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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기자, 청년농부를 만나다] 전북 순창 김현희 씨"사람이 좋아, 자연이 좋아…농사는 돈 이상의 가치가 있죠"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 “그들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청년농업인 김현희 씨(사진 오른쪽)와 본보 주현주 신입기자가 돼지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축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쩌면 많이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농촌에 대한 애정과 젊은 패기, 톡톡 튀는 발랄함, 그리고 ‘긍정 에너지’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 도전기를 써내며 ‘새내기’ 티를 벗고 성장해 나갈지 궁금하다. 이번 기획을 떠올린 이유다. 닮으면서도 다른, 다른듯하면서도 닮은 한국농어민신문 신입기자와 청년농업인이 농촌이라는 한 공간에서 만났다. 지난 2월 입사, 이제 기자 2개월 차인 본보 주현주·최영진 신입기자가 창간 39주년을 맞아 각각 전북 순창과 충남 홍성행 버스에 올라탔다. 


예로부터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끝자락의 작은 농도 순창. 자연환경과 먹을거리가 좋아서인지 무병장수하는 분들도 많은 순창. 하지만 장수(長壽)의 고장이란 명색이 무색하게 인구 3만명이 무너지던 2016년 어느 날, 순창의 구원투수가 된 것 마냥 이곳에 둥지를 튼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순창군민 김현희(30) 씨. 3년 전 순창에 내려오며 품었던 “농사는 돈 버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던 그의 마음가짐은 세월이 흘러 나이 앞자리 숫자가 3으로 바뀐 오늘까지도 여전히 살아있다. “농민을 대변하는 건 돈 버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입사한 기자에게 순창행 버스 안의 시간은 그를 향한 궁금증으로 채워졌다.

매일 똑같은 서울 생활 무료해
전북 진안 대안학교로 진학
대학때도 농촌에 대한 갈망 커
1년동안 이스라엘 농업 체험

짧은 회사 생활 등 뒤로하고
순창에 둥지, 귀농귀촌 활동가로 
올해부턴 멘토 집에 머물며
‘진짜 농부’의 생활 만끽 



#농업·농촌에 다가가다

“1남 1녀 중 막내이자 서울 토박이예요.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왔고, 중학교도 서울에 있는 학교에 진학했는데 그때 사춘기가 왔나, 서울 생활이 너무 무료하고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전북 진안의 한 대안학교에 진학했고, 거기서 직접 내 손으로 채소를 키우고 키운 채소를 먹는 재미에 빠졌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농업에 대한 관심은.”

버스에서 내려 만나자마자 무엇보다 궁금했던 그와 농촌의 첫 만남을 물으니 그의 10대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대안학교에서부터 시작됐던 농촌과의 인연은 대학 진학을 위해 다시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농촌에 대한 갈망은 컸어요. 좀 더 선진 농업을 배우고 싶어 첨단농업의 나라 이스라엘로 떠났죠. 당시 이스라엘에서 키부츠(집단농장) 발런티어(자원봉사자)를 뽑는다는 걸 알고 신청서를 냈고, 덜컥 뽑혔죠. 이스라엘에선 점적관수, 경비행기 등의 대형 농기계를 사용하는 농사일을 도왔는데 사막지형에서 물을 끌어다가 점적관수로 작물에만 줘서 제초할 필요도 없게 기르는 대단위 농업이 인상 깊었어요. 하지만 한편에선 이스라엘 청년이 아닌 동남아 일꾼과 발런티어들이 도맡아 일하는 농사 방식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어요.”

1년 가까운 이스라엘에서의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대학생활을 하고, 첫 직장을 구할 때에도 그는 농업·농촌에 더 다가가려고 했다.

“자립하는 소농학교라는 주말 귀농학교 1년 과정을 이수했어요. 졸업 후에는 제가 좋아하는 글과 관심 있는 농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한국농어민신문사에 입사했어요. 1년간 보낸 귀농학교와 1년6개월간 활동한 기자 생활 모두 저에겐 농업·농촌을 더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뭔가 갈증이 느껴졌다고 할까요.(웃음). 농촌으로 직접 가야겠다는 생각을 더 갖게 만들기도 했어요.”


#농업·농촌에 들어가다

그의 농촌 행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귀농학교 동기로부터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 팀장을 맡아줄 청년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현희 씨는 많은 이들의 만류에도 순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활동가로 보내며 순창에 둥지를 텄어요. 3년간의 활동가 생활이 너무 바빴죠. 1년 동안 청년들과 함께 하우스 농사를 짓고 여기서 생산한 농산물로 꾸러미 사업도 전개했어요. 생산과 유통을 모두 경험해 본 거죠.”

