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월 최대 100만원 최장 3년 지원
청년창업농 3200명 뽑아놓고
작년 국감 부정사용 논란에
지원금 사용처 과도하게 제한

온라인 구매·전기료 등 막아놔
"원래 취지는 실종, 규제 일변도"


청년창업농들의 영농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 사업이 오히려 정책 대상자인 청년창업농을 옥죄고 있다는 불만이 현장에서 부글거리고 있다. 사업 2년차를 맞은 올해 들어 지원금 사용처에 대한 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되면서 지난해 가능했던 온라인 구매는 물론 통신비, 전기세, 택배비 등이 사용 제한에 묶여 제도 취지가 실종된 채 규제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 사업은 농업 종사 경력이 3년 이하이고 나이가 40세 미만인 청년을 선발해 월 최대 100만원의 정착지원금을 최장 3년간 지원하는 것으로, 2018년 신규 추진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청년농업인직불제’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거쳐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국정과제로 선정, 현재 명칭으로 설계됐다. 농식품부는 4월 15일 올해 대상자 1600명을 선발했다고 밝혔으며, 4월 말 권역별 합동설명회까지 마쳤다. 지난해 1600명을 포함해 총 3200명의 청년창업농이 정책 대상자다.

2년차 사업 예산이 올해 정부 본예산에 편성돼 연속성을 확보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지만, 현장에선 정책대상자인 청년창업농들의 불만이 올 초부터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지원금 사용처가 올해 들어 지나치게 제한되면서 적잖은 고충과 혼란들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이런 일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일부 청년창업농들의 ‘지원금 부적정사용 문제’에 대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농식품부가 지원금 사용 금지업종 설정 방식에서 사용 가능업종 열거 방식으로 사용처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7일 복수의 청년창업농들에 따르면 올해부터 적용되는 정부 방침으로는 지난해 사용 가능했던 온라인 구매, 통신비, 전기세, 택배비 등의 항목에 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지원금은 바우처 카드 형태로 이용하는데, 농가 경영비와 일반 가계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정작 농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줄고 제약도 심해져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 정책대상자로 처음 선발된 청년창업농 A씨는 “올해 사용처를 대폭 강화하면서 우체국 택배도 이용할 수 없고, 공과금이나 통신비 결제도 불가능해졌다. 택시 같은 교통수단도 이용할 수 없다”며 “과소비나 사치를 하려고 택시를 타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불가피하게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사용 제한으로 묶어놓으면 지원금을 어디에 사용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과금도 통신비도 안돼…어디에 쓰란 말인가"

농기계 임대·퇴비 보조금 등
현금 거래만 가능한 곳 많아
"목돈은 개인 돈 쓰게해놓고
엉뚱한 곳에 과소비 지적 속상
사실상 식비 밖에 쓸데 없어"

정부 "의견수렴 자리 만들 것"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차 지원금(월 90만원)을 지급받는 청년창업농 B씨는 “사용 제한이 강화돼 올해 선발된 청년창업농들은 아마 큰 혼란을 겪을 것 같다”며 “온라인 구매도 올해 초부터 바우처 카드 결제가 갑자기 중단됐다. 온라인 쇼핑몰에 사용가능 업종을 등록하는 시스템을 정부가 6월경까지 갖추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며 “농촌 지역인 만큼 온라인 구매 비중이 많은데, 미리 조치를 취할 수 없었는지 아쉬운 감이 크다”고 말했다.

B씨는 이어 “사업을 시작한 지난해에도 농업 부분에 쓸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됐었다. 농기계 임대의 경우 지역의 임대사업소가 없으면 개인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데 현금을 쓰게 된다. 퇴비 보조금 사업도 현금으로 이체해야 해서 개인 돈으로 쓰고 있다”며 “농업 분야에 지출되는 목돈은 현금이다 보니 개인 돈으로 쓰게 만들어놓고, 농업 분야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고 엉뚱한 곳에서 과소비를 하고 있는 식으로 지적 받는 것에 대해 속상하다”고 전했다.

