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태농업>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 인민대 량수밍 향촌센터. 향건운동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들이 합숙하면서 생태농업을 배우고 실천한다.

중국 농업은 우리와 다른 사회경제 체제, 거대한 농업 규모, 우리 밥상을 잠식한 농산물, 안전성 문제 등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런 중국도 우리 못지않게 농촌희생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도농격차 때문에 농업, 농촌, 농민의 3농 문제 해결이 큰 과제다. 국가 주도 농정의 시행착오도 닮은 구석이 있고, 아직은 일부지만 농민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도농상생의 움직임도 있다.

지난 2월27일~3월2일까지 4일간 지역재단, 국민총행복전환포럼과 함께 중국 베이징 일대를 중심으로 중국농업의 과제를 살펴보고, 먹거리 위기를 극복하고자 도농이 연대하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신향촌건설운동과 사회생태농업(CSA)

농촌희생 바탕 경제성장으로
중국도 도농격차 해결 골머리
‘3농 문제’ 최우선 과제 삼아 

민간 중심 신향촌건설운동 등장
‘귀농청년’ 사회적 흐름 불러와
도시 소비자와 함께 ‘CSA’ 주력

베이징 작은 당나귀 시민농장
바링허우 세대 귀농청년 중심
꾸러미 사업·주말농장 등 운영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60여년 동안 공업화와 도시화에 몰두해왔다. 서구와 달리 식민지가 없었던 중국은 내부, 즉 농업 농촌 농민의 3농에서 잉여를 추출해 공업화를 위한 자본축적에 성공했다.

그 결과 도농격차가 심화되고 농촌인구가 도시로 흡수되면서 농촌공동체가 와해되고 있다. 농촌의 와해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환경오염 문제, 먹거리 주권과 안전 문제와 맞물려 체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는 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2000년대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2000년대부터 3농 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두고 이의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공산당과 국무원이 2004년~2019년까지 16년 연속으로 ‘중앙 1호 문건’을 통해 최대 국정과제를 3농 문제로 할 정도다. 중국의 목표인 ‘샤오캉(小康)’ 사회, 곧 모든 국민이 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3농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중국의 의지다. 3농 문제 해결을 체제 유지의 기본조건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정부는 3농 문제 해결을 위해 2005년부터 ‘사회주의 신농촌건설’ 전략을 추진하고, 2012년부터는 ‘생태문명 건설’을 헌법에 명시했다. 2018년 제19차 당대회 이후 중국 농정의 화두인 농촌진흥전략은 도농통합발전이라는 대전략하에 농촌지역의 산업 진흥, 생태환경 개선, 문화 진흥, 효율적 농촌거버넌스 구축, 생활수준 향상을 실현하는 내용이다.

한편 2000년대부터 민간 중심으로 ‘신향촌건설운동’이 등장한다. 원래 향촌건설운동은 100년 전 청나라 말기에 ‘량수밍’, ‘옌양추’ 등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농촌지역에서 전개된 근대화운동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브나로드(Vnarod) 운동’이나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농촌계몽운동과 비교할 수 있다.

21세기 신향촌건설운동에는 ‘100년의 급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원톄쥔’ 중국인민대학 교수가 있다. 그는 1980년대부터 현장을 발로 뛰면서 농촌 문제를 연구하다가 2001년 신향촌건설운동의 기치를 내걸었다. 정책 제안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 목표하는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대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들어가 농민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현재 향촌건설운동은 원톄쥔 교수가 있던 인민대 향촌건설센터와 지속발전고등연구원이 싱크탱크 기능을 하고 있다. 2004년 설립된 량수밍 향촌건설센터는 대학생들의 농활 및 농촌체험교육, 귀농귀촌사업에 참여할 청년인재와 도시민 교육, 농민들을 위한 협동조합 교육을 진행한다. 아울러 토종종자 보전 네트워크, 중국 슬로푸드 협회 활동도 함께 하면서 생태화장실, 생태 오수처리 시스템도 보급한다.

신향촌건설운동은 중국판 ‘반향청년(귀농청년)’이라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 냈다. ‘바링허우’로 불리는 80년대생 대학생들과 젊은 농민들은 신향촌건설운동에 참여한 뒤 ‘깨인 농민’ ‘깨인 소비자’로서 각지에 이 운동의 일꾼으로 퍼져 있다. 농촌에서 생산자 협동조합(합작사) 설립에 힘을 쏟는 한 편으로 도시 소비자들과 함께하는 CSA(사회생태농업)에 주력한다.

동아시아 문화전문가 김유익 ‘화&동 청춘초당’ 대표는 “이들이 CSA를 ‘공동체지원농업’이 아닌 ‘사회생태농업’으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도농협동과 직거래를 넘어 3농 문제 해결과 생태문명 건설을 위한 키워드로 삼고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 작은 당나귀 농장. '바링허우' 세대가 운영하는 중국 CSA 운동의 메카이다.


이 가운데 베이징 작은 당나귀 시민농장은 베이징 하이덴구와 인민대 농촌건설센터가 2008년에 공동으로 설립한 농장으로, 중국 CSA의 효시로 불린다. 원톄쥔 교수의 제자들인 ‘바링허우’ 향건 그룹이 핵심 운영진이며, 중국 CSA 운동의 실질적인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230무(4만6000평) 규모의 농장에서는 생태농업을 바탕으로 한 꾸러미 사업 외에 베이징 시민들을 위한 주말농장도 운영한다. 이채로운 것은 이 농장이 한국의 조한규 선생이 주창한 ‘자연농업’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CSA 농장으로 유명한 곳이 중국 CSA 연맹의 임원으로 활동하는 ‘실옌(石嫣)’ 박사의 ‘수확의 나눔’(Shared Harvest) 농장이다. 이 농장은 중국 단위로 330무, 우리 단위로 6만6000평 정도. 유기농 방식으로 노지채소와 시설채소, 배 과수원, 닭과 돼지 등 축산을 복합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수확물은 도시 소비자 1000개 가정을 대상으로 택배를 이용한 꾸러미사업을 통해 판매한다.

