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황당 판결’ 논란]

[한국농어민신문 이진우 기자]

이번 대법원의 판례는 헌법이 정한 경자유전의 원칙을 무시하고 하위의 관련 법률 해석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 농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농지법 조항 해석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1만㎡ 이하의 상속농지에 대해서는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이에 대해서는 처분을 강제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보니 앞으로 유사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먹을거리의 생산이라는 농지의 공익적 기능과 경자유전의 원칙을 더욱더 허물어뜨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이번 판결을 대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진 이유 중 하나가 법률 조항의 미비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고, 향후 이와 유사한 건의 판결에도 이번 판례가 귀속성을 가질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 여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하는 한편, 판례의 귀속성에 대해서도 ‘해당 건에만 적용된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1만㎡ 이하 상속농지,
농지법 개정되지 않는 한
불법 전용 없다면 제재 못해

대법원의 판결문과 농식품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행 농지법 상 1만㎡ 이하의 상속농지에 대해서는 해당 농지에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이를 처분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게 요지다.

부산 강서구에 소재한 농지 2000㎡가량을 상속받은 신 모 씨는 강서구청이 농지법 10조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 등의 처분 조항을 들어 농지처분의무를 통지하자 소송을 냈다. 농지처분의무란 특별한 사유 없이 농업경영에 해당 농지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1년 이내에 처분하도록 내리는 행정명령으로, 처분의무를 통지받으면 매매를 하거나 임차를 통해 농업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처분의무 통지 후 이행이 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신 씨가 소송을 낸 이유는 처분의무에 따라 이행강제금이 부과가 됐기 때문이며, 1심과 2심에서는 신 씨가 패소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상속농지라고 하더라도 면적에 상관없이 영농에 이용되지 않는 농지라면 처분해야 한다는 게 농지법 10조에 대한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까지도 법제처에서도 이 같은 해석을 내놨었다. 전남 목포시가 법제처를 대상으로 제기한 ‘상속으로 취득한 1만㎡ 이하의 농지도 농지법 10조 1항에 따른 농지처분 의무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질의에 법제처는 지난해 11월 2일 “처분해야 한다”고 회답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정범위 내를 전제하고 “상속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유 상한범위 내의 농지를 소유할 근거가 사라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현행 농지법 상 농지에 대한 상속이 계속된다면 비자경 농지가 향후 점차 늘어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이러한 문제는 재산권 보장과 경자유전의 원칙이 조화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현행 농지법상 신 씨와 같은 경우 행정력을 동원해 처분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없다는 뜻으로, 현행 농지법 상으로는 이렇게밖에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처분의무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남에 따라 이와 유사한 건으로 처분의무를 통지받아 처분을 했거나 처분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이행강제금이 부과돼 납부한 경우에는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고,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농지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앞으로는 1만㎡ 상속농지는 농업경영으로 이용되지 않더라도 불법전용만 없다면 법적 제제를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입장은       
“농지법 개정 확답 못해”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유사판결 미칠 귀속성 우려 있지만
“해당 건에만 적용” 축소 의혹도


이처럼 상황의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농식품부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농지법 개정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조항과의 균형성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확답할 수 없다’는, 유사 건에 이번 판결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이번 판례는 해당 건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건에 대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처분의무부과가 불가능 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매각이나 임대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의무라고 볼 수 있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처분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처럼 1만㎡ 이하의 상속농지가 농업경영에 이용되지 않을 경우 처분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농지법의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농지법 개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대법원의 내용이기 때문에 검토를 해서 담아야 할지, 다른 조항과의 균형성도 검토를 해봐야 한다”며 확답을 피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이 농지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놨다.

특히 이번 판례가 이후 유사 판결에 미칠 귀속성이 크다는 점에 우려가 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때마다 판단을 해야 하고, 사법 판단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입장을 내놔 이번 대법원 판례가 하급심 판결에 미칠 귀속력을 축소하는 듯한 입장마저 보였다.

너무 안일한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 농식품부는 그간 농지법 10조에 따라 처분의무가 부과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분의무 부과 권한을 기초자치단체가 갖고 있다는 게 이유다.
 


