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빗나간 예측에 물량 급증+소비 침체 겹치니 ‘속수무책’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 월동채소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사진은 14일 가락시장에서 주요 월동채소 품목인 양배추 경매 모습.

봄이 다가오고 있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얼어붙기 시작한 월동채소 시장은 좀체 풀릴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2월도 절반이 지나가던 지난 14일 찾은 가락시장 대아청과 월동채소 경매 현장에선 민감 품목이기도 한 월동채소 시장의 심각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우려스러웠던 건 현재의 침체 후유증이 올 시즌을 넘어 내년 이후 작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이에 단기 대책은 물론 전반적인 월동채소산업에 대한 중장기 대책의 필요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냉해 대비 재배면적 늘렸지만
온화한 날씨에 단수까지 증가
평년 시세 절반에도 못 미쳐

산지 폐기 나섰지만 ‘역부족’
봄 돼야 가격 회복 가능할 듯

시장격리 등 단기 대책 탈피
지역별 특성 감안 재배 유도
소비 활성화 대책 등 세워야


▲얼어붙은 월동채소 시장=지난해 김장철부터 이어진 채소 시장 한파는 배추와 무, 양배추 등 월동채소 시장 전체로 번졌다. 14일 경매 현장에서 만난 유통인들은 하나같이 근래의 채소 시장이 “유례없는 최악의 채소 한파”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유통인들의 발언은 다음날 나온 시세기록표에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14일 밤 경매, 기록표로는 15일 기준 배추 10kg 상품 평균 도매가격은 2682원으로 2월 중순 현재 2000원대 중반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지난해 2월 배추 가격 8150원은 물론 2월 평년 시세(2013~2017년)인 6930원보다도 한참 못 미치고 있다.

무도 같은 날 20kg 상품 평균 도매가격이 8758원으로 지난해 2월의 1만8970원, 평년 2월의 9610원보다 약세를 보였다. 다만 무는 다른 품목보다 시세 약세가 더 일찍 시작돼 정부 대책이 먼저 전개됐고,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자체 폐기도 진행돼 타 품목보다는 나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양배추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지난 15일 양배추 8kg 상품 평균 도매가격은 2902원으로 최근 3000원을 오르내리며, 지난해 2월 시세 6322원과 평년 2월 시세 67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대가 형성되고 있다.

업계에선 올겨울 월동채소 시장의 한파가 생산과 소비 양쪽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양배추를 예로 들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8년 양배추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4% 증가한 7100ha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현재 출하가 진행되는 겨울 양배추 재배면적 역시 지난해 대비 4%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겨울 양배추 주산지인 제주 지역이 냉해를 입어 올해도 비슷한 기상여건에 대비해 재배면적을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재배면적과 함께 눈여겨 볼 부분은 생산량이다. 농경연은 2018년 겨울 양배추 생산량이 2017년보다 무려 18%나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와 달리 제주 지역의 기상이 따뜻해 냉해와 같은 피해가 없이 고스란히 생산에 반영됐다.

업계는 약 400만평(1320만㎡)의 겨울 양배추가 평균적으로 재배됐다면 올해는 약 600만평에서 재배가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쳐도 200만평의 양배추가 그대로 생산되고 출하가 된 셈이다. 여기에 외식업체 등에서의 소비까지 극도로 침체되고 있어 수요처에서 늘어나는 생산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김명배 대아청과 기획팀장은 “겨울에 진입하기 전에 추울 것이란 예보에 1년 전 겨울 날씨 상황도 좋지 못해 전반적으로 배추와 무, 양배추 등 월동채소 면적이 증가했던 반면 실제 겨울 날씨는 온화해 단수까지 증가하면서 시세가 안 좋아 뒤로 밀리고 있다. 여기에 식당 외식업체를 중심으로 소비도 상당히 좋지 못한 것이 맞물리며 월동채소 시장 전체가 침체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제 풀릴까=전체적으로 봄철로 접어들면 현재 수준보다는 소폭이라도 소비와 시세가 나아질 것이란 전망은 나오고 있다. 개학 등 식자재업체 수요가 증가하고, 설 영향에서도 벗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물량이 밀리고 있고, 현재의 날씨 상황도 양호해 봄철에도 일정기간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만 품목별로는 일정 부분 차이도 느껴졌다.

배추의 경우 현재 산지에선 겨울배추 만생종 수확 및 저장이 함께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봄철로 접어들면 시세가 조금씩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무는 비교적 일찍 산지폐기나 정부 대책이 시행돼 타 품목보다는 그래도 나은 시세 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무도 다른 품목보다 상황은 낫겠지만 봄은 돼야 시세가 일정 부분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행서 대아청과 영업1부 팀장은 “3월 들면 개학도 되고, 설 여파에서도 벗어나 배추와 무 시세가 지금보다야 나아지겠지만 워낙 물량이 몰렸고 소비도 안 돼 평년 수준을 회복하기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겨울철 시세 하락 등으로) 봄배추와 무의 재배의향면적이 많이 줄어 봄 물량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시점이나 가야 시세가 평년 수준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배추는 최근 산지 농가들이 중심이 돼 양배추 자체 폐기에 나섰지만 가격 반등은 미지수다. 제주 양배추 생산 농가들은 지난 1월 재배면적의 10%인 9000톤을 자율 폐기했다. 여기에 제주도와 농협, 농가들이 추가 폐기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송영종 대아청과 영업3부 팀장은 “산지의 자율 감축은 고무적인 상황이지만 솔직히 가격 상승의 요인까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양배추의 시세도 본격적으로 봄철 물량으로 돌아서야 반등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중장기 대책도 필요하다=시장에선 월동채소산업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산지폐기 등의 시장격리와 관련해 김명배 팀장은 “일단 무나 양배추의 경우 산지에서 자체적으로 폐기를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특히 무의 경우 산지에서의 자체적인 산지 폐기와 정부 대책이 맞물려 최악의 상황에선 벗어났다”며 “다만 산지폐기나 비축, 격리 등의 정책 결정을 함에 있어 지자체의 관심과 협조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통인들은 시장 격리라는 단기 대책을 넘어 지속적인 소비 활성화를 위한 방책 등 지속성 있는 중장기 대책의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고행서 팀장은 “배추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맛있는 배추를 제때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김장철 배추로 해남배추가 유명하지만 오히려 김장철엔 강릉배추, 겨울철엔 해남배추가 주가 되면 적기 생산돼 더 맛있는 배추와 김치를 먹을 수 있다. 이는 김치 소비 확대와 물량 쏠림 현상 방지 등 소비지와 산지 모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팀장은 “이외에도 국산 배추 인증 업체를 알린다는 등 저가의 중국산 김치에 대응하는 방안 마련을 비롯해 다양한 배추 소비 대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송영종 팀장은 “양배추, 특히 겨울양배추는 제주가 주산지로 연작 피해가 심하다. 또한 양배추 유통이 주로 구가 큰 게 유통되는데 지금보다 구가 작아야 결구도 잘 되고 영양가도 더 있을뿐더러 맛도 좋다”며 “폐기 비용도 있어야겠지만 양배추 유통을 소비지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도록 하는 영농교육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팀장은 “올겨울 월동배추 상황을 거울삼아 산지에서부터 유통, 소비지에 정부와 지자체까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욱·김영민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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