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법리 해석에만 치우쳐 헌법정신 스스로 위배” 
소송 등 후폭풍 우려…농지 관리·보전에도 ‘구멍’


1만㎡ 미만의 상속 농지를 농업 경영에 이용하지 않을 경우 농지 처분을 의무화하도록 한 행정부처의 법령해석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이 나와 논란이다. 1만㎡ 미만 상속 농지의 경우 농업 경영에 이용하지 않아도 계속 보유할 수 있다는 것으로, 현행 농지 처분의무 방침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에 대해 농민 단체는 ‘경자유전 원칙’의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판결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 특별1부는 2월 14일 신 모 씨가 부산 강서구청을 상대로 낸 농지처분의무 통지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 사건을 재심리하라고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신 씨는 2008년 8월 2000㎡ 규모의 농지를 상속 받아 취득했는데, 이 농지를 농업 경영이 아닌 다른 용도로 불법 전용하다 지방자치단체에 적발됐다. 관할 구청이 1년 내 농지를 처분하라는 내용의 농지 처분의무를 통지했고 이를 따르지 않자 처분의무 불이행에 따른 이행 강제금을 부과했는데, 신 씨는 이 행정처분에 불복해 관할 구청을 상대로 취소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의 요지는 농지법 상 행정부처가 처분의무 조치를 내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상속 취득한 1만㎡ 이하의 농지도 농지법 제23조 제1항에 의해 임대 등을 하지 않는 한 농지법 제10조 제1항 제1호가 적용돼 농지처분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 법리의 오해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농지 소유의 상한을 규정한 농지법 제7조 제1항은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한 자로서 비농업인은 상속 농지에서 총 1만㎡까지만 소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상속으로 취득한 1만㎡ 이하의 농지에 대해서는 농지 처분을 규정한 농지법 제10조 제1항 제1호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처분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결대로라면 1만㎡ 이하 상속 농지를 농지로 이용하지 않더라도 보유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돼 후폭풍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기존 처분의무 명령에 따른 이들의 소송이 있을 수도 있고, 불법전용과 별개로 농지를 방치해도 행정처분을 내릴 수 없어 농지 관리 및 보전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 사각지대가 드러난 것이어서 추가적인 입법 보완도 요구된다.

재판부는 현행 농지법상 농지 상속이 계속되면 비자경농지가 늘어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는 “재산권 보장과 경자유전의 원칙이 조화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당장 격앙된 반응이 농업계에서 나왔다. 현행 법리 해석에만 치우쳐 경자유전의 원칙 및 자경의무 원칙 등 헌법정신을 훼손할 우려가 큰 판결이라는 목소리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2월 28일 성명서에서 “농지에 관한 법 규정의 입법 취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경자유전의 원칙과 자경의무원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판결이 내려졌다”며 “해당 판례가 악용돼 무분별한 토지 투기가 성행하고 종국에는 농지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한농연은 이어 “경자유전의 원칙과 자경의무원칙을 근간으로 한 농지 이용 및 보전 정책의 본연의 제도 및 정책 취지가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의 판례는 범농업계가 추진 중인 ‘농지보전 등을 포함한 농업·농촌의 공익적·다원적 기능 반영 헌법개정 운동’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농연은 “지금이라도 농림축산식품부는 1만㎡ 이하의 상속 농지를 포함해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사안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농지법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시행 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농지법이 시행된 이래 지속적인 농지 규제완화 현상이 심각한 작금의 비정상적 현실을 타파하고,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강력한 농지 규제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대법원 판례와 농지법 개정 여부에 대해 농식품부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는 데 그쳤다. 한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 내용을 검토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농지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개정을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이번 판례는 해당 사건에만 귀속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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