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농촌재단 유럽 농업연수 동행취재 <1>베를린장벽 붕괴 30년, 독일농업은 지금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 독일 농촌 어딜가나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는 자연경관은 오랜 세월 땅을 지켜 온 농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산농촌재단 유럽 농업연수 동행취재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를 가다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을 주제로 지난 5월 9일부터 19일까지 대산농촌재단이 진행한 유럽농업연수 프로그램에 동행했다. 10일간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3개국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며 각국의 농업관련 기관과 여러 농촌 마을을 찾았다.

지역을 이동할 때마다 만나는 농촌의 자연 경관은 한 폭의 ‘그림’ 이었다. 수백년 이어온 삶의 흔적들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을 풍경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EU 농업의 현실과 그곳 소농들의 삶은, 그동안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이야기들과는 분명한 온도 차가 있었다. 더 깊은 질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연수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해 우리가 EU의 농업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연수 과정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
 

<1>베를린장벽 붕괴 30년, 독일농업은 지금

5월 9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바로 버스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려 옛 동독지역인 튀링겐주의 바이마르로 이동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밀밭과 군데군데 노오란 유채꽃밭, 곳곳에 우뚝 솟은 풍력발전기가 이곳이 독일임을 알렸다.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탈원전’을 선언하고, 대안 에너지로 풍력·태양광·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30년의 세월을 건너 온 지금, 독일의 농업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을까. EU의 공동농업정책은 이곳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으며 독일농업이 안고 있는 숙제는 무엇일까.

직불금, 농가소득 버팀목이지만
경지면적 따라 지급되면서
대농-소농간 소득격차 심화
쿼터제 폐지 후 우유값 폭락 ‘직격탄’
소규모 가족농 농사 포기 늘어

동독 농업 대형화·집단화 추세
구서독과 영농규모 격차 뚜렷

 

◆독일 농업과 EU의 공동농업정책=독일은 16개 주 정부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다. 전체 인구 8243만명에 국토면적은 357,022㎢. 한반도의 1.6배 정도 크기지만, 85%가 평지와 구릉지여서 산지가 70%인 우리나라보다 이용면적이 훨씬 넓다. 남부는 알프스 산맥의 영향을 받아 산악지대가 많고, 중부는 구릉지대, 북부는 대부분 평야지대로 이뤄져 있다.

농가 수는 28만5000호. 호당 평균 경지면적은 58.6ha에 달한다. 호당 면적이 1.5ha인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에서 농림어업 생산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0.8%에 불과하지만, 밀·보리·감자 등 주요 식량작물과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유제품의 자급률이 100%를 웃도는 농업강국이다. EU의 공동농업정책(CAP)을 근간으로 한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강력한 농업지원정책이 뒷받침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수단의 지도교수로 함께 한 황석중 박사(전 농촌진흥청 연구관)는 “독일 사회에는 농민이 떠나지 않고 농촌을 지켜야 안정적 식량 생산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경관 보전, 오랜 전통 문화 계승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며 “직접지불금은 그래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게 하려고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직접지불금은 독일농가 소득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첫 방문지였던 작센주 환경농림부에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표 참조>

우선 개정된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2014-2020)에 따라 1ha당 약 176 유로(약 23만3000원)의 기본직불금이 지불된다. 이는 무엇을 얼마나 생산했는지와는 상관없이 면적당 지급되는 직불금이다. 여기에 영구초지 유지, 작물 다양화, 생태보호지역 설정 등의 환경보전의무(Greening)를 이행할 경우 약 85 유로(약 11만2000원)의 환경보전직불금이 가산된다. 또 중소농에 대한 지원 확대를 위해 최초 30ha 이내의 농지에 대해서는 ha당 50 유로(6만6000원), 다음 16ha에 대해서는 30유로의 직불금이 더 붙는다.

결과적으로 30ha의 농지를 가진 일반 농가라면 ha당 평균 약 311 유로(약 41만원)씩, 연간 약 9330 유로(약 1240만원)의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40세 이하 신규 농가라면 여기에 ha당 44 유로(약 5만8000원)의 직불금이 또 추가된다.

◆소득양극화 심화, 밀려나는 소농들=이렇듯 EU가 직불금을 투입하고, 분배구조 개혁을 위해 소농 지원을 늘리고 있다지만, 대농과 소농간 심각한 불평등 해소는 요원한 형편이다. 농가간 소득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소농들은 점점 땅에서 밀려나고 있다. 통일 직후인 지난 1991년 65만4000호였던 농가 수가 28만5000호로 줄어들었으니 독일에서도 지난 30년간 절반 이상의 농가가 사라진 셈이다.

