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 산란일자를 껍데기에 표기하는 제도가 시행되는 가운데 산지의 산란계농장들은 재고 누적과 산지가격 폭락으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재고 밀려 홍수출하 조짐
가격 허물어질까 노심초사

산지수집상은 저가물량 찾고
대형마트는 빠른 산란일자 요구
산란계농가 “숨통 끊어질 지경”

4월 예정 식용란선별포장업도
시설비용만 최소 5억 필요
유통구조 개선 기대는 안되고
납득 안되는 정책 강행 ‘죽을 맛’ 


“모든 책임을 산란계농가에게 떠밀고 있습니다. 버텨 보려고 하지만 앞날이 보이지 않네요. 산란계농가들은 리스크에 완전 노출된 상태입니다.”

산란일자 표기 등 정부의 달걀 안전대책 본격 시행을 앞둔 달걀 산지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20일 경기도 모지역의 산란계농장을 찾아갔다. 가축질병 위험성과 최근 산란계 사태 등으로 인해 어렵게 인터뷰를 약속하고 만난 산란계농장 대표는 누구를 위한 달걀 안전대책인지 모르겠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상시 사육수수 20만 마리 규모로 상위에 들어가는 산란계농장이지만, 이 농장의 대표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산란계농장 대표의 첫마디는 “지난해 달걀 가격 하락으로 15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 1월에도 적자가 1억원에 달했다. 달걀 재고는 계속해서 밀려나가고 산란일자 표시 때문인지 소비는 더 침체되고 있다”라며 하소연이다.

그는 이어 “산란일자 표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산란일자 표시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문제”라며 “달걀의 안전성과 품질은 사실 닭의 품종과 주령, 달걀 크기, 특히 보관 및 유통 온도 등 복합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식약처가 산란일자 표시를 강행하면 소비자들이 산란일자만으로 판단할 수 있어 오히려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달걀 산지가격이 더욱 허물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재고가 밀리고 있고 가능한 빨리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홍수 출하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그동안 누적된 적자에다 생산원가에 달걀을 출하하면 유동성이 더욱 악화돼 껍데기만 남는 산란계농장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최근 유통업체들의 움직임에 대해 “산지 수집상들은 최대한 저가에 물량을 확보하려 하고 있고, 대형마트들이 발주량을 기존보다 줄이면서 산란일자가 빠른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가격은 떨어지고 유통비용은 증가하는 악재가 겹쳐 산란계농가들의 숨통이 끊어질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산란일자 표시보다 더 큰 문제는 4월 25일 시행될 예정인 식용란선별포장업이라고 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가정용 달걀은 식용란선별포장업을 통해서만 유통하는 제도이다.

그는 “식용란선별포장업은 깨진 달걀과 혈란 등을 검출하는 선별기를 갖추고 HACCP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며 “시설비용만 최소 5억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산란계농장에서 구축해야 한다는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식약처가 처음 이 제도를 발표할 때는 산란계농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하도록 규정했었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산란계농장에도 구축할 수 있도록 변경되면서 산란계농장이 구축해야 한다는 여론몰이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산란계산업을 뒤흔드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일단 시행해보자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면 피해가 누구에게 전가되겠느냐”며 “그렇다고 달걀 안전성에 달라진 것이 없고 유통구조 개선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달걀의 유통기반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통정보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산란계농가들이 상인들과 교섭력을 높이고, 선별 시설 등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체계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는 “달걀 유통 문제는 광역GP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며 “광역GP를 공공시설로 구축해 달걀 수급과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객관적이고 신뢰성이 확보된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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