귀농청년 세대가 주도하는 중국의 CSA 농장은 전국에 2000개 이상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태농업 즉, 유기농과 자연농을 추구하는 이들 농장은 중소농, 가족농장으로, 우리로 치면 영농조합법인 정도의 규모이다. 그렇다고 유기농가들이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중국에서 친환경 농산물 수요가 늘고는 있지만, 관행 농산물에 비해 3배~10배까지 비싼 유기농산물을 쉽게 구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기농장들도 절반 정도가 중산층 구매력이 있는 베이징 인근에 몰려있다. 때문에 CSA를 통해 ‘깨어 있는’ 소비자들과 연대하고 6차산업화를 지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향촌건설운동은 중국에서 어떤 위치일까? 물론 중국도 자본 중심의 경제개발을 우선시하는 세력이 주류이고, 신향촌건설운동은 아직 대안운동 수준이다. 다만 시진핑을 비롯한 최고위 지도자들이 장기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사회, 생태주의 문명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민간의 사회운동 규모가 커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 특성 상, 전국조직은 법인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 목적별로 조직을 등록해 운영한다. 전체적인 모임은 1년에 한 번 씩 열리는 중국 CSA 대회를 활용한다.


|중국 CSA의 선구자 실옌 박사
"건강에 대한 걱정 늘며  CSA 소비자층 넓어져"

수확의 나눔 농장의 대표인 ‘실옌’ 박사는 원톄쥔 교수의 지도로 중국 인민대에서 농촌발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는 대신 CSA 운동에 뛰어든 이다. 그는 2008년 중국 최초의 CSA 농장인 ‘작은 당나귀 농장’을 만들고 초대 대표를 역임한 뒤 2010년부터 이 농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농장 생산량의 70~80%는 소비자에게 직접 배달하고, 나머지는 북경의 파머스마켓, 학교급식 등으로 공급한다. 그는 “꾸러미 사업 초기에는 우리가 생산한 대로 농산물을 배달해 주다가 점차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품목을 골라서 주문하기 때문에 생산 품목을 늘리고, 가공품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옌 대표는 “건강에 대한 걱정, 특히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점차 유기농산물, CSA방식 구매를 찾는 소비자층이 넓어지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에 맞게 소비하고, 또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행동하는 시민그룹이 광범하게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농장에서 귀농 희망 청년 등 유기농 종사 인력의 교육, 어린이들을 위한 바른 먹거리 교육을 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와 커뮤니티센터가 있어 현재 이 농장에는 20여명의 귀농 희망 청년들이 머물며 농사를 배우고 있다. 이들 청년들은 “대학 졸업생, 대기업 출신 청년 등으로 출신이 다양하고, 이곳에서 그들은 도심지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적지만, 지방 도시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나쁘지 않은” 보수를 받으며 보통 1년 정도 머문다.

그가 농촌 현장으로 오게 된 것은 인민대에 공부를 하면서 유기농 현장경험을 위해 미국 CSA 농장에서 6개월 인턴생활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미국 농장에서 ‘왜 미국에 와서 유기농을 배우냐’고 묻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유기농 종사자들이 ‘4000년의 농부’라는 책을 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 농무성 관리인 F.H. KING 박사가 100년 전 중국, 한국, 일본을 방문하고 유기농의 원리를 깨쳐서 설파한 내용이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유기농업을 미국에 가서 배우는 것이 아이러니였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중국어로 번역,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옌 박사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앞세워 중국 내 CSA 농장과 소비자들을 엮는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노력하고 있다.
 

▲ 다양한 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면서 생태농업을 실천하고  귀농청년들을 교육하는 Shared Harvest 농장. 100여명의 청년들이 이곳을 통해 귀농했다.


|새마을 운동  즉석 토론
"농민 주체성 소멸…농촌사회 붕괴 결정적 기여"

작은 당나귀 농장에서는 저우리(주립, 周立) 중국 인민대 교수가 중국의 향촌진흥 100년에 대해 설명했다. 저우 교수는 중국 정부가 2005년부터는 신농촌건설로, 2017년부터는 향촌진흥으로 정책의 중심을 이동하면서 도농격차 해소를 위해 도농융합발전, 농촌 산업진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주체가 누구냐가 중요하며, 중국의 신농촌건설 전략과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비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한국도 초기 식량 노동력 정부 재정 수출 등 다 농업이 감당하면서 도시와 농촌 격차 벌어지고 농촌이 어려워지자 그것을 줄이고자 시작한 것이 새마을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은 “자조, 자립, 협동이란 이름으로 생활환경 개선, 소득 증대를 추구하던 초기에는 농민들의 요구하고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1972년 유신을 계기로 군사 독재의 정치운동으로 바뀌면서 모든 분야에 새마을운동이 등장하고, 농민 주체성이 소멸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새마을운동 자체가 농촌이 가치고 있던 과거의 문화나 공동체를 부정의 대상으로 보니까 농촌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에 새마을 운동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는 “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다수확을 위해 통일벼를 강제하고, 과학영농이란 이름으로 화학비료와 농약, 비닐 등 농자재를 투입하면서 전통 농업기술과 종자주권을 없애고 농자재와 토목자본, 곡물메이저가 농업을 차지하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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