올해부터 김현희 씨는 꿈에도 그리던(?) ‘진짜 농부’가 됐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업농이 되기에 앞서 멘토 농가에 거주하며 친환경 과수 재배와 양돈 사육을 배우고 있다.

“제 멘토 농가는 60대 부부신데 오롯이 부부 둘만의 노동력으로 자연 양돈과 친환경 과수 농사, 밭농사까지 다 해내고 있어요. 저도 이렇게 건강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현실성 있는 소득을 올리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그의 삶엔 최근 대나무 공예라는 새로운 취미까지 더해졌다. 주변 지인들과 좋은 대나무를 기르기 위해 조그마한 땅에 대나무를 심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순창 죽공예 모임인 한창균죽예회와 함께 대나무 공예 전시를 열기도 했어요. 10대에서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데 대나무 아래 모두 즐기며 하나가 되고 있죠. 사실 농촌에 내려오기 전에도 다양한 농촌 관련 활동을 했지만 직접 와 살아보는 것은 또 달랐어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농촌은 여전히 가치 있는 곳이라는 건 똑같아요.”
 


#1박 2일의 순창 생활

김현희 씨가 생활하고 있는 농장은 집과 맞은편 돼지 축사가 함께 있는데도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는 친환경 사료 배합부터 다양한 관리 요령을 배워 건강하고 질 좋은 돼지를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품종은 국내산 흑돼지와 멧돼지 교잡종으로 모돈 10마리를 포함해 60여 마리가 자유롭게 운동장을 뛰놀며 함께 지낸다.

농업전문지 기자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돼지 축사,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인지 축사에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축사에서 만난 돼지들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노는 것처럼 거침없이 뛰어다녔다.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돼지들을 위해 김현희 씨와 돼지 사료를 배합하는 작업을 함께 했다. 배합 재료는 영업 비밀이라고 했지만 오디나 블루베리 껍질 등이 눈에 들어왔다.

생애 처음으로 직접 만든 사료를 돼지들에게 먹이기 위해 돼지들이 좋아한다는 사과 두 개를 들고 유인을 했다. 몸짓은 큰데 그와 달리 상당히 온순했다.

다음 날엔 포도나무에 비닐하우스 치는 일을 거들었다. 보고 들은 것은 있어 ‘수입 포도를 이겨야 한다’는 응원을 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뿌린 것은 거둬야 하는 성미상’ 여름에 다시 와야 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무엇보다 기억나는 새참시간. 김현희 씨의 멘토 부부가 직접 약과와 인절미를 내오셨고, 막걸리 한 사발도 더해졌다. “이런 젊은이가 이곳에 와서 함께 일해 주니 우리가 참 사람 복이 많다”며 웃는 이들 부부의 복이 농촌 곳곳에 넝쿨째 굴러 들어올 순 없을까. 잊지 못할 1박2일이었다.


#취재후기  
지역 곳곳, 수많은 ‘김현희들’을 응원 

 

“시골이 ‘독립운동가의 마음’ 같이 굳이 큰 뜻을 품지 않아도 그냥 사람이 좋아서, 자연이 좋아서, 농사가 좋아서 선택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전하던 그의 진심이 전해졌다. 사실 그런 그의 진심은 첫 만남 때부터 느껴졌던 것 같다.

낮인데도 한가한 순창 버스터미널에서 그를 기다리면서 어떤 말로 인사를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새마을운동에나 나올법한 초록색 트럭 한 대가 앞에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요. 그런데 문이 고장 나서 밖에선 안 열려 제가 열어 드릴게요.” 그가 건넨 첫인사, 호탕하고 스스럼없는 모습에 마치 예전부터 알던 동네 언니 같았다.

1박 2일의 취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식품 전문가들이 모인 토론회 자리에서 정부가 정책을 발표하고 열띤 토론도 진행된다. 발표와 토론을 경청한 뒤 노트북을 두드리며 기사를 쓴다. 퇴근길엔 편의점에서 1700원 하는 삼각김밥 두 개면 족하다. '삼각김밥의 쌀은 누가 씨를 뿌렸고 누가 거둬서 만들었을까'를 고민하기도 전에 나에게도 현실은 생계고, 농업과 농촌의 미래와 가치에 대한 거대 담론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기댈 수 있는 건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는 젊은 김현희들이 지역 곳곳에 있을 것이란 믿음.

취재 후에도 김현희 씨는 메신저를 통해서든, 수화기를 통해서든 항상 대화에 응했다. 이제 농촌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취재원 그 이상의 친구이자 언니가 생겼다. '밝을 현, 빛날 희', 해가 잘 비치는 순창에서 그보다 더 밝게 빛날 그의 미래가 아닌 현재 모습을 응원한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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