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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생산···농촌의 ‘제2의 다리’가 되다대산농촌재단 유럽 농업연수 동행취재 <2>유럽 농촌마을공동체 지속가능성의 비밀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 5월이면 독일의 농지는 온통 초록과 노랑으로 물든다. 유채는 바이오디젤과 바이오가스의 원료로 쓰인다.

5월의 유럽에서는 초록빛 가득한 들판 사이로 노란 물감을 부은 듯 싱그럽게 넘실대는 유채꽃밭을 만날 수 있다. 지평선 너머 여유롭게 돌아가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나, 태양광 패널에 반짝이는 주택 지붕들, 가축분뇨를 활용한 바이오가스 시설도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만큼 유럽에서 풍력·태양광·바이오작물·가축분뇨 등의 재생에너지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 했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경우 지난해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36.3%로 석탄(35.1%)을 벌써 추월했다. 이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지역내 다양한 에너지 자원을 활용, 에너지 자급을 추진해 온 여러 농촌 마을들의 노력에 힘 입은 바 크다. 소규모 마을 단위의 재생에너지는 농가에 새로운 소득을 만들어내고, 자본의 외부 유출을 막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면서 농촌을 지탱하는 제2의 다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잘레 홀츠란트 쉴러븐 마을

마을 공동화·고령화 해결 위해
EU ‘LEADER 프로그램’ 도전
‘아이들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
주민들 적극적 참여와 연대로
떠나지 않는 마을 만들기 성공

가축분뇨·바이오작물 등 활용
‘에너지 자급마을’ 실현 주목


옛 동독지역인 튀링겐주의 예나와 게라 사이에 위치한 잘레-홀즈란트(Saale-Holzland)는 총면적 885.5km²에 9만22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집단농장이 해체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서독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주민들이 늘자 마을은 공동화됐고, 고령화가 심각해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2007년 주민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EU가 추진하는 ‘LEADER(Liasons Entre Actions de Dvelopment de l'Economie Rurale)’ 프로그램에 도전, 마을 살리기에 나선다.

◆지역행동그룹을 조직하다=먼저 70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지역행동그룹(Regionale Aktionsgruppe, RAG)’을 조직했다. 여기엔 자치단체장은 물론 농민·환경단체, 무역협회, 교회, 은행, 건설사, 관광·서비스업체, 청년회원 등 다양한 직업군의 개인이나 단체가 함께했다. RAG는 지역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프로세스를 작성해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유도, 사업을 현실화해내는 지역개발의 핵심 조직이다. 분야별 위원회가 구성되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올라오면 지역행동그룹 활동가들이 다각도로 검토·조정하고, 이사회는 전문자문위원회와 청소년자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안건을 처리한다. 최종 의사 결정은 마을 총회에서 이뤄진다.

마을 소개에 나선 RAG의 이나 존(Ina John) 씨는 “지역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소통과 협력을 만들어 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우리 지역은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청소년위원회를 두고 이들에게 연간 1만6000 유로를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개발 4가지 목표=지역개발 전략을 수립하는 데는 네 가지 목표가 부여됐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삶의 질을 높일 것 △지역의 가치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것 △지역 관광 및 레크레이션을 조직할 것 △기후 변화에 대비한 에너지 자급 방안을 모색할 것.

이러한 목표에 따라 구체적인 사업들이 만들어졌다. 먼저 집단농장에 방치돼 있던 건물들을 마을회관으로 리모델링,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주민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 시설을 개선하고, 어린이집과 놀이터를 만들었다. 현재 초등학교엔 85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고, 유치원엔 35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서는 하루에 두 번 마을버스를 운행한다. 산책로를 단장하고, 꿀벌 어드벤처 체험로를 조성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예술가들을 위한 전기 톱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지역의 농산물과 다양한 특산품을 판매하는 직판장과, 연중무휴 우유자판기도 설치했다.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에너지 자급마을 만들기=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추진한 또 하나의 사업은 에너지 자급마을 만들기. 사업 구상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2007년 마을총회를 열고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일을 진행할 운영단을 구성한다. 2009년 공식적으로 활동할 협동조합이 결성됐고, 2011년부터 설비 구축을 시작, 우드칩 난방시스템과 열병합발전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가동되면서 현재 전체 군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89%가 재생에너지로 공급되고 있다. 가축분뇨와 옥수수 등을 발효시켜 생긴 가스로 전기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5.8km 파이프로 운반해 마을 난방 해결은 물론 농산물 건조에도 활용하고 있는 것.

