병해충과의 싸움이고, 그만큼 긴 세월이 흘렀기에 그럴 만도 하다.

이렇다보니 중앙정부 마저 병해충과 관련한 식물방역에 대한 중요성을 망각해 버렸다. 과거에는 농식품부내에 식물방역과가 별도로 있었지만 지금은 식량산업과에 담당자만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사실상 컨트롤 타워 역할을 못한다. 그래서 농진청, 검역본부 등 유관기관과의 원활한 협업도 어렵고, 충분한 예산 확보도 안된다. 피해 상황도 규모 파악에만 그칠 뿐 이에 따른 경제·사회적 파장 분석에는 손도 못댄다.

더욱이 현재 병해충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농진청은 시·군 농업기술센터의 지방직화에 따른 한계에 봉착돼 있다. 지자체와의 공조와 협력이 예년만 못한 것이다. 식물 방역의 최선책인 ‘사전 예측을 통한 조기 예방’은 제쳐 놓더라도 병해충 발생이후의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이 되풀이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상기후와 농업환경의 변화, 재배양식 다양화로 돌발 및 주요 병해충 발생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국가 간 교역 확대 및 해외여행 증가에 따른 외래 병해충 유입은 날로 증가할 것이다. 이번 열대거세미나방 같이 그동안 이름조차 생소했던 병해충의 위협이 점차 높아지면서 그 피해가 고소란히 농업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같은 각종 병해충의 피해를 동물 질병과 연계해 ‘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때가 됐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바이오안보가 바로 그것이다. 생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성 확보를 의미하는 바이오안보는 화학 및 생물무기와 깊은 연관이 있지만 농업부문에서는 식물과 가축방역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바이오안보는 사람-동물-환경 등 생태계와 연계한 원 헬스(One Health)개념을 추구하고 있어 현재의 동·식물방역 등 농업의 다양한 활동이 이에 포함된다. 중앙정부가 나서서 농업부문 바이오안보에 대한 개념 및 범위 정립 등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이를 통해 보다 더 공세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전략 수립, 통합적인 관리체계 구축 및 국가 간 공조를 통한 사전 예측과 예찰 강화, 그리고 정부·유관기관·대학과 연계한 바이오안보 거버넌스 구축 및 식물 방역체계 시스템의 고도화 등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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