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ㆍ독자투고
[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 모르는‘반농반X의 삶’

[한국농어민신문]

이아나 청년농부·전남 구례

농촌에 와 살아보니, 반농반X는 삶의 스타일이나 가치로 선택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지역과 연고가 없고, 기술도 없지만 농촌으로 온 청년들이 농촌에 기반이 생길 때까지 필연적이고 치열하게 거쳐야 하는 시간.


“어떻게 갑자기 시골로 갈 생각을 했어? 그래도 좋겠다. 여유로운 시골 생활하면~”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농촌으로 이사 했다는 내 근황을 듣고 한 말이다. 친구들은 내 시골 살이 소식에 ‘여유로운’, ‘자유로운’이라는 표현으로 반응했다. 자주 이 표현을 들어왔는데, 오늘은 ‘시골에 와서 나는 여유롭게 살고 있나?’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 친구의 메시지에도 밭일을 하고 들어와 정리를 하고서, 5시간 만에 답변을 하는 상황이었다.

농촌에 와 살아 보니 농촌 생활이 도시보다 여유롭지만은 않다. 오히려 기다려 주지 않고, 잡아 둘 수 없는 생명체를 다루는 일이라 농사일은 촉각을 다투는 경우가 많다. 논마다 트랙터와 이앙기가 바쁘게 움직이고, 텅 비었던 밭마다 작물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요즘은 농번기다.

대규모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 비하면, 자급자족용 텃밭과 판매를 목표로 400평 고추 농사를 짓는 소농인 내가 농번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하기 민망하다. 그렇지만 나도 바쁘다. 잘 모르는 농사일을 미리 공부해야 하고, 농기계가 없어 손으로 모든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더 많이 든다. 무엇보다 농작물을 팔아 생길 소득이 턱 없이 적으니, 다른 아르바이트도 간간이 해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귀농귀촌한 주위 분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 같이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대규모로 농사를 짓진 않지만, 모두 바쁘다. 농사를 조금씩 늘려가며, 각자 다른 일들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 회사 법인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거나, 틈틈이 들어오는 날일을 나가거나, 본래 했던 업무 관련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농사 외의 일을 한다. 나를 포함해 농사일만 하지 않고 다른 일도 병행 중인 이들을 보면서, ‘반농반X의 삶’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반농반X란, 농사를 통해 자급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우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X)을 동시에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최근 젊은 층의 농촌 이주 현상을 이 반농반X의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증가로 분석하기도 한다. 나도 농촌으로 이주를 결정할 무렵, 일본 생태운동가 시오미 나오키가 제시했다는 이 개념을 알게 됐고, 대안적 삶에 대한 희망을 품었었다. 여기에서 희망은 월급을 받던 안전한 직장을 벗어나 농사라는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영역으로 이동하지만, 여러 가지 X들을 모은다면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경제적 가능성을 포함한 것이었다.

실제로 농촌에 와 살아보니, 반농반X는 삶의 스타일이나 가치로 선택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지역에 아무 연고가 없고, 농업에 대한 사전 훈련이 없는 이들에게 반농반X는 필수 과정이었다. 내 주변에는 반농반X의 개념을 전혀 모른 채 이주했지만, 자연스레 반농반X의 삶을 살고 있는 귀농귀촌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에는 중장년층들도 있다.

시오미 나오키가 제안한 반농반X에서 ‘농’이란 본래, 전업농의 농사라기보다 자급자족의 도구이자 환경 친화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농사를 뜻한다. 하지만 전업농이 되고자 농촌에 온 청년들 역시 생활 수단으로서 반농반X를 해야만 한다.

농사만으로 먹고 살 만큼의 소득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영농 규모가 커야 가능하다. 영농 규모가 커지려면, 땅과 농기계가 있어야 하는데 밑천 없는 청년이 농사지을 땅과 농기계를 갖추기란 쉽지 않다.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빚이 늘어나는 선택들을 계속 할 수도 없다. 농사도 지식과 정보,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는 분야라 시작하자마자 수입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전업농이 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 수입이 될 다른 X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농반X 개념을 두고 청년 개인의 낭만적 선택이라거나, 기술집약적이고 전문화된 농업을 아마추어적으로 여기게 할까 우려된다는 의견들도 있다. 반농반X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농사를 소꿉장난하듯 짓는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지역사회 시선도 따갑다. 아마 농촌으로 이주한 청년들이 반농반X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들의 자발적이고 여유로운 선택으로 여기는 설명이 일반화 되는 탓인 듯하다. 하지만 반농반X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설명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과 연고가 없고, 기술도 없지만 농촌으로 온 청년들이 농촌에 기반이 생길 때까지 필연적이고 치열하게 거쳐야 하는 시간. 이 시간이 반농반X라는 삶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는 사실이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목표하는 최종적인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반농반X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농촌이든 어디든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반가운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반농반X 하는 사람들이 농촌에서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반농반X 생활자들이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농촌에서 실현할 수 있길 응원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