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느껴지는 평화로움, 농사 짓기 참 잘했다 생각들어요"

[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 기자]

어쩌면 많이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농촌에 대한 애정과 젊은 패기, 톡톡 튀는 발랄함, 그리고 ‘긍정 에너지’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도전기를 써내며 ‘새내기’ 티를 벗고 성장해 나갈지 궁금하다. 이번 기획을 떠올린 이유다. 닮으면서도 다른, 다른듯하면서도 닮은 한국농어민신문 신입기자와 청년농업인이 농촌이라는 한 공간에서 만났다. 지난 2월 입사, 이제 기자 2개월 차인 본보 주현주·최영진 신입기자가 창간 39주년을 맞아 각각 전북 순창과 충남 홍성행 버스에 올라탔다. 
 

▲ 본지 최영진 새내기 기자(우)는 이날 박푸른들(좌) 씨와 허브농사를 지으며 귀농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농업전문교육까지 다 마친
보기 드물게 준비된 청년 
5년 간의 서울살이 할때도
가톨릭농민회 활동 등 열심

이웃집 추천으로 시작한 허브
초보농부에 적합, 운명인 듯
직거래 사이트 ‘논밭상점’ 운영
‘성평등한 농촌’ 위한 활동도


“여기 이 가위로 잎을 잘라주면 돼요. 한 번 해봐요.”

박푸른들(31) 씨가 기자에게 가위를 건넸다. 지난달 18일 오전 11시, 충남 홍성의 날씨는 쌀쌀했지만, 허브가 재배되는 3중 비닐하우스는 더웠다.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허브를 수확할 준비를 마쳤다.

“애플민트(허브)는 장식용, 티백용, 모히또용으로 나가요. 장식용은 가장 위에 조그맣게 난 이파리를, 티백용은 줄기를, 모히또용은 큰 이파리를 자르면 되죠.” 박 씨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는 편하게 자르라고 했지만, ‘혹여라도 농사를 망칠까’ 싶어 긴장했던 기자는 작은 이파리만 조심스레 잘라 나갔다. “역시 처음 하는 사람들이 성의 있게 잘해.” 칭찬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심이 됐다.

그렇게 3시간 동안 허브 수확이 이어졌다. 허리를 숙여 허브를 채집한 탓에 허리가 지끈거렸다. 엉덩이를 들어 올려 스트레칭을 했지만 나아지는 건 잠시뿐이었다. 몸이 고생하니,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허브 채집이 끝난 후, 허브를 마을 공용냉장고에 옮겨 보관했다. 허브에 있는 열기를 빼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난 후 잠시 휴식시간이 있을 줄 알았지만, 바로 산목 준비 작업이 이어졌다. “오늘 해야 하는 일을 마치려면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서둘러 그의 집 앞에 있는 모래를 노란색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고 다시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이랑에 있던 비닐을 걷고, 풀을 맸다. 산목 작업에 필요한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잘 자란 로즈마리(허브)의 줄기를 자르고 이파리를 떼어냈다. 민둥이가 된 로즈마리 줄기를 흙에 꽂고 난 후, 산목 작업이 마무리 됐다. 그리곤 허브 포장작업이 이어졌다. 택배 배송까지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니 오후 7시였다.
 


5년간 서울생활, 다시 홍성으로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농업특성화고등학교인 ‘풀무학교’와 대학과정인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까지 졸업했으니, 박 씨는 사실 농촌에 보기 드문 ‘준비된’ 청년 농업인이다. 그런 그도 홍성을 떠나 서울살이를 한 적이 있다. 6년 전, ‘기록’하는 것을 즐겨했던 그는 마을 이야기, 농민들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기록물을 만들고 싶었지만 한계를 느꼈다. “사진기록물이라는 건 사진을 찍는 것만큼 잘 정리하는 게 중요한데, 혼자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사진을 잘 정리하는 방법인 아카이브를 배우고 싶어 용기를 냈죠.”

