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해영 한신대 교수

녹지병원 측 행정소송 4개월내 마치면
한·중FTA 근거 ‘국제중재’ 회부 가능
한국정부 패소시 도민에 피해 고스란히


국내 제1호 영리병원으로 설립 승인과 개설 허가를 받은 제주녹지국제병원 찬반 논란이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다. 알다시피 녹지국제병원은 중국의 국유 부동산개발업체인 녹지그룹에서 2012년부터 추진해 온 사업으로서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18일 그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바 있다. 제주도 관계자에 따르면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관광객 대상 의료 서비스 제공’이라고 명시했다고 한다. 약 3년 뒤 제주도는 2018년 12월 5일자로 허가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병원 개설 허가를 받으면 그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개원하고 진료를 개시하도록 되어 있다. 만일 이 기간 내 병원을 개원하지 않을 경우 해당 지자체는 청문절차를 거쳐 의료사업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따라서 녹지병원측은 오는 3월 4일까지 개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녹지병원측은 지난 2월 14일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 명의로 제주지방법원에 제주도의 허가조건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이 개원 일정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국내 유수 로펌을 통해 녹지그룹측은 “2018년 12월 5일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중 ‘허가조건인 진료대상자를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한정한 것은 위법하다’”는 소송취지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편으로 제주도 내외를 비롯한 전국의 시민사회는 ‘의료공공성’을 치명적으로 훼손한 제주지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 당사자인 제주도정측은 내국인 의료 제한은 바로 이 ‘의료공공성’ 확보를 위한 최후의 마지노선이므로 반드시 이 원칙을 지켜낼 것이며 이를 위해 녹지그룹의 소송에 총력 대응할 계획임을 밝혔다.

하지만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뭔가 가장 중요한 고리가운데 하나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승인 이틀 뒤인 2015년 12월 20일 발효되어 신법의 지위를 가진 한·중FTA다. 녹지국제병원의 소유권자는 녹지그룹인데 이는 중국의 국영기업이다. 사실상 중국정부가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녹지국제병원 건은 한·중FTA의 적용대상이다. 다시 말해 ‘투자자-국자 중재’(ISDS)조항이 적용되는 투자분쟁건이다. 그래서 우선 관련 조항들을 살펴보자.

한·중FTA 12.12조 ISDS 제3항에 따르면 투자분쟁 시 “가. 분쟁 당사국의 권한 있는 법원 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협약이 이용 가능한 경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협약에 따른 중재 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추가절차규칙이 이용 가능한 경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추가절차규칙에 따른 중재 라.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규칙에 따른 중재, 또는 마. 분쟁 당사국과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 밖의 중재 규칙에 따른 모든 중재.” 간단히 말해 투자분쟁시 국내법원 또는 세계은행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등의 중재(arbitration)에 회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미FTA 등과 비교 한·중FTA 투자분쟁조항은 국제중재에 의한 남소방지 등을 이유로 제법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즉 “1) 분쟁 당사국에 협의를 위한 서면 요청서를 제출한 날부터 4개월 이내에 제2항에 언급된 협의를 통하여 투자분쟁이 해결되지 아니하는 경우, 그리고 2) 적용 가능한 경우, 제7항에 명시된 국내행정검토절차와 관련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중재에 회부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중재회부 전에 ‘협의’와 ‘국내행정검토절차’등 이른바 ‘국내절차소진 원칙’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제7항은 무엇일까.

“7. 분쟁 당사자인 투자자가 제2항에 따라 분쟁 당사국에 협의를 위한 서면 요청서를 제출하는 경우, 분쟁 당사국은 해당 투자자에게 제3항에 명시된 중재에 회부하기 전 그 당사국의 법과 규정에 명시된 국내행정검토절차를 거치도록 지체 없이 요구할 수 있다. 국내행정검토절차는 검토를 위한 신청이 제출된 날부터 4개월을 초과하지 아니한다. 절차가 그 4개월 후에도 완료되지 아니하는 경우 그것은 완료된 것으로 간주되며, 분쟁 당사자인 투자자는 제3항에 규정된 중재에 투자분쟁을 회부할 수 있다. 그 투자자는 제3항에 규정된 4개월의 협의 기간이 경과되지 아니한 경우 검토를 위한 신청을 제출할 수 있다.”

요컨대 녹지그룹이 서면으로 협의요청을 하면, 한국정부는 4개월로 한정된 국내행정검토절차 요구를 하고, 그 것이 완료된 다음 비로소 녹지그룹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중재회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설왕설래한다. 이 번 행정소송에서 녹지측이 이길 것인지, 제주도가 이길 것인지 말이다. 국내 법원이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되는가? 아니다. 위 12.12조 제7항은 특별히 각주를 달아 이런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즉 “국내행정검토절차에서 내려지는 어떠한 결정도 분쟁 당사자인 투자자가 투자분쟁을 제3항에 규정된 중재에 회부하는 것을 금지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양해된다.” 다시 말해 4개월 시한부인 국내행정소송에서 녹지측이 이기건 제주도가 이기건 전혀 상관없이, 녹지측은 제주도 아니 정확히 한국정부를 대표한 법무부를 상대로 세계은행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등의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ISDS는 당사국 법원 판결의 중재 회부도 허용한다. 아니 그러면 한국정부가 이를 거부하면 되지 않는가? 아니, 안 된다. 왜냐 하면 12.12조 제4항 때문이다. “4. 각 당사국은 이로써 이 조의 규정에 따라 분쟁 당사자인 투자자가 투자분쟁을 제3항에 명시된 중재에 회부하는 것에 동의한다.” 이른바 사전 동의 혹은 강제동의에 한중 양국정부가 이미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제주도가 승소한 뒤 중재절차에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가. 유감스럽게도 녹지측이 한·중FTA 12.12조에 준거 한국정부를 중재에 회부한다면 국내법은 별 의미가 없다. 준거법은 우선 한·중FTA 협정문이지 국내법이 아니다. 중재에 넘어가면 협정문에 명시된 내외국민 투자간 차별을 금지한 내국민대우(12.3조), ‘충분한 보호와 안전’ 제공과 관련된 대우의 최소기준(12.5조), 내국민진료제한 등과 같은 이행의무 부과를 금지한 이행요건금지(12.7조)등에서 시비가 붙을 거로 보인다.

그래서 만에 하나 한국정부가 패소하면, 당연 세금으로 녹지 측에 물어줘야 한다. 혹 제주도가 패소 원인을 제공했다면 정부는 제주도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고, 이 때 피해는 고스란히 제주도민이 나눠 질 몫이다. ISDS가 이런 거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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