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강용 친환경농산물자조금위원장

농촌은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 ‘소멸위기’
간헐적 복지정책만으로는 회생 한계
‘농민 수당’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 필요


몇 일 전 미국 뉴욕타임즈 홈페이지 첫 화면에 전남 강진군 시골의 한 초등학교와 만학(晩學)의 할머니의 학교생활이 소개되었다. 어릴 적 가정 형편으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친구들 학교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던 70세의 할머니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 손자손녀들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며, 수학여행을 가고, 글을 깨우치며 새로운 세상을 살아간다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영화가 연상되는 기사였다. 나중에 마을 부녀회장에 도전하겠다는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면서 고향 마을의 모습이 데자뷰되면서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잔잔하고 감동적인 그 기사의 한편에 한국의 저출산 문제와 농촌인구가 줄어들어 더 이상 신입생을 찾지 못하는 농촌마을의 모습과, 그럼에도 교장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내고 해당 교육청이 승인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마을 어른들을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시켜 마을에 학교를 존속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내용은, 현재 우리농촌의 심각한 슬픈 모습과 함께 세계적인 언론사의 첫 화면에 우리 농촌의 아픈 모습이 소개된 것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가끔 모교 초등학교를 지나며 어린 학생들로 꽉 찬 예전의 운동장을 떠올린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모여 웃고 뛰던 모두의 축제였던 운동회의 추억은 추억하고 또 추억해도 지루하지가 않다. 농촌마을이었지만 당시 우리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2400명쯤 됐었다.

서기 66년 네로의 로마와 유대왕국 간의 전쟁에서 멸망 직전 유대인 지도자는 로마군 대장에게 모든 것을 다 파괴하더라도 학교 하나만은 남겨줄 것을 간청했다. 멸망 후 국가도 국민도 없어졌지만 그때 남겨진 ‘예시바’라는 작은 학교를 통해 2000년 만에 나라를 다시 세웠고, 세계 인구의 0.2%인 그들은 노벨상의 30%를 차지하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예시바’의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학교의 중요성 특히 농촌학교의 중요성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바람과 상관없이 학교와 마을은 사라지고 있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초고령 사회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며, 심지어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인구문제연구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촌의 지속 문제는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책임을 미루고 지방정부는 예산을 탓한다. 출산수당 등 나름의 복지정책을 펴는 곳도 있고, 원전 수익으로 자체 예산이 많은 어떤 군은 서울 강남의 유명 학원 강사들을 초빙해 지역 학생들의 과외까지 지원하는 곳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간헐적 복지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매일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어느 국가나 정부가 일부러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간 정부의 많은 노력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렇다. 현실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면 지금까지의 정책방향과 방법을 근본적으로 과감히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만 반복하는 것 같다. 농가소득 얼마라는 목표들을 내세우지만 모든 농산물이 다 개방된 현실과,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근본적인 문제는 손대지도 못하는 수준의 노력으로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그냥 구호에 불과하다. 농촌은 오늘도 여전히 사고의 폭탄을 안고 고령임에도 직접 운전해야하고, 내년 입학생 1명을 걱정해야 한다. 정부와 기관들 심지어 농업관련 회사들까지도 비대해졌는데 농촌은 야위어 간다.

우리나라 국가 1년 예산 470조원 중 교육, 의료, 복지, 고용예산이 243조원이다. 산술적으로 국민 절반에게 대략 1000만원씩 나눠 줄 수 있는 금액이다. 단순계산으로는 국민이 행복하기에 충분한 엄청난 예산이 과연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의도한 정책효과가 나타나는지, 투입 예산대비 효율성까지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

정부는 정책의 목적과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현실의 혁신을 기대해본다. 정부는 농업인의 자격을 다시 설정하고, 농지소유를 개혁하고, 비효율적인 수단의 예산을 대폭 줄여 ‘농민수당’의 직접 지급을 시행하기 바란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것이 그나마 본질적인 목적을 위한 가장 효율적 정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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