에너지 자급만큼 중요한 것은 돈의 흐름이 지역 안에 머물러 지역 경제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스 페터 페어쉬케(Haus-Peter Perschke) 면장은 “일단 에너지를 다른 데서 사오지 않아도 되니 비용이 절감되고, 실피나 옥수수 등의 에너지 작물과 축분, 나무 팰릿 등을 사들이는데 70만 유로를 집행, 지역 농가에도 큰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 폐어쉬케 면장은 “어린이가 있는 곳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글귀를 남긴 이 지역 출신 시인의 말을 전하며, “지역에 아이들이 있어야 우리 마을에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40년 걸친 원전 반대운동 결과
적극적·자발적 주민 참여와
정부 일관된 정책추진도 한몫


독일의 에너지 전환 추진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1986년 체르노빌 사태로 방사능의 위협을 인지한 시민들의 40여년에 걸친 끊임없는 원전 반대 운동과 화석연료의 한계를 체감하고 에너지 예속을 걱정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거나, 기업이 주도했다면 아마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 현지 한인 기업인으로 이번 연수에서 현지 안내와 통역을 맡아 준 박동수 티피엘코리아 지사장은 “에너지 자급마을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전체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라고 전제한 뒤, “정부는 적어도 30년 뒤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시장에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지역 주민들은 에너지 사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역 여건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 이익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이권을 노린 개발업자들이 농촌으로 몰려와 농지와 산림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며 곳곳에서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또 다른 한편에선 탈원전 정책을 막으려고 ‘전기료 폭탄’ 등 정보 왜곡에 혈안인 우리사회가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잠깐 / LEADER 프로그램이란

1991년 시작된 LEADER 프로그램은 EU 농촌개발정책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농촌개발 프로그램이다. 인구 과소화와 공공 서비스의 저하, 지역경제 쇠퇴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소규모 비즈니스부터 지역산품 마케팅, 직업 훈련, 다양한 주체간 연대 및 협력사업 등을 지원한다. 7년이 주기로, 현재 자금조달 기간은 2014-2020.

LEADER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지역주민과 이해관계 당사자들로 구성되는 ‘지역행동그룹(RAG)’을 결성,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점이다.

RAG의 전문 활동가들은 공공기관 및 민간단체간 협력을 유도하고, 상호 이해와 이익의 균형을 조정, 네트워크가 잘 이뤄지도록 하며, 주요 사업의 방향을 제안하거나 조언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2017년을 기준으로 EU 28개 회원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RAG는 모두 2451개다.
 

 

▲ 바이에른 전통의상을 입고 나타난 햅 에드문트(Happ Edmund) 박물관장은 흥겨운 아코디언 연주로 연수단을 반겼다.


|발트 지방자치단체

‘우리가 전통을 지키면 전통이 우리를 지켜준다’

독일 바이에른주 알고이 지역의 작은 마을, 발트(Wald)는 알프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마을이다. 2017년 ‘우리 마을에는 미래가 있다’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곳이다. 비결을 물었다. 그런데 “상을 받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요한나 푸어쉬케(Johanna Purschke) 면장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오랜 전통과 경관을 잘 보존하면서 무리 없이 필요한 부분들을 개선해 나가며 사는 모습이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수는 1200명에 불과하지만 의용소방대를 비롯 사격, 수영, 낚시, 연극 등 취미에 따라 18개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단체는 체육단체. 회원이 700명이나 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마을 주민센터는 이 체육단체가 지원을 받아 지었다. 운영은 마을에서 만든 유한회사가 맡고 있는데, 비용 절감을 위해 웬만한 일은 마을 사람들이 자원봉사로 해결한다.

▲ 발트 지자체의 요한나 푸어쉬케(Johanna Purschke) 면장.
▲ 1618년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 온 말의 말발굽.
▲ 2012년 번개를 맞아 불에 탄 교회 종탑. '2012년 1월 5일 오후 4시 30분에 낙뢰를 맞아 9개 조각으로 떨어졌다'는 글귀가 붙어있다.

푸어쉬케 면장은 “센터를 이용하면 무조건 청소까지 다 해놓고 나가는 게 원칙”이라며 “마을 사람들이 협동해서 일한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마을 박물관이었는데, 지난 2006년 사라질 뻔했던 농기구 창고를 뜯어와 지금 이 자리에 옮겨놨다고 한다. 1만5000년 전 맘모스 화석부터 1618년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 온 말의 말발굽을 비롯 마을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각종 농기구와 연대를 가늠할 수 없는 생활유산들이 빼곡했다. 가장 최근의 것은 2012년 번개를 맞아 불에 탄 교회 종탑. 거기엔 ‘2012년 1월 5일 오후 4시 30분에 낙뢰를 맞아 9개 조각으로 떨어졌다’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바이에른 전통의상을 입고 나타나 흥겨운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준 햅 에드문트(Happ Edmund) 박물관장을 보며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들이 수백년 전 그대로의 자연 경관과 전통 유산을 지켜가고 있는 건 비단 관광사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곳에 살았고, 지금 살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친밀한 연대감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

낡고 오래된 것들을 버려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전해야 하는 ‘전통유산’으로 여기는 인식과 문화. 그것이 유럽 농촌마을 공동체가 갖고 있는 지속가능성의 비밀 아닐까.

환경과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의 농촌개발 방식은, 개발로 망가진 농촌을 다시 토목과 건설, 조경과 공장 유치로 활성화하겠다는 그간의 농촌개발정책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를 타산지석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전통을 지키면 전통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황석중 박사(연수단 지도교수)의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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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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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동수 2019-06-13 14:31:32

    글 잘읽었습니다. 산업에서 만이 아닌 농업에서도 산진국의 모델을 보이는 독일을 10일의 연수로 참 깊이있게 보시고 파악하심이 대단합니다. 앞으로 흥미에 관심을 불러낼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멀리에서 한국 농촌의 발전을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개발의 발전이 아닌 차세대와 자연에 최상의 발전을... .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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