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관

은퇴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청년 세대
농업이라는 그릇서 더불어 성장 가능
‘각자의 속도가 존중받는 사회’로 가야


왜 거북이는 토끼와 경기를 한다고 했을까? 누가 봐도 질 게 뻔한데. 개그우먼 이영자 씨가 군인들에게 들려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화제다. 그녀는 살면서 힘들었던 건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열등감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열등감을 알아채서 고치지 못하면 평생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오번역 돼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답은 그랬다. 거북이는 콤플렉스가 없었구나. 그냥 자기 길을 가는 거구나. 그렇다면 누가 봐도 뻔한 경주에서 이겨도 얻을 게 없는데, 왜 토끼는 거북이와 경주를 했을까? 토끼는 단거리 주자였고, 교만해서가 아니라 사력을 다해 달리다 심박수가 급증해서 건강문제로 쉴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이 있다. 아니면 자신의 왜곡된 열등감을 발견하고 잠시 자신에게 집중한 것은 아닐까? 토끼도 자기 길을 간 것뿐일지 모른다.

이것이 개인의 관점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그런 현상은 없을까? 혹시 토끼와 거북이라는 존재가 가진 본성보다는 그들의 속도와 결과에만 집중하는 왜곡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경제성장의 주역인 베이비부머의 은퇴가‘실버 쓰나미’라는 초고령 사회의 원인으로 여겨지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은퇴 세대와 청년의 직업 갈등으로 보이는 문제들. 베이비부머의 은퇴에 대응하여 정부가 퇴직공무원을 대상으로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확충한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 일자리와 경합하는 지를 체크한다. 토끼와 거북이처럼 청년과 은퇴자가 같이 달리기는 어렵다고 왜곡해서 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토끼는 젊은 시절 혼신의 힘을 쏟다가 은퇴의 길목에 들어선 세대이고 거북이는 이제 막 시작하는 청년세대일 수 있다. 행복한 삶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가지만, 그들의 속도와 도달해야 할 거리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청년은 시작 지점에서 사회와 자신을 바라보는 바른 시각이 필요할 테고, 은퇴 세대도 사회에서 낙오된다는 좌절감과 두려움이 아니라 그동안 충분히 달려온 자신을 격려하고 다시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 경제성장을 주도한 제조업과 국민의 식량을 뒷받침해 온 농업이 토끼와 거북이일 수 있다.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토끼였던 농업이 지금은 거북이일 수도 있고, 토끼의 휴식은 전환점이거나 사회변화에 대한 적응과 도전의 시간, 일과 생활의 균형일 수도 있다. 거북이는 하나의 일관된 방향성과 가치를, 토끼는 그 길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굴곡을 상징할 수도 있다. 두렵더라도 혹은 의미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가치 있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 거북이의 꾸준함과 토끼의 변환을 씨줄 날줄로 엮어가야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사회에, 우리 삶에 중요한가? 토끼와 거북이는 누가 옳다는 선택이 아니라 각 자의 속도로 갈 수 있는 사회를, 그런 삶이 존중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보험개발원의 2018 은퇴시장 리포트를 보면, 은퇴 후 소득은 절반이하로 주는데, 자녀 교육, 결혼과 같은 가족 부양부담은 여전하다. 60대 절반가량이 취업 상태이고, 주로 농림수산업에 종사한다. 고령자 취업에 농림수산업이 많은 것은, 신규 취업자가 증가했다기보다는 원래 농사짓던 이들이 고령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치유농업 종사를 희망하는 청년(고교생 70.5%, 대학생 64.5%)과 은퇴예정자(67.7%)의 비율이 비슷한 것을 보면, 농업이 청년과 은퇴자들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그릇일 수도 있다.

거북이가 토끼를 등에 태울 수도 있고, 토끼가 먼저 달려가면서 앞에 있는 위험이나 장애물을 표시해두고 거북이가 안전하게 가도록 도울 수도 있다. 누가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집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 토끼든 거북이든 개인의 삶은 결국 사회와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모 케이블 TV 프로그램에서는 남과 비교가 아닌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덴마크가 삶의 질이 높은 나라인 이유라고 했다. 최소한의 삶은 국가가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기업이 있다. 청년과 은퇴자가, 농업과 다른 산업이, 과거의 농업과 현재의 농업이 함께 갈 수 있어야 하듯이, 올해는 농업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아가는 시작이었으면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심야전기료가 급등하면서 농촌지역 주민들이 난방비 폭탄으로 고통 받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강원도 영월군 정 모 씨는 지난 2005년 저렴한 심야전기를 이용해 난방을 하기 위해 9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했다. 하지만 지난달 전기료가 67만9000원이 나왔다. 폭탄을 맞은 것이다. 한전이 심야전기료를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인상하면서 심야전기 혜택이 사실상 없어진 것이다. 보일러 가동을 못하면서 이 농가는 사실상 기계 값만 허비한 꼴이 됐다.

1985년 도입된 심야전기제도는 낮에 집중되는 전기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사용되는 보일러용 전기료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며 에너지 접근성이 열악한 농촌에 주로 설치돼 현재 90여만 가구에 설치된 것으로 추산된다. 심야전기 수요가 늘자 한전은 지난 2006년 1kwh당 33.9원이던 것을 2016년 1kwh당 66.7원으로 두 배를 올렸다. 사실상 심야전기 혜택이 없어진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심야전기 수요가 급증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의 전기 생산방식을 버리고 액화천연가스를 이용한 전기를 생산하면서 생산비가 증가해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부와 한전의 수요 예측 실패를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전형적인 사례인 것이다.

도시민들이 아파트와 각종 주택에서 저렴하게 난방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면 농촌지역은 특성상 집단화가 불가능하고 경제성 문제로 인프라 구축에 들어가는 예산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시지역과는 차별화된 에너지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농촌지역 주민들의 바람이다.

정부와 한전은 농업과 농촌이 국토유지 관리에 기여하는 공익적 기능의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해 에너지 접근성이 열악한 농촌의 난방비 폭탄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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