서울에서 지낼 때도 농업·농촌과 동떨어진 삶을 산 건 아니었다.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며 꾸준히 농업·농촌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러나 직접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서 ‘글과 말’로 농업의 나아갈 방향과 미래를 논하다보니, 실천할 수 있는 현장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다. 결국 5년간의 서울생활을 마무리하고 홍성으로 돌아오게 됐다.

농촌으로 돌아온 그가 처음 재배한 작물은 허브였다. 그가 허브를 선택하게 된 건 ‘특별히 좋아하거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는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청년농부들이 그렇듯 ‘우선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요새 허브가 잘 팔린다고, 허브를 재배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을 해주시더라고요. 만약 다른 작물을 추천했다면 다른 작물을 재배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허브를 선택한 건 ‘운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허브는 잎채소라서 문제가 생기면 그 잎사귀만 잘라내면 되기 때문에 초보 농부에게 적합한 작물이거든요. 게다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2학년 때 밭농사 과제로 허브농사를 해 본 적도 있고요.”


농촌 여성 인권 고민도 앞장

농촌으로 돌아온 그의 관심은 농사에만 그치지 않았다. 농촌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농촌은 가부장적인 환경 탓에 성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나 젊은 여성 귀농인들을 보면, 분명 어떤 문제가 있어서 왔을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죠.” 그래서 그는 전국여성농민총연합회에서 만난 농촌 여성들과 ‘농촌청년여성캠프’를 꾸려 일 년에 4번 모임을 갖고, ‘성평등한 농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함께 고민했다. 페미니즘 책을 공유하고, 글을 쓰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톱이나, 망치를 들고 사진을 찍어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한 것”을 꼽았다.

그의 주요 판로는 본인이 운영하는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 ‘논밭상점’이다. 논밭상점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그날 주문량에 맞춰 농장에서 허브를 수확해 판매한다. 논밭상점은 농산물을 일정하게 팔 수 있는 판로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존 농민들도 마찬가지지만 농사를 지어온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 청년 농부들에게 판로 개척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논밭상점은 판로에 대한 걱정을 덜고 ‘자립적인 농업’으로 향해 가는 첫 출발점입니다.”
논밭상점으로 그가 꿈꾸는 목표는 확실하다. 농산물 유통구조가 농민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논밭상점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누구든 도울 생각이다. 논밭상점이라는 이름도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자립적인 삶을 유지하며, 갖고 있는 어떠한 것들도 팔 수 있다는 데서 착안했다.

“허브농사를 짓다보면 가끔씩 평화로운 기분을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귀농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농사일이 힘들긴 하지만, 너무 두려워 할 필요도 없을 거 같아요. 더 많은 청년들이 귀농에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취재후기>
젊은 귀농에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취재를 하러 가던 날, 생각했습니다. 귀농을 택하게 된 건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시골에서 살아온 제게 농촌은 메리트 있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교통편, 놀거리를 비롯해 일자리까지 풍족한 도시에 비해 농촌은 궁핍해보였습니다. 그렇기에 왜 농촌인지, 왜 이 작물을 재배하는지 이유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인간의 내재된 욕구도 다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만나본 현실은 제 상상과 달랐습니다. 재배하는 작물에도, 농촌을 선택한 데에서도 ‘거창한 무엇’은 없었습니다.

도시생활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지내다 농촌에 있으면 심심하고 답답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하자 박푸른들 씨는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다’는 말이 있듯 도시에 대한 그리움도 그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게 특별할 것만 같았던 그도, 저와 같은 ‘청년’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다를 뿐이었습니다. 귀농은 그에게 그저 삶이었습니다. 이번 취재로 귀농을 하기 위해선, ‘무엇’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접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농촌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농업전문지 기자에게 바라는 기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박푸른들 씨는 “농민들에게는 잘못 전달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농업정책을, 정부에는 농촌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농업·농촌에 대한 정책 입안자들과 농민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농촌의 이야기를 도시의 시선이 아닌, 농민의 시선으로 전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홍성을 찾은 그날을 기억하면서. 박푸른들 씨가 해준 말을 떠올리면서.

최영진 기자 choiy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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