바이에른주에서 만난 요셉 휘머(Dr. josef Hiemer·켐프텐시 전 농업국장) 박사는 “바이에른 주의 경우 해마다 3% 정도의 농가가 농사를 포기한다”며 “농업을 포기하는 경작자가 생기면 인근의 농가가 이를 매입하거나 임차하면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토지소유가 집중된 가운데 보조금이 경지면적당 지급된다는 점이다. 옛 동독과 서독의 영농규모를 비교해보면 그 편차가 뚜렷하다. 이번에 방문한 작센주의 평균 경지면적은 157ha인 반면 독일 내 최대 농업주로서 경지면적이 가장 넓은 바이에른주는 평균 35ha으로, 그 격차가 4배가 넘는다.

휘머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농지규모가 4000ha에 육박하는 옛 동독의 집단농장들이 통일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자기들끼리 상장해 기업식으로 가거나 서독의 부자들, 농업 전문가인 네덜란드 사람들이 들어와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직불금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고 농업정책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경작면적에 따라 지급되는 EU의 직접지불금이 대규모 기업농에 집중되면서, 정작 소규모 가족농에게 돌아가는 몫이 너무 작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 티노 스트라스부어거 고등관

◆동독 농업의 변화=실제 동독의 농업은 소농·가족농 중심의 구서독과 달리 집단화·규모화되고 있었다.

작센주 환경농림부의 티노 스트라스부어거(Tino Straßburger) 농업정책·법률 담당 고등관의 설명에 따르면 통일 직전(1989/1990년) 작센주에는 733개의 농업생산협동조합(LPG)과 82개 원예집단농장(GPG)이 있었다. 여기에 15만7600명이 고용돼 있었다고 한다.

통일 이후 이들 집단농장에 대한 사유화가 추진됐지만 이들은 협동조합이나 유한책임회사 등으로 다시 집단화하는데, 작센주에 이렇게 만들어진 영농법인이 622개가 있다. 이곳의 평균 경지면적은 846ha에 달한다. 

그 외 개별농가의 공동 경작형태인 합명회사가 440개(232ha), 개인전업농이 1720개(117ha), 개인부업농이 2873개(20ha)로 나타났다. 반면 통일 후 동독 농민들의 숫자는 크게 감소, 현재 작센주의 농림업 종사자는 2만7700명으로 줄었다.

통일 전후로 재배작물도 현저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1990년과 비교 감자(-79%), 사료작물(-62%), 영구초지(-19%)는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유채 등 바이오에너지 작물 재배는 무려 1083%나 증가했다. 

이러다보니 품목별 자급률은 밀·보리 같은 곡물은 120%, 유채와 호밀은 110%를 상회하지만 과일은 고작 30%, 채소는 15%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소, 돼지, 양 등 축산 사육두수도 완전히 반토막이 났다. 쇠고기 자급률이 65%, 돼지고기는 50%에도 못 미친다. 반면 우유와 계란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다.

◆가격안정장치 없이 지속가능할까=현재 독일의 농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우유가격 폭락과 연관이 깊다. EU는 2015년 3월, 수급조절을 위해 1984년부터 실시해 오던 우유 쿼터제를 폐지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의 수요 증가로 유제품 가격이 상승하자 생산량을 늘려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EU산 유제품의 최대 수출처였던 러시아의 금수조치가 단행되고, 유제품 공급과잉이 겹치면서 우유 가격이 폭락한다. 소규모 낙농가들은 몇 년째 직격탄을 맞고 있다. 때문에 최근 EU에서는 급격한 가격변동으로 인한 농가 소득의 불안정을 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경영안정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직불금이 있어서 그동안 버텨왔지만, 이제 직불금 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부터 효율과 경쟁 중심의 생산주의 농정에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특히 그 방법으로 ‘직불금’ 중심의 EU 농정을 본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터다. 최근 이러한 공감대는 ‘공익형 직불제’ 도입 논의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논의만 무성할 뿐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이 너무 많다.

직불금이 있지만 가격불안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고, 소농과 가족농의 자리를 기업농이 채워가고 있는 독일 농업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직불금 논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알고이지역 유기 낙농가
“돈은 많이 못벌지만 그래도 농사가 좋아”

▲ 알고이 고산지대에서 유기농을 고집하며 30년째 낙농업을 하고 있는 라이쉬 부부.

