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미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과장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있다고 해서
저절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냐
소통·갈등관리에 대한 ‘학습’ 필요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경영협약을 진행하고 있다. 4월에 대구에서 진행한 워크숍에는 승계자와 함께 온 가족이 약 40%나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승계자가 있는 농가는 약 10%인데, 그 보다 4배나 많으니 무척 반가웠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의논하고 서로의 규칙을 만들어 실천하기 위한 교육에 함께 왔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되는 가정이라는 점에서 고맙기만 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인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정의 달 5월에 참담한 사례들에 대한 보도를 접하며, 가족 간 갈등과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가족’이 얼마나 어려운 이름인가. 영국의 사회학자에 따르면 가족은 다양성을 가진 작은 사회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정을 예로 들어, 객관적으로 가정마다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를 추출해보자. 연령(세대 차이), 성(性:남성과 여성), 성(姓:혈연, 집안을 의미하는 성), 학력, 직업 그리고 소득이 다르다. 소득이 다르다는 것은 결국 가정 내에서 권력의 차이를 의미한다. 권력의 차이는 의사소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없는 자녀의 경우에는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며 자율성이 위축되기 쉽다. 그러므로 함께 한다는 것이 부모와 자녀, 각 가족 구성원에게는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농가를 예로 들면, 승계자의 경우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도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부모들은 자녀의 농업경력이 적다는 점에서 걱정한다. 농지나 농산물 출하 등 자신의 경제활동을 입증할 기반이 없는 승계자는 정책자금을 받기도 쉽지 않다. 승계자의 영농정착에 대한 많은 논문들은 양적인 지표들만 조사하고 있다. 특히 부모세대가 이룬 경제적 기반을 중심으로 통계를 산출하기 때문에 마치 승계자의 소득이 매우 고소득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자녀가 독립해서 새롭게 경영한 성과로 인정하기란 어렵다. 농가처럼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에는 ‘네트워크’ 자원의 차이도 중요하다. 외식업의 가업승계(3.1%)와 중소기업 승계예정(5.3%) 등을 포함하면 평균 18.5%이다. 이처럼 농가 뿐 아니라 가업을 승계해 부모와 함께 일하는 가정에서는 농가와 비슷한 문제를 경험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루 종일 농업에 종사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어려움을 좀 더 현실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다른 부문의 가업 승계자와 견줘서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자녀가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적으로 농업을 경영하고 있는가?

2015년 가족 텃밭학교의 사례를 보자. 부모와 함께 활동하게 된 자녀의 만족도가 처음에는 높았으나 3주 정도 지나자 저하됐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간섭 때문이었다. 부모의 방식대로 따르라는 요구가 강해지면서 자녀들은 처음에 부모와 함께 한다는 기쁨이 줄어들었던 것. 부모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녀와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를 분리해, 1시간 동안 부모는 대화법을 배우고, 자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자 다시 만족도가 높아졌고, 부모는 자신을 더 이해함으로써 자녀와 상호작용을 하게 됐다. 이 사례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며, 별도의 ‘어떤’ 과정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그 ‘어떤’ 과정이 바로 소통이나 갈등관리에 대한 학습이다.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갈등’ 때문이다. 다양한 교육에서 갈등관리지수를 진단한 결과, ‘갈등’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갈등은 가정, 조직, 나아가 사회의 면역체계라 할 수 있으며, 서로의 차이로 인한 모순을 내적으로 해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또 갈등은 문제해결, 협상, 상위목표 도입 등과 같은 방법을 통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어찌 보면 부모와 자녀의 ‘갈등’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적극적인 소통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과 내재적 의사소통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경영협약 워크숍’은 소통에 대한 학습과 농업이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조직(농가)의 행동방향 결정에 도움이 되는 수단일 수 있다. 함께 학습함으로써 부모와 승계자인 자녀의 ‘다름’에서 오는 ‘갈등’을 건강한 생산성과 발전으로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 것이다. 갈등은 소통의 다른 이름이라는 관점에서,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첫 걸음인 가족의 건강한 관계를 돕는 기회가 좀 더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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