이 청년농업인은 “올해 정부 조치로 사용처가 더욱 제한되면 사실상 식비 밖에 쓸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면서 “농촌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청년창업농들이 농촌 현장에 들어와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제도 취지가 퇴색되고 오히려 청년농업인을 옥죄는 행정 규제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현장 우려도 상당하다.

청년창업농 C씨는 “청년농업인들에게 자유롭게 농사를 짓고 농촌에 정착하라고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청년농업인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정사용 문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는데, 정부 당국이 기성 농업 정책처럼 안일하게 생각한 탓이 컸다. 지난해보다 요구하는 행정서류 등도 많아지고 있어 점점 규제 중심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청년농업인 D씨는 “소비 중심으로 정책을 잡지 말고 농촌에서 필요한 항목을 고민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면서 “규제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농지구입에 대한 이자나 농기계 사용 범위를 넓혀주는 부분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시혜 농식품부 경영인력과장은 8일 “제도 개선 방안으로 올해 사용 가능한 업종을 열거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현장에 여러 애로와 불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집중되는 것이 전기세 등 세금 분야다. 온라인 구매의 경우는 현재 ‘지마켓’ 등과 시스템 개편 작업 중으로, 6월부터는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며 “5월 말 청년창업농을 대상으로 현장의 어려움과 개선 의견들을 수렴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부심 커녕 예비범법자로 낙인 찍힌 심정"

지난해 부적정 건수 7건 불과
교육·홍보로 예방 가능한 수준
제재부가금 3배 부과도 과해


▲가혹한 행정 규제에 두 번 우는 청년창업농업인=무엇보다 청년농업인들 사이에선 지난해 터진 일부 문제 사례를 빌미로 농식품부가 무턱대고 규제 강화에 나섰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한국농어민신문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농정착지원금 부적정 사용으로 적발돼 환수 조치 및 제재부가금을 부과한 건수는 7건에 불과하다. 농식품부는 ‘현금화’, ‘제한 업종 사용’, ‘과소비’ 등의 규정 위반으로 분류한 금액 총 770만원을 환수 조치했고, 이 금액의 3배에 해당하는 제재부가금을 부과했다. 제재 대상 건수가 소수에 그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정부가 교육 또는 홍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사전 예방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청년창업농이 입을 모으고 있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청년창업농들의 인식에는 “그럼 정부는 잘못한 게 없냐”는 억울한 정서도 스며있다. 부적정 사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은 청년농업인들에게로 쏟아졌다. 정책 담당자들은 개선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사용처 규제를 강화한 후속조치를 내놨다.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에 이은 행정 규제는 청년농업인들을 또다시 울린 셈이 됐다.

한 청년창업농은 “범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주변 청년창업농을 보면 외부의 눈치를 보는 것이 많아졌다. 청년창업농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농촌으로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효과를 기대하고 도입한 사업인데, 이 취지와는 반대로 청년창업농들에게 ‘예비범법자’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 같아 심적으로 위축이 많이 된다”고 푸념했다.

부적정 사용 금액의 3배에 달하는 제재부가금이 가혹하다는 시각도 있다. 제재부가금을 부과 받은 이들은 정책대상자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정부 정책자금 지원길이 막혀 사실상 농촌 영농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청년창업농이라는 지위를 감안해 최소한 영농활동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고민하는 것이 사업 도입 취지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있다.

농업계 관계자는 “지원금을 어떤 사용용도로 써야 한다는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재부가금을 3배나 부과한다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고, 미봉책에 불과하다”면서 “근본적으로는 정책대상자인 청년창업농을 선정하는 심사 기준을 강화하거나 지원금 지급액을 낮추되 경영체 등록을 하지 못해 도움이 필요한 청년농업인들까지 혜택을 크게 확대하는 등 다양한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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