독일 남부의 알고이(Allgäu) 지역은 해발 700~1200m의 고산지대다. 안드레아스 라이쉬(Andreas Reisch)와 그의 아내 마리아 라이쉬(Maria Reisch)는 이곳에서 30년째 낙농업을 하고 있는 유기농민이다. 33ha 규모의 경사진 초지에서 젖소 16마리를 키워 유기농 우유와 치즈를 만들고 농가 민박을 운영하면서 아들 셋 딸 둘, 다섯 아이를 키워냈다.

30년 전부터 부부가 유기농을 고집한 건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다른 사람들처럼 땅이 넓지 않아 사육규모를 키울 수 없으니 ‘유기농’으로 우유 품질을 차별화해 가격을 높게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다행히 라이쉬네 우유는 1리터당 53센트를 받는다. 일반 우유값이 30센트 정도에 불과하니 꽤 높은 가격이다.

하지만 우유만 팔아서는 먹고 살기 어렵다. 농가 민박은 그래서 시작했다. 마리아는 “민박 없이 농장만 했으면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남편과 둘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6시 반 우유 트럭이 올 때까지 일한다”고 말했다.

일곱 식구 생활비를 묻자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정상적으로 물건을 구입해서 생활해 본 적이 없으니 계산이 불가능하다”며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먹거리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와 과일들로 자급하고, 집과 축사의 난방은 인근 숲에서 얻은 우드칩과 태양열로 기름 없이 자체 해결한다. 젖소를 더 늘리지 않는 것도 사료 구매 없이 초지에서 풀을 잘라다 먹일 수 있는 규모가 딱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EU는 소농들이 떠나지 않는 농촌을 위해 직불금을 준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처음에 “노코멘트”하겠다던 안드레아스는 말을 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를 도와줄 것 같으면 대농이 우리 앞에 서 있으면 안된다. 우리같은 소농의 직불금 비중은 30%도 안되지만 200ha 이상 대농들은 60%가 넘는다. 땅이 넓으면 넓을수록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켐프텐의 30두 미만 젖소 농가들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거의 다 흡수를 해가고 있다. 소농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라이쉬 부부는 내년쯤 농사를 접을 생각이다. 내년에 65세가 되어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자식들 중에 농사를 잇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정도 농사 규모로는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 본인들이 하겠다고 하면 모르지만 부모 입장에서 권하기가 어렵다. 일이 너무 많아 여유가 없고. 배우자들도 싫어할거고." 

본인들은 연금 자체가 많진 않지만 아껴서 살면 된다고 말했다. 안드레아스는 “여기는 땅이 한정되어 있고 옆에 있는 농가들이 확장의 기회를 계속 보고 있다. 농가 수가 줄긴 하겠지만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들은 피해 없이 지켜질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EU나 독일 정부가 말하는 지속가능성일까.

안드레아스는 “자연 안에서 자연에 손상을 주지 않고 자연의 순환에 따라 사는 게 좋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최대한 아껴서 살면 된다”며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농사를 지을 것이라고 했다.

언제 사 입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구멍 숭숭 뚫린 작업복과 고된 노동으로 상처투성이였던 그들의 손이 오래도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바이에른주 휘머 박사
“오해·편견…미디어의 농업 때리기 문제”

▲ 바이에른주 휘머 박사

“바이에른 주는 독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다. 농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없으면 지금의 자연 경관은 없다.”

바이에른주가 추진하고 있는 60여종류의 문화경관직불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한 휘머 박사는 농업정책을 수립할 때 네 가지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변화. 둘째. 토양 및 물 보호. 셋째. 생물 다양성의 보존과 증진. 넷째. 전형적인 지역문화경관 보존과 관리.

그러나 그는 10년 안에 유기농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독일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생산과 수요가 맞지 않으면 결국 농가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엔 유기농은 가격이 높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입이 늘면서 유기농이어도 과잉 생산될 경우 제값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이중성도 그가 우려하는 지점 중 하나다. “일반인들한테 당신 유기농 음식 살래? 물으면 다들 그렇다고 하지만 막상 시장에선 사지 않는다. 왜? 비싸니까. 아직까지 독일 소비자들도 먹는 것은 싸야한다고 생각한다.”

휘머 박사는 독일 농업의 가장 큰 위협으로 ‘미디어’를 꼽았다.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근거 없이 농업에 대해 좋지 않은 보도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료를 많이 준다, 약을 많이 친다, 곤충을 죽인다, 가축을 학대한다는 등의 아주 다양한 이유로 농업을 계속 때린다”며 “녹색당을 비롯 자연보호단체, 동물보호단체들의 힘이 커지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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