●전문가 의견/사동천 한국농업법학회장      
“경자유전·농지유지 측면서 엄중한 사안”

사동천 홍익대 법대 교수(한국농업법학회장)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해당 건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는 농식품부의 입장에 대해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례가 하급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해당 건에만 귀속력을 미친다’는 농식품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사 교수는 특히 이번 판결이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지유지 측면에서 엄중한 사안으로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상속농지의 경우 1만㎡이하는 법적으로 비농업인이라도 소유할 있고, 농지은행에 맡길 경우 이 이상의 농지도 소유할 수 있게 돼 있어 농지법이 이미 경자유전의 원칙이 허물어뜨리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온 대법원의 판결이라는 점”이라면서 “특히 1만㎡이하의 상속농지에 대해서는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더라도 처분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결의 요지인데, 이렇게 될 경우 농지의 불법전용 같은 행위를 하지 않고 단순히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에는 어떠한 행정적 처분도 내릴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대법원의 법리해석에 대해서는 “법리상으로는 대법원의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최상위법인 헌법 상의 경자유전의 원칙과 자경의무의 원칙을 배제하면서 농지법에 대해서만 법리적으로만 접근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농지법 상으로는 이미 내재돼 있던 문제이고, 이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 왔었다”고 말했다.

비농민 농지소유상한 완화 등 거듭된 농지법 개정으로
경자유전 원칙 허물어져이번 기회에 전반적 손질을


농지법 개정에 대해서도 사 교수는 “그간 농지법은 지속적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으며, 통작거리제한 폐지, 비농업인의 농지소유상한 완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 교수는 또 이번 대법원의 판례에 대해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언급한 것은 농지법이 미비하는 지적이고, 이것을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 “상속을 받아 합법적으로 농지를 소유한 경우 농사를 짓지 않아도 손 쓸 틈이 없게 됐고, 불법전용 등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지만 실제 농사를 짓게 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인 만큼 그간 경자유전원칙을 훼손하는 일변도로 개정돼 오면서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함께 농지법을 이번에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법 어떻게 바뀌어 왔나      
수십년 전부터 규제 완화 일변도

농지 규제는 농업경쟁력 제고와 농촌경제 활성화 등의 이유로 수 십 년 전부터 완화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1996년 농지법이 시행된 이후 농지 소유 대상은 기존 자경 농업인에서 농업회사법인, 비농업인(도시민)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이와 함께 통작거리제한 폐지, 대리경작자, 임대차, 진흥지역 안팎의 이용 규제의 사슬도 헐거워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태양에너지 발전설비 설치 규제를 완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지는 등 헌법에서 규정한 ‘경자유전의 원칙’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지 규제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농지법 개정은 농민과 농업인의 요구보다는 비농업인, 부재지주의 ‘개발’과 ‘효율성’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표 참고>

비농민·부재지주 입김 작용
농지소유·이용 규제 계속 풀려

‘상속농지 2년 이내 처분’ 등
일부 개정 움직임 있지만
이해관계에 번번이 무산

농업 부문의 농지 수요 감소로 농지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농지거래를 활성화하고, 도시민에게 농촌 투자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농지 소유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시대적 흐름인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부재지주 등 고위 공직자의 직불금 부당 수령 등의 사회적 부작용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없이 추진되고 있는 규제 완화 움직임은 농업계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판례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이다. 개별 사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농업계에 미칠 파장과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농지 소유 및 이용 규제를 강화하는 농지법 개정 움직임이 국회에서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다른 이해관계에 막혀 법안 자체가 사장됐거나 사장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2018년 1월 김현권 더불어민주당(비례) 의원은 농사를 짓지 않는 상속인의 경우 2년 이내에 토지를 처분토록 하는 내용의 소유 규제를 강화한 농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 농지 개량 범위를 위반할 경우 처벌을 강화한 개정법안도 지난해 9월 김정호 더불어민주당(경남 김해을)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국회 차원의 개정 논의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올해 중으로 이뤄져야 한다. 9월 정기국회 이전에 논의 윤곽이 잡히지 않으면 사실상 20대 국회 처리가 어려워진다.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 해당 법안들은 자동 폐기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한농연 관계자는 “농지 규제의 변천사를 보면 여러 이해관계들이 맞물리며 농지의 경자유전 원칙을 해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규제를 완화하면서 발생한 사각지대를 보완해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는 농지법 개정안 마련·시행 등 입법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우·고성진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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